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봄날의 풍경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봄날의 풍경

봄날에는 사소한 풍경마저 마음을 건드린다.

하천을 따라 산책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다.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서 이런 감상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하천 주변에서는 언제나 이름 모를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하천에는 언제나 커다란 물고기들이 살고 있기는 하다만 물이 그다지 맑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진실한 ‘자연’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어딘가 투박한 하천 산책로의 모습은 이 외에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자연 속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한 풍경들은 너무 사랑스럽다. 경기가 날이 갈수록 전에 없이 어려워진다거나, 사람들은 자꾸만 여유를 잃고 바쁘게만 살아간다는 신문 기사 속 말은 이곳에만 가면 말끔하게 사라지는 기분마저 든다. 이곳에는 언제나 하나도 급할 것 없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뿐이니까.

때때로 이들을 보다 보면 세상에는 정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질 때도 있다.

서로 다른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서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신나게 놀 때, 견주들이 좀 어색하더라도 강아지들이 충분히 놀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궁금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넓은 공터에 홀로 돗자리를 깔고 누워 헤드폰을 낀 채 종이책을 읽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노래를 들으며 무슨 책을 읽고 있을지를 궁금해한 적도 있다.

그리고 주인의 옆을 지키고 있던 강아지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도 주인 옆에서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는 의사 표현은 강아지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상상력을 끝없이 펼칠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과도 봄날에는 종종 마주친다.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서로 나란히 앉은 두 남녀 학생은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이곳까지 왔는지, 외발자전거를 타고 씩씩하게 달려가는 아저씨는 어떤 이유로 그런 자전거를 타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채 산책로를 걷는 두 직장인의 근무처는 어디일지, 왜 어떤 물고기는 잠잠한 물가에서 갑자기 튀어 오르는지, 왜 또다른 물고기는 폭포처럼 거센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려고 애를 쓰는지, 오리들은 대체 어떤 맛있는 걸 먹으려고 고개를 물속으로 푹 집어넣고 엉덩이만 삐죽 들어 올리는지도.

다양한 삶의 모습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러한 말은 자기계발서나 휴머니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뻔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문장이라는 점도 포함해서 말이다.

관광 명소처럼 눈에 띄게 멋지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언제나 다채로운 삶을 너그럽게 포용한다는 점이 이 산책로의 매력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너무 눈에 띄게 멋지거나 우월하지도 않고 오히려 좀 평범하더라도, 각자가 품은 다채로운 모습 그 자체만으로 세상에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매력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

그저 생각이 많고 상상할 것도 너무 많은 N의 머릿속에서만 참이 되는 문장일 수도 있지만, 곳곳에서 손쉽게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봄날만이라도 이 문장을 진실이라고 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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