✉️🧸 에피레터 2.0 - 핸드폰과 멀어지고 싶을 때는 탐정 놀이를

핸드폰과 멀어지고 싶을 때는 탐정 놀이를

핸드폰 사용 시간은 대체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을까? 매번 주말마다 이번 주의 스크린 타임 내용을 알려주는 알림이 올 때마다 이런 의문이 생긴다. 다음 주에는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봐도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고, 조금이라도 심심할 틈이 생기면 바로 핸드폰을 집어 드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심심할 때마다 핸드폰을 집어 드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사건 현장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진짜 사건 현장은 아니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책 한 권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당신은 사건 현장에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독자를 탐정으로 가정한다. 독자들은 다양한 사건 현장을 표현한 일러스트를 보고 사건의 범인을 추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독자는 탐정이나 형사가 활약하는 모습이 담긴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된다.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어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진범을 찾으려면 인터넷에 특정 링크를 입력하거나, 어느 웹사이트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용의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추리해서 검색해 보거나, 실존하는 작가의 책을 검색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야만 했다. 책의 안팎을 넘나들어 갖가지 활동을 유도하는 작가의 역량에 푹 빠져서 지난 주말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독서에 집중하느라 몇 시간을 소비했다.

책에는 총 12개의 사건이 있고 지금까지 이 중 6개의 사건에 도전했는데, 각 사건마다 평균적으로 대략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나의 정답률은 50%이다. 상당히 답이 뻔한 사건도 있었던 반면, 정말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확인해야만 진범을 맞출 수 있는 사건도 있어 만만하게 볼 수는 없었다.

상당한 재미와 적당한 균형의 난이도가 갖춰진 덕분에 한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요새는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일단 책을 펼쳐 사건 현장으로 빠져든다. 사건 현장 일러스트를 보며 추리한 내용을 펜과 종이에 기록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보며 사건 현장 일러스트를 유심히 살펴보고,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핸드폰에 빠져들 틈은 사라지고 완전히 이 활동에만 몰입하게 된다.

한 사건을 해결할 때 걸리는 시간을 재기 위해서 책을 펼치기 전에는 늘 타이머를 켜두는데, 사건을 다 해결한 뒤 시계를 볼 때마다 이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핸드폰을 보지 않고 책에 완전히 몰입했다는 사실에 놀랄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세상에는 핸드폰을 보는 것 외에도 오랫동안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이토록 많은데도 왜 핸드폰을 보는데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쏟았는지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대신, 무엇을 보고 싶은지 나조차도 알지 못한 채 습관처럼 핸드폰에 손을 뻗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면 얼마나 허무한 느낌이 드는지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무언가에 완전히 집중하고 몰입하는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온갖 소음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심으로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머무는 경험은 참 희귀하면서도 또 값지다. 몰입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소음에 잠시 귀를 닫고 나의 목표에 집중하는 순간 그 자체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주니까.

이토록 소중한 몰입의 경험을 선사해 준 책이기에 해결해야 할 남은 사건이 하나씩 줄어드는 게 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당신은 사건 현장에 있습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라는 점이다.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 없이 곧바로 첫 번째 책을 향해 손을 뻗으면 된다.

그러니 오늘도 자기 전 핸드폰을 뒤적이는 대신, 사건 현장으로 뛰어가 탐정 놀이에 마음껏 몰두할 여유를 가져보려 한다. 과연 오늘 밤에는 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한 시간 이상을 쓰는 거북이 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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