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21일 에세이레터- 이제 광화문에는 가지 않겠어요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서울의 경복궁 – 광화문 – 세종대로 일대는 기가 모여 있는 곳이라서, 그곳에 가면 탁 트인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많다고. 나는 그 글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정말로 땅의 기운이 작용한 건지는 몰라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광화문을 좋아했다. 뺑뺑 달리는 차들, 북적거리는 사람들, 수문장처럼 서 있는 빌딩들과 등 뒤에 든든하게 서 있는 위인들의 동상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마음이 들뜨곤 했다. 요즈음 광화문은 대대적인 공사 중이라 예전과 같은 기분이 들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화문은 나의 애착 공간이자.

  최고의 첫 데이트 장소였다.

  “광화문 가로수 은행잎 물들 때”

  왜 그랬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광화문에 가자고 했었다. 청소년기에도 그랬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랬다. 인터넷에서 말한 ‘기’라는 것이 이런 건가? 장소에도 도화살이 낄 수 있나? 덕분에 광화문 거리를 걷자면 홀로그램처럼 떠오르는 장면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해치 동상 옆에서 사진 찍는 걔와 나.

  세종대로를 걸으며 누가 걸음이 빠른지 시합하는 걔와 나.

  교보문고에서 책을 잔뜩 사서 나오는 걔와 나.

  달마다 바뀌는 교보생명 글 간판에 우리를 대입했던 걔와 나.

  정말이지 허접하고 유치한 장면들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그리워질 때마다 광화문에 간다. 벅참, 쓸쓸함, 애틋함, 아릿함. 저마다 다른 감정들을 쓸어 모아 가슴에 욱여넣은 뒤에 버스를 타는 것이다. 가는 길에는 버스 창문을 살짝 열어야 한다. 굳이 담지 않아도 됐을 감정들은 그 밖으로 알아서 빠져나가니까.

  “눈이 부시게 반짝이던 우리 둘은”

  장면마다 달라지는 ‘걔’들은 저마다의 못됨 혹은 사랑스러움을 남기고 나를 떠났다. 개중에는 어제까지도 내 밤잠을 괴롭혔던 못됨이 있고, 남은 평생의 버팀목이 될 것 같은 사랑스러움도 있다.

  못됨이 꼭 밉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독하게 못됐던 ‘걔’ 덕에 나는 앞으로 얼굴과 성격만 다른 ‘걔’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내가 누군가의 ‘걔’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 바보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 거야”

  생애 가장 지독했던 이별을 한 뒤에도 광화문에 갔었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이틀 전에 발매된 <광화문에서>를 반복 재생으로 틀어 놓고, 광화문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나는 사랑만 할 줄 알았지, 이별은 할 줄 몰랐다. 사랑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했는데, 왜 이별은 그러질 못했던 걸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광화문이 우리의 마지막 장면이 될 줄은 몰라서였을까. 나는 그렇게 첫 이별과 함께 열병을 얻었다. 감기도 아닌 것이, 몸살도 아닌 것이. 꽤 지독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여긴 그때처럼 아름다우니”

  정말 간만에 광화문에 가 보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가을 즈음이었으니, 잘 아는 장소인데도 명절 때 만난 친척처럼 낯선 느낌이었다. 그 거리와 장소들을 묵묵히 응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와 만날 것이고,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나는 전과 다른 시선으로 광화문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나는 이제 광화문에서 과거의 나를 찾지 않는다.

  장소는 새로워져 가고, 나는 나이를 살아간다. 나이를 먹는 것은 과거 위에 현재를 입어서 미래라는 착장을 완성하는 일이다. 당연히 기억의 몸통 위에도 현재를 입혀 주어야 한다. 그러니 광화문을 지난한 기억의 곳간으로 여기는 것도 이제는 그만두기로 한다.

  가라고 있는 길이니 걸어야 한다. 밟으라고 있는 블록이니 지나다녀야 한다. 그 길 위에서 더는 멈추지 않기로 한다. 또 다른 연인이 생겨도 광화문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갈 일이 생긴다고 해도 첫 데이트로는 절대. 애인의 원성에는 공사 먼지 핑계를 대야겠다.

  우리, 공기도 좋고 사람도 적은 숲엘 가자고.

🎵 오늘의 노래 - 규현 "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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