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질문의 재발견

질문의 재발견

평범한 질문에서도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사회생활을 할 때 흔히 주고받는 실없는 질문은 그저 질문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요. 최근 들어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어쩌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소소한 대화 속에서도 얼마든지 멋지고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다른 사람들과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야 하는 이 모임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별다른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끄는 특기 같은 건 제게 없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다른 사람의 말을 흥미롭게 들으려는 노력도 어색한 공기를 깨트릴 수 있다는 걸 몇 차례의 모임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언제나 원했던 모습은 ‘경청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말 잘하는 사람’ 쪽이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이 존재하고, 그 말을 낯선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있고,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당당함을 내세우는 사람이 항상 멋져 보였거든요.

그런 사람에 비해 저처럼 낯을 가리고,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고, 대중문화에 큰 관심이 없어 다른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은 성격에서 스스로 멋진 점을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았고요.

그런데 최근에 참석하게 된 모임에서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품어볼 수 있었어요. 먼저 나서서 저의 이야기를 많이 쏟아내는 용기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만, 어쩌면 상대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끔 작은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좋은 의사소통의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이요.

왜냐하면 저는 남들 앞에서 저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좀 쑥스러워하기는 해도, 저와는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는 늘 적극적이었거든요. 흥미로운 이력을 지닌 사람들의 세미나, 북토크, 모임, 인터뷰를 듣기 위해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갔던 적도 많았고요.

그래서 모임에 참가할 때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딱 두 가지만 염두에 두기로 마음먹었어요. 1)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며 작은 질문을 건네고, 2) 상대방이 그 질문에 답변하면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요.

그 마음을 토대로 ‘오늘 날씨가 굉장히 습하죠?’라는 사소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어떤 취향의 음료를 좋아하는지, 주말에는 보통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를 먼저 질문하고 다른 분들의 답변을 듣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았어요.

그랬더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는 단지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가 상대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질문은 간단한 답변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질문은 저의 의견을 묻는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갈 수 있었어요.

ChatGPT와 같은 AI 기술이 상용화되다 보니, 원하는 답을 끌어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요. 그런 주장과는 좀 반대되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실제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을 때는 답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점을 배웠어요.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요. 쉽게 똑 떨어지는 답이 아닌, 무한히 이어지는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서로를 더욱 잘 알아갈 수 있더라고요.

때로는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보다, 어떤 질문을 상대에게 할 수 있는지가 우리를 표현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어떤 질문을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질문은 결국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해 줄지 고민해 보며, 다음 모임 때에도 질문 보따리를 들고 가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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