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나를 떠나소서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따라다니던 베드로에게는 열심과 순수함, 그러나 그 이면의 연약함과 혈기가 있다. 넘어지고 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세례를 받아 당당하게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베드로의 성장 스토리는 읽을 때마다 도전이 된다.
예수님이 처음 제자로 부르셨을 때부터 베드로는 성령에 사로잡혀 하는 듯한 고백들을 종종 한다. 어부인 베드로가 고기 잡는 일에 허탕을 치고 있을 때 예수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심히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개연성으로 따지면 감사하다고 하는 반응이 좀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이니 주님께 자신을 떠나시라는 고백을 한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누가복음 5:1-11
나는 죄인이니 떠나달라고 하더니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시자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는 전개도 범상치가 않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만 따라다니거나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남들과 다른 예수님에 대한 특별한 갈망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예수님이 자신을 누구라 생각하는지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때였고, 베드로는 후에 예수님이 붙잡히셨을 때 두려움에 도망가기도 한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것은 육이 아닌 영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5-17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던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던 것처럼 영적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귀신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조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귀신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두려움과 내어쫓김으로 임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면 괴로워한다.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누가복음 8:26-29
성령님께서 내 정체성을 조명해 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는 작년 이맘때 쯤 골방에서 혼자 설교를 듣다가 심한 회개를 한 적이 있다. 신앙 생활을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은혜의 시간에 익숙해져 나의 죄성을 잊어가던 찰나였다.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미 자복하여 해결된 죄라고 생각했지만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은 나의 상태와 그 원인이 조명된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의롭게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성령님의 강한 감동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죄를 볼 때 단순히 내가 잘못했던 것 정도로 여기고 용서를 구하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 죄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그 마음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성령님이 가르쳐 주셨을 때에야 비로소 나에게도 하나님과 같이 죄를 미워할 수 있는 마음이 부어졌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린도전서 2:9-11
그 이후로 지금까지 성령님은 내 삶 속에 회개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계신다. 그리고 이 역사에서 가장 클라이막스로 조명된 죄는 다름이 아니라 나의 사랑 없음이었다. 그런데 사랑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남에 대한 사랑은 없는데 나 자신만큼은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상처 주었던 것이 하나 하나 생각났다.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제 3자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마음 안에는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나만을 사랑하며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주 찌질한 인생을 스스로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착각하면서 30년 넘게 살아온 것이다. 잘 살다가 어떤 죄의 사건이 부분 부분 있었던 게 아니다. 죄된 나의 정체성이 인생 전체를 붙들고 있으니 죄의 열매가 맺혀 부분 부분 나타났던 것이다.
아직 이 정체성 조명에 대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고 밝히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성령님께서 이를 조명해 주시고 새 창조를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죄로 인하여 죽은 곳에서 부활을 이루신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수치가 나를 주장하지 못한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로마서 8:10-11
죽어 있으나 죽은지 몰랐던 사람이 갑자기 살아나면 어떻게 삶을 바라볼까? 거듭난 사람은 자신의 거듭남을 결코 의심할 수 없다. 오직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내 온 마음과 힘을 다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진다. 지금도 여전히 내 인품에는 눈을 씻고 봐도 사랑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부어지면 내 안에 사랑이 차서 흘러간다. 마찬가지로 기쁨도, 소망도, 감사도 그렇게 차서 흘러간다. 내 안에 없는 것이 어떻게 내 안에 가득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새 피조물로 빚어가고 계심을 존재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육신의 생명은 언젠가 끝이 난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길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길을 내게 보여주시고, 또 친히 그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영원히 찬양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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