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계
나는 오랫동안 “해야 할 일”의 세계에서 살았다. 기도도, 사랑도, 쉼도 모두 ‘해야 하는 것’의 목록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의 세계. 같은 일이지만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오는 세계.
기도가 ‘존재함’으로 바뀌고, 사랑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나는 가장 평범한 순간에서 발견했다.
두 페이지만 읽어도 충분하다
얼마 전, 화장실을 다녀온 후 근처에 놓인 영적 책을 두 페이지만 읽어보기 시작했다.
한 챕터도 아니고, 깊은 독서도 아니었다. 그냥 두 페이지만.
“이건 대충 하는 거야. 너무 가볍지 않나?” 내 안의 비판자가 속삭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날 이후, 나는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그 순간, 나는 두 세계의 근본적 차이를 몸으로 알게 되었다.
새벽 4시의 실험
오늘 새벽, 나는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해야 할 일의 목록 대신 내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무엇이 하고 싶어질까?”
몸은 스트레칭을 원했고, 마음은 글을 쓰고 싶어했고, 영혼은 고요한 기도를 갈망했다.
나는 하나하나에 "예"라고 답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전이 되자 마음에 떠오른 생각.
“책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도서관에 앉아 흐름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관상 전통, 현대인의 실제적 필요, 그리고 인류의 영적 지혜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나는 그저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에 “예”라고 했을 뿐이다.
성령의 언어
장 피에르 드 카우싸드는 말했다. “현재 순간의 성사(Sacrament of the Present Moment).” 매 순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기회라고.
토마스 머튼은 물었다. “참된 나는 누구인가?”
참된 행동은 거짓 자아가 아닌, 하나님 안에 숨겨진 참 자아에서 일어난다고.
오늘,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지금 무엇이 자연스러울까?”라고 묻고 그 답에 “예”라고 말한 것뿐이다.
우리 모두의 새벽 4시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해야 할 일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새벽.
하고 싶은 일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새벽.
모든 것이 의무처럼 느껴지는 새벽.
그때, 작은 질문 하나를 던져보면 어떨까?
“지금, 무엇이 자연스러울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그 질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영적 수행일 수 있다.
은총은 이미 흐르고 있다
하나님은 내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를 기다리지도 않으신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묻기를 기다리신다.
“지금, 무엇이 자연스러울까?”
그리고 내가 그 질문에 조용히 귀 기울일 때, 작은 기적이 시작된다.
오늘, 단 한 번만이라도
오늘 단 한 번만, 이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지금, 무엇이 하고 싶어질까?”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려놓고, 작은 갈망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두 페이지만 읽어도 좋다. 한 줄만 써도 좋다. 한 번의 숨조차 기도가 될 수 있다.
은총은 이미 흐르고 있다. 우리의 작은 관심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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