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일본에서 IT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좋든 싫든 반드시 거대 기업 NTT사람들과 일을 하게 된다. NTT = 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 일본 전신 전화. (요 이름 어디서 따왔게요? AT&T요. AT&T = American Telephone and Telegraph 미국 전화 전신.)
지금처럼 모바일 통신업자의 복수 참여자 형태로 시장이 다변화되기 전, 옛날 옛날 전화와 전보(전신)서비스만 있었을 때는, 미국같은 큰 나라 빼면 대부분의 국가에선 국영 기업 통신 사업자가 전국을 지배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일본은 NTT, 한국은 KT 한국통신, 호주는 Telstra, 영국은 British Telecom, 싱가폴은 Singtel 이런 식으로요. 이 시기 독점으로 시장을 장악하던 통신기업들 중 특히 NTT의 위세는 막강하였는데 1980년대 일본이 전성기를 달리던 무렵, 막 민영화된 NTT는 명실상부 세계 1등 기업이었어요. 비단 NTT뿐이 아니네, 아래 표 보면 그 시대 일본이 정말 얼마나 잘나갔었는지 바로 알 수 있겠어요. 성조기 두 개 빼고 온통 히노마루(日の丸, 일본 국기를 상징)구만.

하여, 그 시절 NTT에 입사한 사람들은 사우디 기름 창고처럼 써도써도 계속 나오는 보너스를 받으며, 지난 달 미국 갔는데 이번 달엔 유럽가래 어쩔씨구리~ 전세계를 누비는 혜택에 몸둘 바 몰라, 역시 이 회사에 뿌리를 묻어야 겠어, 종신고용을 자랑삼아 뻐기고 다녔다 합니다.
그런 분들 중 한 사람이 지금 내가 고객으로서 상대하고 있는 나가타상입니다. 1986년 동경대 문과 출신이고요, 그 후 NTT에서 일편단심 비가오나 눈이 오나 상사한테 쿠사리를 맞나 아랑곳않고 올해 나이 58세인 지금까지로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이 분 젊었을 때 이력 보면 제 예상대로 NTT 유럽에서 수년간 복무했고요, 그 때 배운 영어로 일본인 중에서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가능하십니다.
그런데 미안해요 나가타상. 이제 그만 두셨으면 좋겠어. 1980년대 제조업과 장인정신, 완벽에 가까운 품질 관리(경영학 용어로 나오는 改善 Kaizen -우리말로 개선- 과 看板 Kanban -우리말로 간판 또는 작업보드-이 이때 탄생했다고 보시면 됩니다)로 전세계를 재패하던 일본 기업에 부푼 꿈 입고 입사했던 청년들아, 지금은 미안하지만 로봇과 AI로 훨씬 일을 빠르고 효율높게 완성할 수 있는데 왜 옛날 그 그 그 구태의연한 방식을 아직도 고집하냔 말이에요. 여러분께 예를 들어 드리면 다른 나라 같은 경우 우리 회사 제품 도입을 선정하는데 한 두달이면 끝날 것을 일본은 무슨 해부학 교과서 만들듯 별의별 불필요한 것까지 싹 싹 뒤져 일년을 끌어가며 검사합니다. 내가 받은 질문 중에는 세상에, 우리회사가 배송한 조그마한 기계(보통 소포 크기)의 포장용 박스는 버릴까요 말까요, 안 버리면 3개월 / 6개월 / 12개월 보관하나요와 같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질문도 수십 개 있습니다. 현재까지 234건 질문 왔으며 아직도 진행 중이고요. 그들이 좋아라하는 엑셀에 하나하나 개미 폰트로 정리하여 기록합니다. 아래처럼.

만일 한국이었다면? 아마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한 몇 페이지, 표준 포맷에 검사서 기입하면 끝일걸?
그래서 제가 오늘 주제로 다루고 싶은 것은, 마침 최근에 니케이 비지니스에도 관련 자료가 나왔길래, 격변의 시기를 맞은 일본 기업들입니다. 자 우선 아래는 일본 주식 시가총액 탑10. 작년 12월 기준이라 지금 순위 변동 약간 있습니다만 산업군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1위부터: 토요타 / 미츠비시 은행 / 소프트뱅크 / 소니 / 히타치 / 미쯔이 스미토모 은행 / 유니클로 / 도쿄 일렉트론 / 어드반테스트 / 이토추상사

위의 표를 통해 우리가 간단히 알 수 있는 부분:
- 그 많은 자동차 기업들은 다 어디로 갔나: 혼다 / 닛산 / 미츠비시 자동차 / 스즈키 / 스바루 / 마츠다
- 그 많은 가전 메이커들은 다 어디로 갔나: 파나소닉 / 도시바 / 샤프 / 미츠비시 전기
- 은행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위에서 빠진 빅 3은행 중에 미즈호(Mizuho)도 상위권
- 반도체 덕을 보긴 보고 있어요 일본도: 도쿄 일렉트론과 어드반테스트가 반도체 장비 및 검사 기업
- 30년전 세계 1위였던 NTT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짐 (물론 아직도 상위권이긴 하나)
- 종합상사도 여전히 인기 있습니다: 상위권 포진한 미츠비시, 스미토모, 미쯔이, 마루베니 등
니케이는 본 기사에서 이들 탑텐 기업이 국제화, IT/AI화, 시의적절한 M&A등으로 격변의 시대에 살아남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주요 기업들 간추리면:
- 소프트뱅크: 역쉬 조선인 뿌리는 탁월해! 손 샤쵸(社長: 사장)는 남들에 한 발 앞선 시각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높은 확률로 성공해 왔습니다. 당사의 Vision Fund가 2022년 일시적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그 후 AI에 초고액 베팅하여 보시다시피 일본 3위입니다. 참고로 이 회사는 일본내에서는 통신업도 하여, 모바일계에서 NTT, KDDI와 함께 빅 쓰리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KT, LG, SKT처럼요.
- 소니: 이제 가전에서 거의 손 떼는 분위기입니다. TV사업도 최근에 접기로 했지요. 대신 영화와 음악 등 엔터테이너쪽으로 갑니다. 모르겠어, 이게 과연 얼마나 덩치가 커질 수 있는 산업인지. 그리고 AI의 도전에 비제조업이 어느 정도 선방할지,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한가지, 일본이 다른나라에 비해 월등한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부분은 제 견해로 망가(Manga)와 애니메(Anime)입니다. 망가 = 만화요. 이게 일본인의 기질상 맞아요. 그들의 오타쿠적 취미가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의 틀과 맞아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걸 토대로 에니매가 만들어지니, 이 부분은 다른 나라가 쉽게 따라오지 못 할 것입니다.
- 히타치: 글로벌화를 적기에 이행하여 가전 중심에서 중공업쪽으로 성공 전환. 많이 들어봤을 유럽의 ABB도 이 회사가 인수했습니다. 한편 도시바는 전략의 초점이 흔들흔들해, 히타치 따라하다가 미국의 발전 설비회사 웨스팅하우스 잘못 인수해서 망해버렸습니다, 안따깝게도.
- 유니클로(회사명 Fast Retailing): 소프트뱅크 손 사장에 버금가는 일본 최고의 창업자 야나이(柳井)상이 이끄는 기업입니다. Mr. Son & Mr. Yanai 둘 다, 니케이는 이들에게 아니마루 스피릿또의 칭호를 붙여주고 있습니다. Animal Spirit.
10대 기업을 정리하면서, 니케이가 바라는 일본 기업의 미래는 손 사장이나 야나이 사장처럼 상식을 깨는 아이디어를 내고, 남 눈치 안보고, 저돌적으로 파고들다 크게 실패도 하고, 실패해서 개 쿠사리 먹어도 히히 웃어넘길 수 있는, 즉 일본인들에게는 상당히 결핍되어 있는 이 DNA가 들어있는 그들에게 달려있다고 결론내리는 것 같습니다. 과거 일본이 경제 부흥을 이루던 시기에 나타났던 천재 CEO들, 우리도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아래 이름들에 계보를 잇듯이:
- Sony: 盛田昭夫 모리타 가즈오 상 (워크맨 붐의 주역)
- Honda: 本田宗一郎 혼다 소이치로 상
- Panasonic: 松下幸之助 마츠시타 고노스케 상 (파나소닉의 원래 이름이 마츠시타 전기였어요)
- Kyosera: 稲盛和夫 이나모리 가즈오 상 (후에 JAL, KDDI도 다 살려냄)
오늘은 일본 얘기를 하고 있으니 최근 겪은 일화 소개하며 이번 호 마칠까 합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재택으로 업무에 열중하던 중, 하루 종일 대화 한 마디도 없이 키보드 자판만 두드리고 있을라니 몸이 쑤셔서 오후 시간 빌 때 에라 모르겠다, 자전거타고 동네 골프 연습장으로 달렸어요. 펑 트인 잔디 보면서 드라이버나 한 시간 날리다오면 기분 좀 풀리겠지 하여.
아참 그 날이 수요일이었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연습장 쉬는날이네. 혹시 몰라서 전화 해봤더니 퉁명스런 아자씨가 받으며 모시모시, 오늘 쉬므니다 쓰미마셍, 하고 끊네. 근데 왠지 이 아저씨 골프장 주인 같지가 않어, 그래서 일단 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영업하네. 그래서 한 시간 잘 치다 왔어요.
시간 끝나 결재하면서 거기 주인 여자분한테 물어봤지. 아까요, 제가 전화했더니 어떤 아저씨가 받던데요, 물었다. 그랬더니 아~ 아~ 소 데스네, 거기 아마 옆 집 밧팅구 센타 데스네, 라는거야. Batting Center, 그 있잖아요 우리 옛날에 500원 넣고 타석에 서면 야구공 튀어나와 빳다로 치는거. 그 골프 연습장이과는 전화번호 끝자리가 틀리다 했던가, 그래서 가끔 비슷한 문의 온다 했어요.
다음 주가 되어, 궁금하길래 그 배팅 센터를 한 번 가 봤지. 똑같은 낮 시간이야. 누가 있겠어, 하고 쓰윽 지나가려는데 어떤 백수같은 인간, 혼자 상실감을 달래며 빳다를 휘두르는 타석의 옆에, 한 소년이 묵상하듯 앉아있더라고. 얘는 뭐지? 타석에 들기 전 오타니 선수처럼 투수의 심리를 음양오행의 법칙으로 다 파악하고 난 후 등장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연습 다 끝나 오늘 경기 자신의 스윙에 있어 개선점은 무엇인가, 일본인답게 면밀히 분석중인가. 옆에서 자전거로 잠시 스치며 지나가는 광경이기에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소년의 비장한 각오가 나에게도 파동처럼 전해져 오는 듯 하여 조용히 그에게 응원을 보내며 자리를 떴습니다. 소년아 일본의 미래는 너에게 달려있다. 빳다 길게 잡고 꼭 호무랑 때리기 바란다, 오네가이시마스!

* 호무랑 = home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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