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인도할 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갈 때 있던 일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을 머물며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든다. 십계명은 시내산 언약이 명문화된 것인데, 이 중 가장 첫 계명이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우상 숭배 금지에 대한 내용이다. 결국 금송아지는 이 첫 계명에 대한 거부와 반역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이 이야기를 바꿔 말하면 결혼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한쪽이 언약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파기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 언약의 조건이란 다른 어떤 상대도 아닌 배우자만을 평생 사랑하겠다는 맹세다. 나는 금송아지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듣고 우상 숭배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왜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하시고 첫 번째로 금하시는가? 그것은 영적인 간음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우상 숭배는 fornic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간음을 뜻한다고 한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출애굽기 32:1-4
백성은 백성대로 우리를 인도할 신이 눈 앞에 안 보인다고 불평 불만을 터뜨린다. 금송아지에 여호와라는 이름만 붙여놓고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한다. 오히려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왜 내 곁에 안 계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느냐면서, 그러니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우상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론은 아론대로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망설이지도 않고 금송아지를 만든다. 한 번 정도 말리는 것도 없이 바로 금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모세가 책망하자 백성들이 요구해서 내가 어쩔수 없이 했다는 식으로 변명한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출애굽기 32:21-24
메마르고 혹독한 광야의 삶은 분명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마실 물을 찾기도 힘들고, 전에는 마음껏 먹던 다양한 음식들도 없어서 매일같이 만나만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 광야의 시간은 오히려 감사가 넘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부러 긍정의 힘을 발휘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노예 상태로 먹고 마실 것이 풍족한 삶을 사는 것과 조금 힘들더라도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 중 무엇이 더 감사할 일인가?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수기 11:4-6
게다가 힘든 시간은 잠깐 머물다 지나갈 뿐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최종적으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될 테니까 말이다. 천년 만년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으면서 광야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광야에서의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 정탐을 보냈더니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전부 겁에 질려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지로 내몬다고 선동한다. 이때 하나님을 원망했던 광야 1세대가 전부 죽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더 광야에서 유리하게 된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수기 14:1-3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수기 14:27-30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보내는 시간은 성도가 거듭난 이후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과 대응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허망하게 죽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인가?
지금 이때에 하나님은 나에게 감사를 훈련시키고 계신다. 감사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우상을 찾게 된다. 나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신 감사함은 금세 잊고서 왜 물은 안 주시나, 왜 고기는 안 주시나 하며 애굽을 그리워하게 된다. 노예로 살아도 애굽이, 세상이 좋다는 것이다. 이처럼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무엇이든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결국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 둘 중 하나를 섬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재물, 즉 먹고 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면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인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4-25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때에 맞게 공급하신다. 그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 지혜에 관한 책 잠언에서 이 이치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언 30:8-9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주인 사이에서 나의 선택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종이었다가 자유인이 된 사람은 절대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문제를 비롯해 삶의 여러 가지 고난과 힘든 상황을 핑계로 얼마든지 다시 금송아지를 만들 수 있다. 고기도 생선도 마음껏 배부르게 먹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로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의 만나를 내려주시고 만족하게 하여 주시기를, 그래서 삶이라는 광야를 모두 지날 때까지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 되셔서 나를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신명기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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