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과 잠시 끊어져도 괜찮아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과 잠시 끊어져도 괜찮아

‘인생 노잼 시기’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단어를 일상에서 입 밖으로 낸 적도, 혹은 머릿속에 떠올린 적은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올해 들어 많은 것이 변했다. 나의 건강이나 젊음이 언제까지나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체력에도 건강에도 한계가 있음을 느꼈고, 더는 모든 일에 무작정 열정과 에너지를 불태울 수 없었다. 예전보다 쉽게 지치고, 그렇게 가라앉은 에너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시기를 겪고 나니 이제서야 더 이상 예전처럼 모든 게 당연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끓어 오르다’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끝도 없이 치솟는 더위가 추석 연휴까지 이어지는 걸 겪은 것도 이 생각을 강화하는 데 한몫했다. 그동안 당연한 줄만 알았던 맑은 공기, 시원한 바다, 적당한 더위가 언제까지고 당연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도 벗어나기 어려웠다.

변화가 시작된 건 환경만이 아니었다. 올해는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최근에는 몇 년 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서 얼굴이라도 보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몇 달 동안 함께했던 모임의 연말 파티에 참여하는 걸 거절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좀 더 친목을 다질 수 있는 뒤풀이 자리를 거절했다.

예전 같았으면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서,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당연히 이 모든 권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심지어 나를 잊지 않고 연락을 주었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을 것 같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모든 상황에서 저절로 끊어지기를 선택했다는 건 이들이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들과 가까워지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내게 선물해 줄 수 없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일과 사람 앞에서 넘치는 흥미와 열정을 가질 에너지,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용기내서 맞이할 힘, 매사에 시큰둥한 반응이 아닌 호기심을 보일 수 있는 기력을 보충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언제부터 예전에는 당연히 거뜬하게 해냈을 일에도 이렇게 큰 에너지를 써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부터였을까, 운동을 귀찮아하기 시작할 때부터였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진 뒤에는 예전의 내가 품었던 에너지와 다시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가져보고 싶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일단 스트레칭을 하는 습관부터 챙겨보았다. 스트레칭을 하면 할수록 예전과 달리 몸이 정말 많이 뻣뻣해졌다는 것만 실감 나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뻣뻣한 몸 상태 또한 영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예전과 완벽히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리는 없겠지만 예전의 모습과 다시 연결되려는 노력이 언제나 헛되지만은 않을테니 말이다. 이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중 하나라도 예전과의 연결점을 되찾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과 잠시 끊어져도 정말 괜찮을 것이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일단 노력은 시도해 볼 수 있고, 그 노력을 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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