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의 손에는 꽃이 있다. 열정을 의미하는 빨간 장미 한 송이. 와, 내가 내 손으로 꽃을 사는 날이 오다니! A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랑의 힘은 이토록 무서운 법이라고. 장미꽃을 들고 인문대 앞에 서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팔 부분이 헤져 너덜거리기 시작한 학과 점퍼를 입은 A를 지나가던 모두가 힐끔거린다. A는 주위 시선에 조금 우쭐해진다. 그것도 잠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 자신이 기다리는 누군가를 찾아 고개를 바쁘게 돌려본다. 저 멀리 친구와 재잘거리며 나오는 소연이 보인다.
- 아, 오늘 강의 왜 이렇게 많냐.
- 너 다음 강의 또 있어?
- 아니, 이제 공강.
소연의 모습이 가까워지자 A는 들뜨는 마음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평소와 다름을 감지한 소연이 고개를 돌리다 A를 보고 사색이 된다. A는 부끄러움과 놀람이 스쳐가는 소연의 얼굴을 보고 새는 웃음을 막지 못하고 픽, 웃는다. 그 모습에 소연은 눈을 굴리며 어색해 하고, A는 이럴수록 남자가 용기를 내야 한다고 다짐하며 소연에게 다가선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법이니까.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소연이, A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
- 소연아, 수업 이제 끝났어?
- 아... 네...
- 널 위해 준비했어.

A는 장미꽃을 소연에게 주고 소연과 팔짱을 낀 소연의 친구를 힐끔 본다. 눈치가 조금 없나? 빠져줄 때도 된 것 같은데. 가만히 보니 저번에 과방에서 본, 수줍음이 많은 친구인 것 같아 A는 싱긋 웃는다. 친구에게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하니까. 소연의 친구는 ‘썩은’ 표정으로 A에게 인사한 뒤 소연을 툭, 친다. 이만 가자는 것 같다. A는 소연이 친구를 따라갈 것 같아 얼른 앞을 막는다. 여자들의 질투란... A는 조금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여후배들에게 화나 내는 치사한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다시 보니 소연의 친구도 조금 예쁘장한 것 같기도 하고?
- 선배님, 저 수업이 또 있어서요. 가 볼게요.
- 공강..이라고 하지 않았나?
소연의 친구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 A에게 들린다. ...좋네. 좋다고? 내가 좋다는 말인가? A는 다시 소연에게 용기 내어 영화 보러 가자, 했지만 소연은 주위 시선에 부끄러운 듯 뛰다시피 멀어졌다. A는 주위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과방으로 향했다. 속에서는 천불이 이는 듯 했다. 꽃은 다 받아놓고, 데이트 신청은 안 받아주다니. 아무리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한들, 마음 넓은 A도 화는 나는 법이었다. A는 과방에서 자주 마주쳐 친해진 후배, B를 불러내 흡연 구역으로 향했다. 담배 한 개비로는 풀리지 않을 기분이라 한 개비를 더 물자 B가 핸드폰을 보다가 낄낄대며 A에게 말을 걸었다.
- 와 형, 방금 인문대 앞에 완전 미친 놈 있었다는데요?
- 나 거기 있다 왔는데? 나도 보여 줘.
B가 내민 핸드폰은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가 켜져 있었고, 누군가 올린 익명 글에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들이 보였다. A는 안 그래도 기분이 꿀꿀하던 찰나, 잘 됐다는 생각으로 집중해 보기로 했다.
[아 방금 ㅋㅋㅋㅋㅋㅋㅋ 인문대 앞에서 어떤 찌질이가 여자애한테 장미꽃 줌 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 있던 사람이 몇 명인데 ㅋㅋㅋㅋㅋㅋ 여자애 결국 도망가더랔ㅋㅋㅋㅋㅋ 쪽팔리게 해놓고 영화 보러 가자 함ㅠ 수업 있다고 했는데 여자애가 공강이었나봐ㅠ 찌질이가 공강이지 않냐고 해서 도망침ㅜ 아 눈치도 없고 어떡하냨ㅋㅋㅋㅋㅋㅋ]
┖ 나도 거기 있었음 ㅋㅋㅋㅋㅋ 공강 아니냐고 할 때 그 여자애 친구가 귀도 좋네 하는 거 나만 들음?ㅋㅋㅋㅋㅋㅋ
┖걔네 무슨 과야ㅠ 불쌍하긴 한데 재미는 있겠다
┖걔네 국문과임 과잠 입고 있었음
- 형! 누군지 알아요? 우리 과 라는데? 개 미쳤다!
- ......
A는 말없이 담배를 껐다. 학과 점퍼를 벗어 내동댕이치다시피 하곤 집으로 향했다. 영문을 모르는 B가 A를 애타게 불렀지만, A는 대답하지 않았다. A는 고독하고 싶었다. 화가 나고, 창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내 사랑이 남들 입에 오르내리며 비웃음을 사다니! A는 소연의 얼굴이 떠올라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 연락해 보자. 내 마음을 숨기지 않는 거야. A는 소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번 레터에서 복학생(3)으로 이어집니다.
전 레터 마무리에 오타가 있었습니다.
* 연해 - 연애
당신의 심심한 수요일에 까먹을,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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