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기회가 기회가 아닐 때라도

기회가 기회가 아닐 때라도

요즘 유튜브에서 간단한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는 쇼츠 영상을 자주 본다. 그중에서도 정말 쉬워 보이는 레시피 몇 가지를 따라 해보았는데, 대부분은 예상과는 다르게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소스가 내 입맛에 맞지 않거나, 간이 싱겁거나, 재료가 완벽하게 익지 않거나, 반죽이 너무 질어지는 등 예상치도 못한 변수만 숱하게 겪었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미리 알려주는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때마다 삶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삶은 단순한데 단지 요리를 어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둘 다 만만치 않다. 삶을 예측하는 것과 새로운 요리법을 익히는 것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게임에서도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얻은 적이 있다. 각각의 삶은 제각기 다르며, 절대로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를 제시하는 선택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어떤 선택이든 함부로 그 결과를 예측해서는 안된다는 것 말이다.

사람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생 전반을 재현한 게임인 심즈 2(The Sims 2)에서는 캐릭터가 출근할 때마다 이따금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캐릭터가 직장에서 겪은 사건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유저의 몫이다.

내 캐릭터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말단 직원인데, 수석 주방장으로부터 비평가에게 내어줄 음식을 만드는 걸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이를 수락해야 할까? 커피 심부름을 나왔는데 상사의 커피 취향을 묻는 걸 깜빡 잊었다면 어떤 커피를 사가야 할까? 자신의 후임자를 뽑고자 하는 상관에게 점수를 따려면 상관과 함께 레스토랑을 방문해야 할까, 혹은 상관의 자녀를 위한 한정판 장난감을 선물해야 할까?

이 수많은 선택지 중 무엇이 이 캐릭터에게 알맞은 정답이 무엇일지는 어떤 유저도 알 수 없다. 모든 선택지는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항상 무작위로 등장하기 떄문이다. 심지어 캐릭터가 직장에서 얼마나 높은 직위에 올랐든 곧바로 해고 당하는 최악의 선택지도 존재한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어떤 캐릭터는 그 선택으로 승진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캐릭터는 감봉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될 때도 있다.

레시피를 정확히 알려주는 요리를 그대로 따라 해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할 때면, 게임 속 캐릭터를 직장에 보낼 때 마주했던 선택지가 생각난다. 결과가 잘못 나오면 ‘뭐가 잘못 되었을까?’,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나았을까?’라며 지나간 선택을 평가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임에서 잘못된 선택지를 골라 캐릭터가 강등당하면, 그래도 그 캐릭터는 다시 직장에 출근하면서 매일의 업무를 수행하고 인맥을 관리하며 진급을 꿈꾼다.

설령 캐릭터가 직장에서 해고되더라도 게임은 멈추지 않는다. 캐릭터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거나 신문지를 펼쳐 다시 이전의 직업군에 입사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동안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직장의 말단 사원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동안 인맥을 잘 꾸렸다면 지인의 추천을 받아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아예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캐릭터가 무엇을 희망하는지에 따라 어떤 선택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큰 기회로 작용한 선택지가 나의 삶에서는 일어나지 않거나, 누군가에게는 좋은 성과를 냈던 선택이 내게는 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속상하긴 하다. 기회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 기회가 아니었던 경우도 숱하게 겪으며 실망한 적도 많다. 하지만 게임을 하며, 새로운 요리를 하며 어떤 선택을 하든 항상 다양한 변수와 마주할 때마다 선택 그 자체에 연연할 이유는 없겠다는 걸 점점 배워간다.

기회는 언제나 기회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선택을 하더라도 나 또한 매번 남들과 동일한 결과를 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기회가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이 선택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내가 직접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게임을 하던 도중, 한 순간의 선택으로 내 캐릭터가 곧장 직장에서 해고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캐릭터의 삶은 계속되어 결국에는 가정도 꾸리고, 자녀도 낳고, 자녀가 결혼하는 모습까지도 지켜볼 수 있었다. 직장에서 골라야 하는 선택지 외에도 그 캐릭터의 삶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인생에서 어떤 중대한 선택을 했든 그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갔던 것처럼, 내게도 어떤 기회든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자꾸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낯선 요리를 만들다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도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결과물을 수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직은 남들과 같은 레시피를 봐도 남들과 다른 결과물만 만드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숱하게 많을테니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하는데 좀 더 용기를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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