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본분
작은 화분에 허브 씨앗을 심을 수 있는 키트를 산 적이 있다. 좋아하는 허브를 집에서 키우면 적은 양이라도 직접 재배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아서였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씨앗들을 흙에 심고 물을 열심히 주었다. 풍성하게 자란 허브의 잎사귀를 따 신선한 음식을 해 먹는 상상을 하며 즐거움으로 기다렸다.
키트에는 생각보다 씨앗 개수가 많다. 정상적으로 자라난다면 한 개만 심어도 충분한 작은 크기의 화분인데, 훨씬 많은 수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런데 기다리면서 알게 된 것은 많이 심어도 싹을 틔우는 씨앗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싹을 틔웠어도 먹을 만한 잎사귀를 내기까지 안정적으로 성장 궤도에 다다르는 씨앗은 거의 없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에 하나가 남아서 이것만이라도 잘 자라주기를 바랐지만 연약한 어린 순은 결국 얼마 뒤에 말라 죽어버렸다.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던 허브 키트의 경험과 반대로, 우리 집에는 조그맣게 시작했으나 지금은 무성해져서 나무가 되어가고 꽃을 피우는 화분들도 있다. 이것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 가만히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큰 성장을 이룬 것을 발견하곤 한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내가 열심히 돌보아도 결국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7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마가복음 4:26-27
이 경험을 소화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이 지구가 흙 속과 같은 곳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밝게 빛나는 천국이 흙 바깥과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지구에 보내신 수많은 사람 하나 하나가 다 흙 속에 심겨진 씨앗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씨앗이 흙 속이 좋다 하여 그 안에서만 잘 살겠다고 하면서 싹을 틔우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어떨까? 게다가 같은 생각을 가진 씨앗끼리 의기투합해서 흙 속의 무적 왕국을 세우려고 하는 등 엉뚱한 목표까지 세운다면 어떨까? 흙 바깥 세상에서 보면 이는 땅에 심기는 심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도 감감무소식인 씨앗이 되는 것이다. 결국 빛이 비추는 흙 바깥에서는 전혀 기억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반대로 흙 바깥 세상을 바라보고 싹을 틔우길 소망하는 씨앗이 있다면 어떨까? 자기를 썩히고 깨뜨려서 싹을 틔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싹을 틔운 이후에도 험난한 환경을 연약한 몸으로 맞서야 한다. 작은 씨앗 안에 무슨 능력이 있어서 흙을 뚫고 나오며 그 키가 자라날 수 있을까? 그러나 씨앗 안에는 오직 빛을 향하여 나아가고 그 빛 안에 거하고 싶은 소망이 있으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씨앗들을 기특하게 보시고 자라나게 하시는 것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그런 씨앗에게 흙 속은 거쳐가는 곳이자 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다. 흙 바깥으로 나가려면 내 몸이 깨어져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기 때문에 담대하게 맞선다. 장차 잉태될 생명의 기쁨을 알고서 기꺼이 자신을 깨뜨린다. 그렇게 자라나서 추수할 열매를 많이 맺는 곡식이 되고, 그늘에 새들을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된다. 이것이 흙 바깥 세상에서 볼 때 기쁨이 되는 씨앗의 모습이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마가복음 4:28-32
우리 집 화분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면 오로지 햇빛이 내리쬐는 방향으로만 열심히 움직인다. 그래서 균형있게 자라게 하려면 화분을 매번 돌려주어야 한다. 과학을 잘 모르지만 한번 상상해 보았다. 흙 속에서 처음 싹을 틔우려고 할 때부터 씨앗의 DNA에는 빛을 향해 가야한다는 한 가지 목표가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 모습을 볼 때 천국을 소망하며 침노하는 우리가 이 같은 자세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서의 삶이 흙 속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오로지 빛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빛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이 흙 속과 같은 지구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이유는, 빛이신 그 분께서 씨앗의 본분을 몸소 실천하심으로써 우리들에게 빛에 대한 소망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성경은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역할을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빛으로 보내시리라 예언하셨고, 예수님은 실제로 오셔서 하나님이 그 독생자를 빛으로 보내셨음을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이끌어 내시는 참 빛이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이사야 42:6-7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한복음 12:45-46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이 어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바깥에 빛이 비추는 참 세상이 있으니 어둠 속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빛 되신 예수님 한 분만 붙들면 된다.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씨앗인 나는 걱정할 것이 없다. 어둠 가운데 있는 나에게 빛을 보여주시고 비춰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빛을 포기할 수 없다. 영원히 그 빛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기쁨의 천국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좁고 협착하여 힘들다 해도 빛 되신 예수님께 붙들리고 매달려서라도 끝까지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한복음 17:20-24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