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첫째 주 - 주를 거역하지 아니하다

선지자 이사야와 같은 강력한 신앙 고백을 나도 할 수 있을까요?

2025.07.06 | 조회 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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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의 발자취

매주 일요일 저녁, 한 주 간의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정리한 글귀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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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거역하지 아니하다

 

학창 시절 존경하는 위인을 적어 내라는 숙제를 누구나 한 번쯤 받아 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교과서나 위인전은 세상의 기준으로 여러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였지만 그런 인물들은 내 마음에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아마도 고민 끝에 부모님을 적어서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은 나를 일생동안 먹여주고 길러주고 계시니 존경할 만하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았던 것 같다. 나는 엄청난 효녀도 아니었고 부모님 말씀을 안 들어 속을 썩이는 일도 많았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에야 사람은 존경하고 따라갈 대상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고 사랑으로 섬길 대상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존경하고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바로 성경 말씀의 저자이며 등장 인물인 믿음의 선진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히 계시를 주시기 위해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들의 인간성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기름 부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살아가야 할 모습을 보고 배우라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얼마 전 성경을 읽다가 이사야서 50장 '주를 거역하지 아니하다'라는 소제목 이하로 이사야의 강력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선포하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받았고 순종함으로 그 말씀들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핍박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거역하지 않으며 뒤로 물러가지도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사야의 마음은 어땠을까? 힘들고 낙심하여 조금은 불평을 할 수도 있을텐데 오히려 대적들에게 가까이 나아오라고 선포하는 이사야의 전투력은 굉장하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찌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이사야 50:4-9

이사야는 선지자로 부르심 받을 때 하나님을 직접 뵈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정한 입을 인하여 죽을까 두려워할 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사하심을 얻고 그 은혜 가운데 소명을 받는다. 나는 내 방에서 회개하며 기도할 때에도 내 죄의 심각함을 깨닫게 되면 두려워지고, 그 죄를 고백하며 나아갈 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나아갈 수 있음이 감사하다. 하물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직접 뵈었을 때 깨닫는 자신의 죄와 그 죄를 사함 받았을 때의 심정은 어떠할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은혜와 감사가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낼 사람을 찾으실 때 자원하는 심령으로 자신을 보내달라고 즉시 대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1-8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선지자로 보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귀와 눈을 막으사 깨닫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도 들을 귀 없어 보이는 황량한 곳, 즉 광야와 같은 곳에서도 외치는 소리가 되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이사야가 낙심과 고난으로 힘들 것이 확실해 보이는 그 길을 어느 때까지 가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어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일생이 지나도 그때가 오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신다. 이사야가 부르심 받을 시기는 남유다가 비록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대였지만 나라로서는 여전히 건재할 때인데, 하나님께서는 이곳이 완전히 망하여 황폐해지는 때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이사야 6:9-12

수천년이 지난 지금 역사를 돌아볼 때 실제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때를 보지 못했다. 그 때란 아마도 바벨론 포로 시기 또는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거의 2000년을 나라 없이 흩어져 있던 그 시기를 가리키신 것이었다. 평생을 외쳐도 듣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조금 황당한 사명 같아 보이기도 한다. 황당한 걸 넘어서 이사야는 매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수염을 뽑히는 수치를 당하면서까지 그 길을 걸어간다. 나라면 그 핍박을 견디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흩어지고 땅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엄위하신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앞에서도 이사야의 순종은 굳건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노만 쏟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거룩한 씨, 곧 그루터기를 남겨둔다고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이를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이라 표현하며 기쁨으로 선포한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이사야 61:1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사야 61:10

 


 

이사야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좁은 길을 걸어갔던 선지자다. 히브리서에 언급되는 바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에 의해 톱으로 잘리는 순교를 당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핍박을 당하는 것부터 두려운 나로서는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갔던 순교의 길을 볼 때에 그 심정이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몸을 사리며 일한 하나님의 종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구원의 약속과 영원 복음을 알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믿음으로써 육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했던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서 초월했다기보다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위인들은 어떠할까? 사람들은 많은 선행을 했거나 많은 업적을 쌓은 이들을 위인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보는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같이 고난의 길을 걸어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고 그들을 무시하고 조롱한다. 그러나 단지 고난을 당한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기쁨과 감사와 순종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나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길이 형통한 길이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는 가기 싫고 저주받은 것 같은 그 길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는 형통한 길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사야 55:6-13

핍박과 고난 당하는 것이 두렵고 죽음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마음에 새기기 원한다. 나를 위해 먼저 그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도 주님께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한복음 1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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