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4일 에세이레터- 마지막 처음

  몇 년 전에 모 보이 그룹이 발표한 <마지막 첫사랑>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가사는 제법 당돌하다. 첫사랑이지만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끝내주게 사랑해 보겠다는 연하남(들)의 다짐을 말하는 노래이다. 나는 이 그룹의 팬도 아니고, 발랄한 사운드를 좋아하지도 않으며, 이 노래와 관련된 아름다운 기억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이 노래를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좋아한다. 이유는 바로 제목에 있다. ‘마지막 첫사랑’이라는 제목이 사랑을 넘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 처음이자 마지막, 마지막이자 처음

  누구나 처음을 산다. 바꿔 말하면, 처음으로 산다. 전생론자나 윤회 사상을 지지하는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반기를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는 인생은 이번 생이 처음이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모두 ‘처음으로’ 사는 셈이다. 인생의 기억은 현재의 삶이 유일하므로, 현재의 삶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유일무이한 시간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순간들, 그 경험들도 처음이라는 색깔로 등장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저마다의 색과 빛으로 변해 간다. 그 ‘처음’이라는 색깔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얼마나 당황스럽게 만드는지.

- 바보짓도 처음이자 마지막

  난데없이 당신을 바보로 만들어서 미안하지만, 감히 확신해 본다. 우리는 모두 바보‘인’ 동시에 바보‘였’다. 당신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면 지금쯤 멋진 바보짓을 하고 있을 테고, 어떤 경험의 처음으로부터 지나왔다면 화려했던 바보짓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괜찮다. 당신 혼자만의 유난스러운 경험이 아니니까. 나도 살면서 수없이 많은 바보짓을 했다. 처음으로 구두를 신었을 때는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졌고, 처음으로 소설을 썼을 때는 주인공 1과 주인공 2의 이름을 바꿔 적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손님에게 받은 돈을 도로 건네준 적도 있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았을까? 처음 어딘가에 갔을 때, 처음 무언가를 입었을 때, 처음 누군가와 이별했을 때.

  그 소란했던 바보짓들 때문에 내가 나에게 미움을 사기도 했다. 실수하지 않고 잘 해내는 법은 책으로, 소문으로, 조언으로 충분히 공부하고 연습했는데도 나는 자꾸만 미숙함을 저질렀다. 나의 모든 처음은 그런 바보짓투성이였고, 무엇 하나 계획한 대로 이루어 내지 못한 나를 비난했다.

  그런 나에게 그 노래, <마지막 첫사랑>이 손을 내밀었다.

  처음이기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랑처럼 내가 통과했던 처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과거가 되었다. 처음을 지나 과정으로, 과정을 지나 결과로 걸어가는 동안, 그 언젠가 겪었던 수많은 바보짓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 처음의 순환 

  나는 계속해서 초면인 길을 만날 것이다. 아직 못 이룬 일이 많은 데다 언젠가는 가리라고 핀을 박아 놓은 목적지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버릇처럼 어리석은 짓들을 하고 진땀을 흘리며 수습하는 날들이 이어질 테다. 그 미숙함은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고, 걸어가는 길에 찍힌 발자국들은 울퉁불퉁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갈림길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 순환은 선순환도, 악순환도 아니다. 그저 ‘순환’ 그 자체일 뿐이다.

  나는 이 구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연히 엉망일 수밖에 없기에 내 실력을 탓하지 않고, 단지 미숙한 처음으로부터 조금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 이것은 처음의 순환을 깨달은 나의 ‘첫’ 다짐이다. 이 다짐도 어그러지고 뭉개져서 나는 또 구석에 처박혀 실패를 곱씹게 될지 모르지만, 두루마리 휴지를 반쯤 뜯어 놓고 나면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첫 레터의 마지막 문단

  이 글을 쓰면서도 수많은 바보짓을 견뎠다. ‘글 쓰는 일’은 초면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오롯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 아닌가. 나는 내 말처럼 처음의 순환에 발을 딛은 것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겪어 온 절망들에 대해 글을 쓸 것 같다. 깨지고, 찢어지고, 뭉개지고, 박살이 났던 기억들을 텍스트와 음악으로 그러모아서 ‘짜잔, 이렇게 됐답니다’ 하고 공개할 것이다. 일종의 기억 리사이클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그래 보았을 감정들이 내 이야기로 인해 새삼스럽게 어루만져지기를 바란다.

  공교롭게도 평일의 마무리인 금요일에 이 글이 공개될 텐데, 평일 내내 무언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고 해서 금요일 아침부터 지난 나흘을 원망하지 않길 바란다. 금요일은 대개 신나는 하루이지만, 나처럼 나의 발자국을 책망하는 것이 습관인 사람들에게는 금요일 아침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하루일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와 여러분 모두 처음 살아 보는 오늘 하루를 너무 많이 두려워하지 않기를.

  처음 살아 본 작년을 너무 많이 책망하며 올해를 시작하지 않기를.

🎵 오늘의 노래 - NCT DREAM "마지막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