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마지막 주 - 못 가는 이유

나의 모든 합당한 이유를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2025.08.31 | 조회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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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의 발자취

매주 일요일 저녁, 한 주 간의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정리한 글귀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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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는 이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모세는 광야 2세대에게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가르친다. 광야 1세대는 가나안 땅을 정탐만 하고 돌아왔을 뿐인데 두려워서 전쟁하러 갈 수 없다고 백성들을 선동했다. 모세는 이들이 한 평생을 패역함으로 불평과 불만 속에 살다가 결국 광야에서 모두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들의 자식 세대에게는 아버지 세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신신당부한 것이다.

전쟁에 나갈 때는 두 가지 걸림이 없어야 한다. 우선 세상에 남아있는 미련들이 없어야 한다. 전쟁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겠지만 특히 고대 근동에서의 전쟁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도 각오하고 임해야 하는 전쟁이었다. 삶의 미련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전쟁에 나가도 죽음을 각오하고 용맹하게 싸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새 집을 짓고 나서 아직 하나님께 봉헌 예배를 드리지 못한 사람, 자기 소유의 포도 농장을 만들었는데 아직 거기서 난 열매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 또는 약혼한 여자를 아직 아내로 취하지 못한 사람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유사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

신명기 20:5-7

언뜻 보면 하나님께서 이들을 배려해주시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거나 천국에 대해 비유로 가르치실 때에도 동일하게 했던 말씀이다. 즉, 세상에 대한 미련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생업을 열심히 하고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니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보다 그 일을 우선시하면 결국 천국 잔치의 초청을 거부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은 반드시 영적 전쟁이 동반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말씀이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누가복음 15:16-20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59-62

 


 

전쟁에 대한 다른 한 가지 걸림은 두려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전쟁은 먼저 이 두려움을 넘어선 사람들만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치열한 곳이다.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앞두고 있을 때 두려워하는 자들은 모두 돌려 보내시곤 한다. 하나님께 있어서 전쟁에 합당한 군대는 양보다 질이 중요한 것이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신명기 20:1-4

이 두려움이 전쟁에 합당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질 수 있으므로 주의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 명이 두려워하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두려워하게 된다. 그럼 그들의 주변에 있던 또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된다. 이렇게 두려움이 온 집단에 퍼지면 이 군대는 전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신명기 20:8

 


 

이 두려움은 내가 요즘 치르고 있는 믿음의 전쟁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못 가는 이유가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전부 인간적으로는 합당한 이유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자로서는 합당하지 않은 이유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임을 믿기 때문에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보다도 내 두려움이 더 크다며 주저앉아서는, 어떻게든 이 두려움을 좀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뻗대고 있는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지금까지 악몽을 자주 꾼다.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차고 넘치게 주셨는데 이 악몽만큼은 완전히 제하여 주시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께서 특별히 평안한 잠을 허락해 주실 때도 있다. 반대로 나의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를 조명하실 때 꿈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가시와 같이 나를 찌르는 악몽이 대부분이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말씀하실 때는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이 분명히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몽을 꾸고 나면 내 마음에 거짓말이 스며든다. "조금 더 경건하고 신령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지 못해서 다시 악몽을 꾸는 것이다"라는 거짓말이다. 혹은 "이 악몽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인일지도 모른다"는 거짓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모든 두려움과 거짓말을 돌파하기 원하시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원하시는 것 같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고린도후서 12:7-9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 바울에서, 이 말씀의 이야기하는 '사단의 사자'를 사도 바울이 꾸는 악몽으로 연출했던 것이 기억난다. 영화에서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죄책감으로 인해 악몽을 자주 꾸는데, 한 번은 악몽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 고백한다. 기쁘고 은혜가 충만한 표정이 아니라 강한 두려움이 스쳐가는 표정으로 말이다.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나는 이 장면의 연출이 좋았다.

하나님께서 모든 가시를 제하여 주시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나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다. 그 무기는 바로 감사다. 이것을 알게 되자 조금씩 무기를 쓰는 법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악몽을 꾸더라도 아침에 깨자마자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먼저 드리려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정말 내 마음에 감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이 감사에는 다윗의 물맷돌과 같은 위력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더이상 전쟁에 못 가겠다고 두려워 주저앉는 자가 되기는 싫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때 모두가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지만 다윗은 소년의 몸으로 물맷돌만 들고 당당히 나아갔다. 이 전쟁은 큰 몸집이나 칼과 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승리하는 전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모든 합당한 이유를 내려놓고 날마다 한 걸음씩 주님께 나아간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사무엘상 17: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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