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밤이 너를 부를 때
-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창밖에 풀벌레 소리가 낮게 들려오는 한여름의 어느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열대야 탓에 맺힌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쳐본다. 책상 위 놓인 시계를 살펴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왠지 모르게 시계 초침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틱, 틱, 틱, 틱. 그 소리를 신경 쓰지 않으려 하니 더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점점 더 많은 감각들이 들이친다. 마치 내가 잠드는 것을 방해하는 것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불면의 밤. 한 달 전부터 난 불면증에 시달렸다. 인구의 1/3 정도가 이런 불면증을 일생에 한 번은 경험한다고 한다.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면 난 어떻게든 잠들기 위해 노래를 찾는다. 그렇게 노래를 찾다 보면 문득 어떤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그 노래를 지금 들어야만 할 것 같다고. 그런 마음에 노래를 찾아 듣고 있을 때면 마치 그 노래를 즐겨 듣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다. 여러 플레이리스트를 전전하다 끝내 도달하는 그 노래가 담고 있는 시절은 내게 익숙하고 소중하지만, 어느새 잊어버린 스무 살 무렵의 시간이다.
어떤 노래는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을 담고 있다. 한 곡 반복으로 줄곧 듣던 그 시절의 그 노래. 그 시간을 내 옆에서 함께 해왔던 그 노래. 내게 그런 노래 중 하나는 1997년 발매된 장필순의 다섯 번째 앨범 수록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이다.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 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 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에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널 위한 나의 기억이 이제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힘겨운 어제를 나를 지켜주던 너의 가슴
이렇게 내 맘이 서글퍼질 때면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中
[온스테이지 플러스] 28. 장필순 -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https://www.youtube.com/watch?v=2GWFpQbaLRM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지났을 때였고, 다시 찾게 된 건 20년이 흐른 지금이다. 마음이 식어가고, 기억이 지워갈 때쯤 다시 찾아와 주길 바라는 가사처럼 이 노래는 잠들지 못하는 날에 가끔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온다. 누군가가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밤, 그럴 때 외로움은 불면과 함께 찾아온다. 이제는 떠나보낸 어떤 시절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돌아오길 바랄 때 이 노래는 다시 나를 찾아온다. 마치 잠들지 못하며 외로워하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려는 것처럼. 그럴 때면 몇 년이라는 세월은 몇 분의 시간으로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이 노래를 즐겨 듣던 그 시절은 분명 지나갔다. 시간은 흘러가고, 기억과 마음은 흐려졌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조금 쓸쓸해진다. 하지만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내게 찾아온 이 노래처럼 잊었다고 생각해도, 잊지 않은 듯싶다.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날에 기도하듯 부르면 날 찾아온다. 그럴 때면 분명 그 시절은 잠시나마 날 찾아온다.
불면의 밤은 분명 괴로운 일이지만, 어쩌면 이 밤이 이 노래를 내게 불러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과 불면은 잠시나마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5분 남짓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노래가 끝이 났다. 방을 감싸고 있는 정적이 다시 날 찾아왔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다시 재생 버튼을 눌러 앵콜을 청해 본다. 이젠 잠이 찾아오길 바라며.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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