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나는 미술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술뿐이었을까. 음악 시간도, 체육 시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은 건 잘하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잘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는데 그땐 모든 게 성적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잘하지 않아도 좋아한다는 건 나에게 성립할 수 없는 명제와 같았다.
미술 시간엔 백지를 책상 앞에 둔 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종이는 너무나 새하얬고, 네모반듯했고, 구김 없고. 그 자체로 완벽해 보이는데 내가 망칠까 두려웠다. 보이는 풍경과 똑같이, 제시한 사진과 똑같이. 내 기억 속의 백지는 완벽함을 요구했다. 자유 주제 앞에선 도대체 무얼 그려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초조하기도 했다. 시간은 흐르고, 수업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백지 앞에서 마음을 동동 굴리던 시간이 길었던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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