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둘째 주 -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인식하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십니다.

2025.07.13 | 조회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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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의 발자취

매주 일요일 저녁, 한 주 간의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정리한 글귀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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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아직 인지 능력이 다 발달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은 눈을 가리면 남들도 자신을 못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볼 때 아이다운 순진함으로 여기고 귀여워한다. 그런데 만약 다 큰 사람이 여전히 자신의 눈만 가리고서 남들이 자신을 못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순진한 것이 아닌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나는 Coram Deo라는 라틴어 문구를 좋아한다. 나의 모든 삶의 순간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이것이 나의 신앙심을 일깨워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는 내가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의 존재를 인식했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대로 살며 죄를 즐길 때에는 마치 하나님이 안 보고 계신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 존재를 지워버렸다.

내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보고 계시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죄를 짓는 내 마음이 편하려고 내 눈만 가리고서 하나님은 못 보실 거라고 우기고 있을 뿐이다. 여호와의 크신 영광과 그의 얼굴 빛은 항상 우리를 비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그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이사야 59:1-3

하나님께서는 Coram Deo라는 문구에 대해, 내가 원할 때 선택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 서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계시고 우리를 보고 계심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인지하고 의식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앞에 선 내가 나의 눈만 가리고 있는 상황을 인지하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감사한 것은 아직 회개할 기회가 남아 있는 이생의 시간 속에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만약 육신이 죽고 더 이상 그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상태로 하나님 앞에 선 나를 마주한다면 어떠할까?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면서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바라보실 때 어린아이의 순진함으로 봐주시는 것 아닐까?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은 그 삶의 수한이 끝나면 심판대 앞에 우리를 세우시고 각자의 행한 대로 정확하게 보응하시는 분이시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좋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로마서 2:4-8

하나님의 의가 미치지 못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불의를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럴 수 없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의와 달리 높으셔서, 영벌에 처해지기 전까지는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려고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지금 불의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마지막 때가 되면 우리가 선택하고 행한 모든 것에 대해 판단받을 것이며 모든 불의도 빛 가운데 드러나 심판 당한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누가복음 12:2-5

심지어 지옥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옥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성경 말씀에서는 지옥에 대해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이 죄인을 사르는 곳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이사야 30:33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다. 내가 선택해서 취하거나 아니면 안 취하면 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취하지 않았을 때 내 앞에 주어지는 영벌이 지옥에서의 영원한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면 누가 그 제안을 감히 거절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시며 어느 때에나 모든 우주 만물을 감찰하시는 창조주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1-10

그러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돌들로라도 소리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이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나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사람들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이 제발 내 사랑을 알아달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였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돌과 같은 나라도 이 귀한 복음을 외치는 데 사용하여 주시기를, 이 외침이 누군가에게라도 가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9:37-40

 


 

돌이켰다면 이제부터는 말 그대로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나의 존재를 인지하고 의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끄러운 내 모습을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신 이유는 다시는 그와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나름대로 젊은 나이에 이 길로 나를 불러주신 것에 대해 나는 감사하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살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는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즉 일반적인 수명을 생각하면 수십 년의 세월을 하나님 앞에 선 자세로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혹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서 돌이키는 끊임없는 회개와 성결의 길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에스겔 18:26-27

둘째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정말 임박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서 깨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등불에 기름을 가득 채워두라는 경고를 주신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기에 끊임없는 회개와 성결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길의 끝에서 가리워진 것 없이 적신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이 아닌 기쁨으로 주의 얼굴을 뵐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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