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견에 옳은대로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먼저, 먹고 살 만해질 때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가득 차면 이웃 나라들로부터 공격받고 고난을 당한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울부짖으면 하나님은 이들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사람, 즉 사사를 일으키신다. 사사들은 왕이 없는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일시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사사가 죽고 나면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간다. (심지어 상태가 한 단계 악화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그들에게 절하고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사사기 2:18-19
사사기는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곧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언뜻 보면 한심하게도 보인다. 그렇게 같은 과정을 도돌이표 돌면서 왜 교훈을 얻지도 못하는 것일까? 하나님을 떠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좀 깨닫고 하나님을 안 떠나면 좋을텐데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내 모습이 그와 다를 게 없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인데 내가 왜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란 말인가? 내 마음의 중심과 내가 행하는 일들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다. 죄 가운데 있는 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이 아니라 내가 볼 때 선해 보이는 일들을 선택한다. 그러고는 '이 정도는 괜찮지' 합리화하고 넘겨버린다. 나름대로 금식도 하고 회개도 하며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는 와중에도 '이 정도는 괜찮지'가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이 정도'라는 기준은 누가 정했나? 성경에는 없는 내 마음의 기준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하나님이 내 삶의 왕 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 내 삶으로부터 말미암은 모든 것들은 죄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죄의 시작이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것, '이 정도는 괜찮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죄가 본질적으로 기만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옳지 않은데 옳다고 속이는 것이다. 죄인데 죄가 아닌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바로 이 단계에서 죄임을 직시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의 나비효과는 가히 어마어마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육신을 입은 우리에게는 이 세상 관점의 이야기가 더 잘 와닿을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사사기는 좋은 예시를 보여준다.
사사기 17장과 19장에는 각각 영적으로 타락한 레위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서도 19장의 레위인과 첩 이야기는 너무 끔찍하다. 최근 몇 주 안에 서로 다른 두 목사님이 똑같이 이 이야기를 주제로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다. 설교를 듣기 전까지는 성경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 죄로 혼탁해진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벌이는 막장 스토리 정도로, 즉 제 3자 관점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레위인이 아주 작은 죄로부터 시작했으나 그 죄를 직시하지 않고 점점 더 큰 죄로 이어져 결국 참혹한 결과를 맞이하는 과정에 있다. 19장 말씀은 레위인이 첩을 취했다는 내용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첩을 취하는 것이 율법에 의해서 금지되는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르면 이상적이지도 않은 일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결혼에 대해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을 명령하고 계신다. 특히 레위인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하나님의 제사를 담당하도록 성별된 지파이므로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결혼 원칙이 적용된다. 19장 1절의 내용은 레위인마저도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 만큼 타락한 시대의 암흑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세기 2:24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사사기 19:1
다만 이는 심각한 죄라고 생각할 정도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문제가 이어진다. 이 첩은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레위인 남편을 두고 행음하며 집을 나가기까지 한다. 결혼한 여자의 행음은 구약 시대에는 사형에 해당되며 예수님께서도 유일하게 이혼을 허용하는 사안이다. 그런 여자를 차마 죽이기까지는 마음이 어렵다 해도, 책망하거나 내어쫓지 못할망정 다시 찾으러 가서 다정하게 설득한다. 이 레위인에게는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의 육신적인 기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레위기 20:10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태복음 5:3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니라사사기 19:2-3
설상가상으로 더 묵고 가라고 여러번 붙잡는 장인의 말을 듣고 며칠이나 일정을 지체하는데, 레위인이 소명에 해당되지 않는 사유로 자신이 속한 성읍을 오래 떠나 있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조차 소홀히 여기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로 인해 돌아가는 길에서도 시간이 지체되고 해진 뒤 거할 곳을 찾으며 방황하다가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 사람이 첩과 하인으로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해가 저물어가니 청컨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찌기 그대의 길을 행하여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사사기 19:9
이러한 레위인의 죄가 죄를 낳는 과정을 볼 때, 그 시작이 '이 정도는 괜찮지'라고 생각되는 작은 죄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나의 '이 정도는 괜찮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샅샅이 끄집어내서 회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경각심이 든다.
죄와 회개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면 매일 발을 씻는 회개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매일 회개해야 할 만큼 죄를 많이 짓고 산다는 말인가? 여기서 함정은 '내 기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아야 정말 매일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기준에서 나의 숨은 허물을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19:12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죄로 가득한지 말씀하셨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손을 안 씻고 음식을 먹는 것을 지적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죄를 지적하신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내 마음 안에 온갖 더러운 죄를 보고 계시는데 내가 그 분 앞에서 죄 없음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15:17-20
그러니 매일 발을 씻는 회개가 중요한 것이다. 이는 죄가 치명적인 나비효과를 일으키기 전에 미리 미리 바로잡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한참 가고 나서야 돌이킬 수 없는 사망의 길 끝 낭떠러지에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회개의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의 힘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것을 믿으며 나아간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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