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정말 오랜만에 글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계속 '어떤 글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은 계속 해왔는데, 정작 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쳐내느라 3달이 넘게 흐르고 말았네요 :(
그간 저는 크게 1) 새로운 기업들에 투자하고 2) 기존에 투자한 기업들의 문제(거의 다 자금조달)를 같이 풀기 위해 나름 노력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결론에 수렴하였는데요.
여전히 VC 산업에 있어 정보 비대칭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비대칭 정보를 통해 차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시장의 섭리이지만, 적어도 비효율을 초래하는 정보 비대칭은 해소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4줄 요약)
1. VC 펀드의 만기 < IPO까지의 기간
이 글의 제목이자, VC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더글로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박연진'은 극중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렀을 때, "1분, 내 인내심"이라고 하며 1분간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줍니다. 물론 1분이 지나면 가차없이 (스포)하고 말지만요.
사실 VC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벤처펀드의 만기는 보통 8년으로, 4년간 투자를 집행하고 나머지 4년은 가치를 제고하면서 회수를 하는 기간으로 삼습니다. 반면, 평균적으로 국내 기업이 법인을 설립하고 상장하기까지는 10~13년이 소요됩니다. 이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해당 아티클을 한 번 읽어보세요!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투자를 하고 8년 내 IPO를 기대하기 어렵다보니 차선으로 간주되는 것은 1) M&A, 2) 세컨더리 펀드로의 이관이 있습니다. 즉, 누군가 사주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데요. 여기서 창업자들도, 그리고 (저같이 미숙한) VC들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 그래서 8년 안에 됩니까?
어떤 비즈니스가 반드시 잘 될 것 같고, 그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성공이 반드시 '8년 내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누가 그 주식을 사고 싶으니까요.
가령, 달에서 살기 위한 모듈러 주택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럼 아마 다음과 같은 부분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 달 주민들이 아파트 말고 모듈러 주택에 살고 싶어할까? 고객 반응은?
- 지구용 모듈러 주택과 얼마나 달라야 하나? 지구 플레이어들이 달 전용을 만든다면?
- 창업자들이 달에 대한 전문성이 얼마나 있는지?
- 달 전용 모듈러 주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뭘까? 진짜 어려운가?
- 팔면 달에서 팔까? 아니면 지구에서 만든 다음 달로 배송할까?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 달 이주에 대한 규제가 있는지, 달 건축법은 지구와 얼마나 다른지?
- 유인 우주선 기술의 상용화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 달 이주 장려 정책이 언제쯤 입법되는지?
이러한 점은 사실 창업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재적 요소인데요. 하지만, 결국 이러한 점이 투자에 대한 '적절한 시기'를 결정합니다. 인간이 언젠가 달에 가서 산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라 하더라도, VC 입장에서는 이것이 30년 후에 일어날 일이면 당장 관심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3. 그래서 why now?가 중요합니다.
결국 국가마다 단계마다 다르지만 결국 '펀드의 만기'로 인해 일정 기간 내에 '사고 싶은 기업'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절한 예시가 <흑백요리사>의 편의점 미션이 아닐까 싶은데요.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편의점에 있는 재료만으로 요리를 만들어 심사를 받는' 미션이었습니다. 그동안 최고의 재료를 엄선해, 조리에 공을 들여 손님들을 맞았던 일류 셰프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 밤 티라미수가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한정된 리소스로, 남들과 다른 접근으로, 고객이 당시에 딱 원하는 것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라면, 참치캔, 소세지를 활용해 요리를 만들 것을 예상하고, 적절한 순서에 딱 디저트 개념의 밤 티라미수를 만들면서 격한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죠.
결국 VC도 한정된 자금으로 남들과 다른 투자 전략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회수해 LP에 돌려줘야 합니다. 스타트업도 한정된 리소스로 압도적인 고객 경험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매력적인 기업이 되어야 하구요. 서로간의 니즈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투자가 성사되는 것 같습니다.
논외로,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를 받지 않고 매출을 재투자하거나, 아니면 나 자신이나 가족들의 금전적 지원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죠. 그것도 아니면 대가없는 지원금을 계속해서 조달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내자본'이라는 것입니다. 8년이 아니라 20년도, 30년도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결국, '자본의 인내심'이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4. 알겠고, 어디다가 투자할건데?
초기 기업에 투자한다면 매일 치열하게 고민할 겁니다. 저도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폐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이게 미래를 보고 오지 않는 이상 '8년 안에 누군가 사줄 기업'이 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VC들은 해외에서 성공한 모델을 한국에 접목하는 '문익점'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도 하고, 또 글로벌에서 통할 K-무언가를 하는 'BTS-like' 스타트업에 자금이 몰리기도 합니다. 공통적으로 해외에 눈을 많이 돌리고 있는데요. 이러한 점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또 '극초기 투자는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 요즘입니다.
아직 기업의 생애 전주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저같은 사람은 그럼 어디다 투자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해본 결과, '시대를 초월한 니즈', 혹은 '무조건 올 것 같은(트X드코X아에 나올 것 같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이 참고하는 것이 킥서비스라는 유튜브 채널인데, 브레인스토밍에 은근 도움이 됩니다!
- 업무용 에이전트: 이전 글에서 다룬 바와 같이, 어시스턴트 정도로는 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압도적으로 0.99인분을 해야 합니다. 또, SaaS 정도의 경험에 머물면 안될 것 같아요. 뭘 먹을 때 입/치아/혀/목을 일일이 쪼개가며 제어하지 않잖아요?
- 대규모 행동 모델(LAM) 관련 비즈니스: 텍스트를 시작으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멀티모달 모델로 진화하고 있지만, 결국 에이전트가 되려면 실제 행동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미 Rabbit R1이나 애플이 보여줬듯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이에 대한 케이스가 축적되면 사람의 안전과 거리가 먼 분야부터 서서히 상용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주 나중에는 자동차/항공기 등의 완전자율주행까지 가기 위한 포석이 될 것 같습니다.
- 맬서스 재앙을 깨는 기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입니다. 이미 농업, 축산업, 수산업 등을 파괴적으로 혁신하려는 기업들이 더러 보이고 있습니다. 수확같은 간단한 기능에서 시작하여, 결국 종자 개량이나 신품종 개발 등 IP 싸움으로 갈 것 같습니다. 식량 보안이나 우주 경작 등의 미래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건강한 삶을 위한 압도적인 사용자 경험: 최근 핫한 위고비와 같이 건강 문제를 치명적인 부작용없이 해결하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혈당 관리를 위해 매일 채혈을 하다가 -> CGM을 통해 그 고통을 경감시켰다면 -> 이제는 채혈 자체가 필요없어지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약이나 원천기술에 투자할 역량은 없구요. 현실적으로 이러한 기술에 동반되는 파생산업에 투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해외에서도 자국에서의 편의를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삶: 일단 환전해야 하는 삶은 Visa가 한 번, 트래블월렛이 또 한 번 어느 정도 개선해 준 것 같은데요. 저는 일본에 가서 공유자전거도 타고 싶고, 라인 계정이 없더라도 현지 맛집을 예약하고 싶습니다. 이게 지금은 각각 인바운드, 아웃바운드용 솔루션이 따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서비스 국가를 늘리고 + 인/아웃을 모두 아우르는 '크로스보더' 개념으로 확장한 다음 통합 서비스로 나아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영역에서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 좋은 창업자: 시대를 초월하고 좋은 팀은 파괴적 혁신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VC들이 예측하는 미래가 틀릴 수는 있어도,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항상 배팅할 가치가 있죠. 다만, 1) VC들이 그러한 사람을 못 찾았거나 2) VC들이 정의한 '좋은'의 정의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의 정의에 따라 결국 그 VC의 정체성이 결정되는데요. 알토스벤처스가 정의하는 '고슴도치'가 좋은 예시입니다. 참고로 제가 최근에 좋아하는 창업자는 '메타인지와 끈기가 탑재된, 변인을 적절히 통제하며 실험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한 단어로 줄이고 싶은데 계속 실패하고 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david
재미있고 유용하게 잘 읽었습니다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