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일을 고를 때, 남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택하시나요?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택하시나요?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왔어요.
끝까지 살아남는 가게들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기백이 느껴집니다. 그건 어떻게 보면 '광기(狂気)' 일지도 몰라요.결국 그 광기를 품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가게야말로, 오래 살아남는 식당이라고 생각합니다.
残っていくものにはただならぬ気迫を感じる。それは狂気とも言えるかもしれない。狂気を持ち続けられる店こそが、残っていく飲食店だと思います。
— 사이토 테루히코 (齊藤輝彦)요리통신 인터뷰 중
틀에 박힌 성공 문법을 거부하고, 자신의 철학을 관철해낸 도쿄 아히루 스토어 (アヒルストア)의 사이토 남매 이야기입니다.
9평 안, 서서 마시는 풍경
이곳 아히루 스토어는 정원이 15명 남짓인 데다 예약도 받지 않아, 한 시간 이상 기다리는 건 늘 감수해야 해요.
가게 안에 들어서면 저마다 다른 와인 글라스를 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오가는 손님과 어깨가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9평 면적에 좌석은 모두 카운터석[1]이죠. 서서 마시는게 기본이고, 카운터에 자리가 나면 그때서야 앉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메뉴판은 직원들이 손으로 휘갈겨 쓴 필기체라, 번역기를 써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일본인 손님조차 가끔 되물을 정도죠.
이쯤 되면 '꼭 가야 할 도쿄 여행 리스트'에서는 그만 빼도 되겠다 싶으시죠?
하지만 실은 정반대입니다. 도쿄에서 가봐야 할 와인바를 꼽을 때, 아히루 스토어는 절대로 빠지지 않고 소개됩니다. 심지어 글로벌 와인 업계에서는 도쿄를 전 세계적인 내추럴 와인 붐의 중심지로 이끈 일등 공신으로 바로 이곳을 지목하죠.
동네 주민만 찾아올 것 같은 이 비좁은 공간에, 사이토 남매는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요?
도시락 가게와 와인숍, 그리고 갓 구운 빵
남매 중 맏이인 테루히코의 원래 전공은 건축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으로 설계사무소에 들어갔죠. 하지만 카페나 식당을 설계하는 동안, 언젠가 내 가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부풀었다고 해요. 결국 그는 자신의 열망을 시험해보고자 용기를 내 회사를 나옵니다.
이후 1인 도시락 포장마차와 내추럴 와인의 성지라 불리는 트로와자무르(3amours)를 거치며 외식업과 와인을 밑바닥부터 익혔어요. 그 치열한 시간이 그가 꿈꾸던 가게의 윤곽을 더욱 또렷하게 다듬어 주었습니다.
테루히코가 그린 장면은 이랬어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소박한 동네 베이커리 한구석에서,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며 편안하게 와인을 마시는 상상이었죠.
잠깐, 와인 바에 왜 갑자기 빵이냐고요?
테루히코는 손님들이 레스토랑의 격식에서 벗어나, 가장 직관적이고 편안한 방식으로 와인을 즐기길 바랐어요. 프랑스 파리의 캐주얼한 와인 바 문화를 도쿄에 그대로 옮겨오고 싶었던 거죠. 손으로 빵을 턱턱 뜯어, 접시에 남은 소스까지 남김없이 긁어 먹는 방식 말이에요.
뻣뻣했던 당시 도쿄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라면 어림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자신의 가게에서 손으로 뜯어 먹는 빵이 와인을 대하는 손님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킬 수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어요.
그 생각은 적중했고, 훗날 도쿄 미식계를 강타한 '빵과 함께 와인 마시기(パン飲み, 판노미)' 트렌드가 바로 이곳 아히루 스토어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이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진짜 베이커리가 필요했어요. 와인에 어울리는 코스요리를 대신할 만큼 맛있고 신선한 빵을 매일 구워낼 수 있어야 했죠. 그 마지막 퍼즐을 채운 사람이 바로 여동생, 와카코였습니다. 원래 중식 요리사였던 그녀는 오빠가 그리는 베이커리 와인 바 이야기를 듣고는, 사워도우와 화덕으로 과감히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로 결심합니다.
내추럴 와인과 함께 빈틈을 노려라
트로와자무르에서 와인을 수련하며, 테루히코는 오늘날의 아히루 스토어를 지탱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발견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내추럴 와인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프랑스를 제외한 국가에서 내추럴 와인은 낯선 개념이었어요. 맑고 깔끔한 클래식 와인과 달리 필터링을 거치지 않아 탁하고, 쿰쿰한 냄새가 난다며 외면받기 일쑤였죠.
하지만 테루히코는 내추럴 와인을 접하고서는 오히려 그 정형화되지 않은 맛과, 라벨 너머 농부들의 인생 이야기에 빠져들었어요. 그리고 확신했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은 이 맛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요.
다른 하나는 양극화된 도쿄 와인 씬의 공백이었어요.
당시 도쿄에서 와인을 즐기는 방식은 둘 중 하나였어요. 격식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와 함께 마시거나, 반대로 캐주얼한 이자카야에서 구색뿐인 하우스 와인을 마시는 선택지 뿐이었죠.
지금이야 문턱을 낮추고도 와인을 진심으로 다루는 동네 와인바의 개념이 익숙하지만, 그때는 없던 풍경이었거든요. 사이토 남매는 바로 그 빈틈을 채울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사랑받는 꼬릿함, 개성있는 탁함
2008년 3월, 그렇게 아히루 스토어가 오픈했습니다.
세상은 그 매력을 곧바로 알아봤을까요? 아니요. 시작은 대중의 냉대와 편견의 벽에 부딪히는 일의 연속이었어요.
가장 먼저 넘어야 했던 건 타치노미[2]의 잔술 가격의 문턱이었습니다. 아히루 스토어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서민적인 공간을 표방했어요. 하지만 원래 한 잔에 300~500엔이면 마시던 손님들에게, 1,000엔 안팎의 와인은 멈칫할 만한 가격이었죠.
나아가 내추럴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한 편견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허물기 힘들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내추럴 와인'이라는 명칭조차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탁하고 시큼한 맛, 쿰쿰한 향은 술이 상한 게 아니냐는 항의를 부르기에 충분했죠. 전통적인 와인에 익숙한 손님들의 기대와 이 투박한 와인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는, 상상 이상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테루히코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손님을 붙잡고 내추럴 와인의 차이점이나 그 가치를 설명하려 들면, 잘 모른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은 일본 손님들은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그는 연설을 늘어놓는 대신, 직접 글씨를 쓴 작은 종이 태그를 와인병 목마다 매달아 놓았습니다. 태그에는 포도 품종, 향과 맛의 특징, 그리고 테루히코가 그 와인을 마시며 느낀 감상이 적혀 있었어요. 손님들은 눈치를 보거나 물어봐야 하는 부담 없이도, 태그를 보며 편안하게 와인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테루히코의 환대가 더해져요. 그는 자신이 직접 프랑스 시골을 돌며 매료되었던 농장들의 열정을, 가게 안에도 그대로 들여놓았거든요. 그래서 손님이 고른 와인을 따라줄 때면, 포도를 길러낸 농부가 얼마나 고집 세고 유쾌한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포도를 밟았는지, 있는 그대로의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오해를 부르던 낯선 꼬릿함과 탁함은, 이내 개성과 다양성으로 바뀌었어요. 아히루 스토어는 단순한 동네 술집을 넘어, 도쿄에 내추럴 와인과 판노미라는 새로운 팝 컬처를 뿌리내린 선구자가 됩니다. 카운터 너머로 오가는 배려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야말로, 와인 애호가들을 토미가야의 작은 골목길에 줄을 세운 마법이었던 셈이죠.
TIP💡 로컬에 숨어있는 디테일
때로는 업계의 상식을 단호히 깨는 순간, 손님에게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기는 법이죠. 테루히코는 어려운 와인의 문법을 깨기 위해 공간 설계에서부터 엄청난 공을 들였는데요.
잠깐 아래 사진을 보고 오실게요. 평소 보던 가게들과 다른 점을 찾으셨나요?
그 비밀이 숨겨진 곳은 주방과 홀의 바닥의 단차입니다!
보통 식당에서는 배수와 작업 효율을 위해 홀보다 주방 바닥을 높게 지어요. 하지만 그는 카운터에 앉은 손님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싫었던 거죠. 그래서 주방 바닥을 홀보다 20cm나 더 낮춰버립니다. 까다로운 배수 시공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요리하는 남매와 카운터에 앉은 손님의 눈높이를 나란히 맞춘 것이죠.
빵을 썰고 와인을 따르는 주인장과 도란도란 눈을 맞추며 마시는 와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따뜻하지 않나요? 🍷
하지 않을 용기
자신이 좋아하는 걸 구현하고자 가게를 여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그 본질을 20년 가까이 그대로 지켜낸 가게는 극히 드뭅니다. 아히루 스토어를 이토록 오래가게 만든 건 눈부신 상업적 성공도, 문어발식 확장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멈춰야 할 때를 알고, 과감하게 '하지 않은' 선택들이었죠.
무형의 분위기, 공기감 [空気感, 쿠우키칸]
테루히코의 업적은, 매장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조차 규모를 키우지 않고 처음 가게 그대로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입니다. 도쿄의 수많은 내추럴 와인 바들이 대기업 자본과 손을 잡거나 화려한 백화점으로 진출하는 동안에도, 아히루 스토어는 확장도, 프랜차이즈도 단호히 거절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쿠우키칸(空気感), 공간에서 주인과 손님이 함께 나누는 공기와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규모를 키우거나 시스템을 상업화하는 순간, 이 가게를 특별하게 만든 동네 술집 특유의 따뜻함이 사라진다는 걸 테루히코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그는 진정한 쿠우키칸은 음식을 만들며 눈을 마주치고, 옆 사람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작은 공간에서만 유기적으로, 섬세하게 피어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한 달간의 멈춤, 여름 휴가 [夏休み, 나츠야스미]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도쿄 외식업계에서 연중무휴로 가능한 모든 시간을 영업에 쏟아붓는 건 흔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히루 스토어의 여름 휴가는 더욱 특별하죠. 가장 장사가 잘되는 8월 성수기를 포기하고, 한 달간의 긴 안식기를 갖기 때문이에요.
이 휴가는 사치가 아니라 더 오래 가기 위한 전략입니다. 요리와 접객은 사람의 체력과 감정을 깎아내리는 고된 육체노동입니다. 사이토 남매는 한 달간 멈춰 번아웃에서 벗어나고, 손님을 진심으로 다정하게 대할 수 있는 상태를 회복합니다.
이 기간동안 그들은 일본 각지의 시골 농가는 물론, 유럽의 빵집과 포도밭을 직접 찾아가 와인을 마시고 지역 특색 요리를 맛봅니다. 그렇게 채워 온 영감은 휴가가 끝나면 자연스레 새 메뉴로 이어지죠. 구운 채소에 실험적인 향신료 블렌드를 얹고,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와인을 선보이는 식으로요.
남들이 뒤처질까 두려워 쉬지 않고 달릴 때, 기꺼이 멈춰 서는 자세. 이 과감한 공백이야말로 같은 자리에서 20년 가까이 아히루 스토어를 지루할 틈 없이 살아 숨 쉬게 만든 진짜 비결인 셈이에요.
에필로그
유행에 맞춰 짧은 주기로 인테리어를 갈아엎고, 잘되면 규모를 키우는 일이 당연해진 시대입니다. 하지만 사랑받는 공간의 정답이 꼭 화려한 규모와 트렌디한 장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히루 스토어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사람 냄새와 손때 묻은 시간의 흔적을 감추는 대신, 자기만의 브랜드 자산으로 삼았죠.
제가 처음에 던진 질문, 기억나시나요?
저는 남의 필요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 속 깊이 새겨봅니다. 사랑하는 일을 오래 지켜내고 싶다면, 남의 시선과 화려한 유행을 좇는 대신 흔들리지 않는 뼈대를 세울 것. 그리고 그 위에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흔적을 두려워하지 말 것.
아히루 스토어의 빵과 와인처럼, 편하게 즐길때 찾는 여러분만의 '판노미'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살짝 들려주세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