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는 반대로 현실을 깨어나기 위해서는 ‘킥’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세진이 네이버 카페 ”루시드 드리머“에 가입한 건 영화 <인셉션>을 뒤늦게 보고 난 후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이 유명한 영화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는 곧장 카페에 나와 있는 온갖 방법을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가장 효과를 본 건 단연코 '꿈일기'였다. 잠들기 전 노트와 펜을 머리맡에 두고, 눈을 뜨는 대로 꿈에서 훔친 정보들을 기록했다. 옷의 무늬, 책상의 모서리, 간판 폰트 등 구체적일수록 꿈을 더 잘 인지할 수 있는 단서들이 되었고, 이러한 눈치가 쌓이자마자 곧장 ‘리얼리티 체크’를 시작했다. 손가락을 뒤로 꺾는다거나, 코와 입을 막고도 숨을 쉬는 방법도 있었지만, 세진이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오른 검지에 손거스러미를 뜯어보는 것. 현실에선 줄곧 세진이를 괴롭힌 그 거스러미는 자각몽에서는 그 어떤 따가움과 불쾌감, 핑크빛으로 물드는 핏방울도 자취를 감췄다.
자각몽을 실제 경험한 건 세진이가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만 4년째였다. 세진이 끝없이 마주하는 꿈의 기업에서의 불합격 통지를 견뎌내는 방법일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네이버 카페에서 모든 루시드 드리머들이 그러했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꿈 같은 상상을 경험하는 일. 뭐, 하늘을 날아다닌다던가, 순간 이동이라던가, 은행을 터는 그런 일들은 채 한 달을 가지 못했다. 세진이 꿈 속에서 원했던 것은, 환상의 환상이 아닌, 현실의 환상이었다.
오히려 세진이에게는 면접에서 유창하게 말을 하거나, 애타게 기다렸던 기업의 합격 발표를 마주하는 일, 심지어는 면접 내내 꼬리질문으로 세진이를 괴롭힌 면접관의 얼굴에 날리는 주먹이 재미났다. 면접관 앞에서 뒤엎은 책상에는 일절 죄책감이나, 불안감은 없었고, 무력함을 유력함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과 세진만 존재할 뿐이었다.
유튜브 어느 채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청년들은 “착해서” 무능한 정부로 인해 취업이 안되는 원인을 본인의 능력 부족에서 찾는다고 했다. 유럽의 프랑스 청년들이 취업이 어려울 때 함께 모여 시위를 하는 것과는 비교하며, 청년들을 안타까워하는 것인지, 조롱하는 것인지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고 있는 내용이었다.
지방 광역시 출신이지만, 그래도 공부는 서울에서 해야 한다고 믿었던 세진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똑똑하진 못했기에 부모님을 끈덕지게 설득했다. 그리고 어렵게 설득한 부모님으로부터 월세와 생활비를 명목으로 70만원씩 꼬박꼬박 받아온 지는 수년이 되었다. 매년 오르는 물가라는 핑계와 함께 용돈을 올려 받은 20대 후반의 세진은 은퇴한 부모님의 더 큰 부담이 되었고, 그걸 모르지 않기에 본가로 향하는 기차를 타지 못한 지는 2년이 넘었다. 나날이 잃어가는 자신감을 찾기에 세진은 ”착했고“, ”착했기에“ 더 고립되었다. 세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도, 친구도, 사랑도 아니었다. 할 수 있다는 효능감 한 모금이었다. 그래서 더욱 빠져들었다. 남들 다하는 코인도, 주식도, 도박도 아닌 꿈으로.
전지전능한 날들을 위한 지불은 퍽 심플했다. 깨어있는 시간을 바치는 것.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날들이 지속되었고, 눈만 뜬 채 몽롱함에 취해 꿈속보다 굼뜬 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닳디 닳은 자기소개서도 도통 써지지 않아 어두운 방구석에서 피딱지가 진 오른손 검지로 Delete 버튼만 신경질적으로 누를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은 지속되었고, 잠에 들면 세진이는 생각했다. 드디어 현실‘로’ 돌아왔다고. 아니, 현실‘이’ 돌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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