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를 듣기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좋아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이기 때문에 들은 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묵상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측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듣고 심지어 사랑의 말로 화답하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중심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에스겔 33:30-31
하나님이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대해 표현하시는 것을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슬프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것을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긴다고 표현하신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이것을 음악 공연을 감상하듯이 듣고는, 뒤돌아서면 들은 바와 반대된 삶의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 같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말을 노래 감상하듯이 듣고 나서는 정작 그 내용에 반응하며 행해주지 않는다면 상처가 될텐데, 하나님께서는 목숨보다 사랑하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그런 취급을 받으셨다.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 하거니와
에스겔 33:32
사실 선지자들의 외치는 바는 그렇게 고상한 내용이 아니다. 죄와 회개, 심판과 구원에 대한 것으로써 듣는 사람들의 영혼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대하고 절박한 내용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보내시면서 그를 파수꾼으로 보낸다고 말씀하신다. 그 의미인즉슨, 임박한 위험을 보고도 경고하지 않은 파수꾼이 있다면 그 성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할 때 그 피를 파수꾼에게 돌릴 것이니 목숨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엄중한 사명이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에스겔 33:7-9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돌이키는 여부와 상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포하고 계신다. 백성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온 힘을 다해 외쳤다면 파수꾼의 역할은 그것으로 달성된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짐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때에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죄의 결과로 심판이 임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두렵고 떨리는 내용을 그저 아름다운 노래 정도로 여기는 백성들의 모습은 무언가 크게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에스겔 33:33
그런데 이것이 어쩌면 나의 모습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이 살기 위한 생명의 말씀으로 붙드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뒷 배경을 깔아주는 배경음악으로 취급했던 것은 아닐까?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문제될 것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루 24시간 중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도, 내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 잠깐의 시간을 쉽게 희생하고 쉬어버린다.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적인 기지로 해결하려고 한다. 하나님께 받은 복이 수없이 많은데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에 매몰되어 감사를 잊어버린다. 나의 마음의 중심은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과 얼마나 다를까?
나의 상태를 직면할수록 나는 더욱 주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시간을 말씀과 기도에 쏟는다고 해서 그로 인해 구원에 가까이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 안에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주님 안에 속해 있으면 말씀과 기도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행위는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것보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한복음 14:23-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태복음 7:24-30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무리들은 좋은 의미로 놀란다. 하지만 그 무리들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행하며 살아간 사람들은 얼마나 있었을까? 나를 비롯하여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그들과 얼마나 다를까? 듣기는 좋지만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도덕적 기준이라는 생각에 한 발 물러서 있는 것은 아닌지, 생명과 자유를 주는 진리의 말씀이 아닌 숨막히는 율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반대로 내 힘으로 그 기준을 만족시키리라는 헛된 열심을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의 힘, 나의 성품,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사랑함과 예수님 안에 속해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열매를 맺고 싶다. 오늘도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더 단단히 접붙여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간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4-5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