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나의 신앙 생활은 오랜 시간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주일이 되어서야 예배를 드리며 잠깐 은혜 가운데 있다는 느낌에 머무를 뿐이었다. 어쩌면 그 잠깐의 은혜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깊은 마음 속에서는 알았지만 이러다가 하나님이 알아서 회복시키시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삶에 어떤 문제라도 발생하면 나 너무 힘들다고 하나님께 떼를 쓰면서 문제를 좀 해결해 달라고 매달렸다. 그런 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오랜 시간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나마 주 안에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매일 아침 성경 읽는 시간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심어주신 것이다.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면서 쫓기듯이 읽을 때가 대부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참으로 크셔서 그런 나에게도 때에 따라 필요한 말씀을 주시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 생각해 보면 내 고집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지체되고 우회되었을 뿐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인도해 오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화의 과정을 통해 장성한 자로 자라나기를 바라신다. 사람이 육신을 입고 태어나서 자라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유아기에는 혼자 걷고 먹을 수 있는 것이 그의 분량이고, 청소년기에는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것이 그의 분량이며,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뿐 아니라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이 그의 분량이다.
영이 거듭나서 자라나는 과정도 이에 빗대어 이해해 볼 수 있다. 다만 육신이 속한 물질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과 달리 영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자라나는 것 같다. 성경 말씀에 따르면 심지어 긴 시간이 지나도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는 영도 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브리서 5:12
젖을 먹는 어린아이는 부모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자신의 필요한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울면서 부모를 찾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찾는 영을 하나님은 사랑으로 돌보신다. 그것이 내게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은 은혜만 충만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다고 하신 말씀을 강조한다. 진리의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줄도 아는 장성한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브리서 5:13-14
성경 말씀은 어린 아이의 영을 가진 자는 다름이 아니라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하신다. 육신이 자라나려면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영이 자라나려면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손에 꽉 쥐고 있던 것들이 바스라져 가루가 되고 손에서 전부 흩어져버린 뒤에야 나는 아주 조금 자라난 것 같다. 일과 취미와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어드리고 나니 그제서야 하나님께 내 시선을 고정하고 말씀과 기도에 시간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 상태로 말씀 읽고 기도한다. 또한 자기 전에도 핸드폰을 보는 대신 말씀 읽고 기도한다.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녹음된 성경 낭독을 틀어놓고 잠을 청한다. 이 작은 변화조차도 나의 자아는 힘들다고 몸부림치며 조금이라도 몸이 피곤할 때는 하기 싫어한다. 이런 나를 보며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부터 이렇게 힘들어하니 복 있는 사람이 되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편의 첫 구절을 앵무새처럼 암송만 할 때는 당연히 나는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참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했던 것 같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1-2
이제서야 겨우 첫 걸음마를 뗀 것 같은 기분이다. 언제 자라나서 걷고 뛰며 연단을 받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영혼도 돌아볼 수 있는 장성한 자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 이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은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로 내 삶이 다시 바빠지는 때에도 말씀과 기도 훈련이 계속될 수 있기를 구할 뿐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나중에 커서 무슨 일을 하며 먹고 살지 걱정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걷는 연습을 계속 하다 보면 주님께서 뛰는 법도 가르치시고 단단한 식물도 먹이시지 않을까?
사실은 주님 앞에 모든 걸 내어드렸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것들을 다시 붙잡으려고 하는 연약함이 시시때때로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지금은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완성된 모습을 이미 아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나를 지켜보며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려고 노력한다. 그 날까지 내가 훈련받아야 할 것은 은혜 안에만 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진리는 결국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하기 싫은 것을 기꺼이 하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이루어가는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한일서 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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