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의 못자국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인이 된 한 목사님의 실제 경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목사님이 되기 전에는 "사실을 통해서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철저한 현실주의 기자였다. 결혼 후 그의 아내가 먼저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자신의 남편에게도 믿음이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무신론 신념은 굳건했지만 아내의 신실한 헌신과 기도를 알기에 고뇌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수님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탐구하기 시작한다.
과연 예수님은 실재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맞을까?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뒤 부활한 것이 사실일까? 예수님에 관한 여러가지 궁금증에 대해 성경을 기반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 철저하고 집요해서 역시 기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논증을 보며 감탄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 좋은 자료가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감사했던 것은 이 과정을 통해서 한 영혼이 예수님에게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기자였던 리 스트로벨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명확한 증거들을 보며 "이제는 무신론을 지지하려면 더 큰 믿음이 필요할 정도"라고 생각하며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로 인해 가장 기뻐했던 것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었다고 한다. 천국에서도 잔치가 벌어졌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7
이 실화를 각색해서 만든 영화도 보았는데, 그에 대한 리뷰로 "모든 증거는 거들 뿐, 믿음은 은혜의 영역"이라고 남겼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리 스트로벨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이 그가 찾은 증거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이며, 그의 성품에 맞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증거가 무엇인지 아시고 친히 그 증거를 통하여 우리를 믿음의 여정으로 인도하신다.
다큐멘터리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곤 한다. 예수님이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나를 믿으라"고 말한다면 믿기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씀처럼 성경에서 이런 사람들의 원형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을 보고 자신의 손을 넣어보기 전까지는 안 믿겠다고 나름대로 냉철하게 반응한다. 그러다가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나서야 믿음을 고백한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한복음 20:25-29
전에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한다는 교훈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다시 나타나셔서 친히 그 손의 못자국을 보이셨다는 사실이 은혜로 다가온다. 결국 내가 도마와 같은 자임을 깨달았다. 사실은 도마와 비교할 수 없는 더 악한 고집쟁이였던 것 같다. 나도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에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그렇게 오래 다닌 나였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하나님은 나를 만나주시지 않는 것일까? 내가 찾아도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는 내가 필요없는 존재인 것 아닌가?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하나님의 때에 나를 찾아오셔서 단번에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악독한 나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나를 향하신 놀라운 십자가 사랑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복되다고 하신 것처럼 그것을 보지 않고도 믿는 그 믿음이었다. 도마보다 못한 나같은 자에게 이러한 선물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의무가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믿음의 선물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기도라는 것을 내게 가르치셨다. 아마도 리 스트로벨의 아내가 남편을 위해 했던 기도가 이러한 기도이지 않았을까?
나는 어린 시절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곤 했었다. 죽음 뒤의 삶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때의 나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죽어서도 영원한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무리 천국일지라도 영원한 삶은 지겹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반대로 죽음이 내 생명의 완전한 끝이라고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해졌는가 하면 그것 역시 두렵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면 끝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서 차라리 외면해 버렸다. 이것이 믿음을 선물로 받지 못했을 때 나의 마음 상태였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베드로전서 1:3-9
이 말씀은 신앙의 여정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성경을 통독하다가 은혜 받았던 말씀이다. 믿음에는 시련이 따른다는 사실에 크게 개의치 않고 그저 기뻤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금보다도 더 귀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것은 금이라고 할지라도 불타 없어질 것이다. 불타지도 아니하고 썩지도 아니할 하늘의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믿음을 선물로 받은 후 나에게 죽음 뒤의 삶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에 감사한다. 이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의 구원이다. 구원받은 영혼이 가는 영원 천국에서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것이 내게 유일한 소망이 되었다. 그 날에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나는 주님께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고, 가장 귀하며 유일하게 썩지 아니할 하늘의 보화를 주셨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을 주셨다. 내 영혼이 필요로 했던 모든 것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예수님께 내가 드릴 것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밖에 없다.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삶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그 마음이 흠 없이 진실되게 준비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4: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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