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물의 흐름에 귀 기울이면 생기는 일

매달 새로운 주제의 에세이를 보내드리는 에피레터의 이번 달 주제는 “자연”입니다.

물의 흐름에 귀 기울이면 생기는 일

가끔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디든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충동은 주로 한 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다 보면 생기곤 하는데, 때로는 해야 할 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머리가 아플 때, 예상치 못한 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도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럴 때 나는 단순한 선택을 한다. 자연 속으로 떠나거나,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여유가 있을 때는 하천 옆 산책로를 향해 곧바로 떠나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면 아이폰의 배경 사운드기능을 활용해서 파도 소리나 빗소리, 강물 소리를 듣는다.

왜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자연 속 물소리를 찾게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주를 맹신한 적은 없지만 호기심에 본 사주에서는 내게 불이 많다고 했는데, 불과 가까운 사람치고 나는 ASMR을 들을 때도 장작 타는 소리보다는 빗소리,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상이나 수영장이나 목욕탕을 배경으로 한 영상에 손이 자주 간다.

왜냐하면 물소리를 들을 때마다 실제로 내면에 남아 있는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우울은 수용성이라 샤워를 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이후로 정말로 마음이 편치 않을 때마다 샤워를 하든, 손을 씼든, 세수를 하든 물과의 접촉을 늘려보았는데 정말 그 간단한 행동만으로 마음이 금방 개운해지곤 했다.

불은 무언가를 연소시키며 살아남는데 그와 반대로 물은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을 만나도 그들을 전부 품에 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을 수용하며 앞을 향해 흐르는 물의 성질 덕분에 우리는 자연 속 물소리를 들을 때마다 편안함에 감기는 게 아닐까. 불편한 마음, 뻐근한 몸, 복잡한 생각까지도 물은 나 대신 감싸 안고는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까지 앞장서 나아가니까.

게다가 물소리는 물이 한곳에 고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를 때만 들을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물소리의 특성도 우리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쉴 새 없이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다 보면 우리가 마주한 현재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 물처럼 흘러갈 뿐 영원히 고정되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도 자연스럽게 품을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상황이 고정된 게 아니라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상상하며 앞을 향해 나아갈 열정을 되살려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금과는 달리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전적으로 신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지금 마주한 상황이 앞으로도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불안함에 휩싸일 때도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그 말을 진심으로 마음에 받아들이는 건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불안함으로 가득해 정체되어 있을 때마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다. 물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면 정말 모든 건 흘러가기 마련이라는 자연의 간단한 법칙이 찬찬히 스며들 테니 말이다.

PS. 물소리를 듣고 싶을 때 제가 자주 찾는 ASMR영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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