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겠냐고 묻는다면 식은땀부터 납니다. 불편한 자리의 삼겹살 저녁처럼 배가 살살 아파오고, 처음 나가본 모임처럼 말수가 급격히 없어지지요. 뿌연 머릿속을 헤집다보면 잡히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파편뿐이라서, 이게 내 기억인지 바깥에서 쬐어놓은 기억인지 불분명합니다. 첫째는 너무나도 쉽게 바래버리는 기억을 잡아놓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고, 둘째는 어린 시절이라면 응당 있어야만 할 법한 기억, 그러니까 동물원, 청룡열차, 할머니집 감나무, 까미와 흰둥이같은 것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놓고 보니 두 이유 다 내가 모자란 탓이군요. 반성할 것까지는 없는 이유겠지만, 삶을 돌아보고자 할 때 짚어볼 기억이 적다는 건 한 인간으로서 조금은 부끄러운 사실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당치도 않은 수식어이지만- 작가로서의 나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첫 기억, 그러니까 첫 글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명료하게 떠오르니까요. 억지로 짜내는 것보다는 잘 알고 있는 기억을 써보는 편이 더 낫겠죠.
내 첫 글이라 할 만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이년 전 화요일 저녁 거실 소파 위에서 생겨났습니다. 앞선 문장에서 '생겨나다' 와 '만들다', 그리고 '쓰다' 중 어느것이 더 적합할지 고심하다가 결국 저렇게 적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글이 쓰인 모양새는 창조나 집필보다는 구토에 가까웠거든요. 그렇게 생겨난 시는 토해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널부러져있습니다. 첫 글이라는 특별함을 지닌 채 갓 태어난 시에게 조금 가혹한 처사겠습니다만.
그렇게 생겨난 시의 제목은 <흘러 흘러>. 학년과 반, 이름까지 야무지게 적어놓은 메모장 첫 페이지에 적혀있습니다. 시어의 반복으로 감정의 강화를 표현했다느니 친구라는 소재에 흘러간다는 시어를 더함으로써 덧없는 우정의 회한을 토로한다느니 하는 얘기는 접어두고,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봅니다. 우선 소파 위라는 장소의 특수성은 거실까지 나와 저녁밥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학생의 식욕 덕이었습니다. 흐르는 것은 무엇 하나 잡히는 거 없이 맘대로 되지 않는 그맘때의 변덕스런 나였을 거고요. 친구를 끌어들인 건 그런 내 맘을 알아주는 진중한 친구 하나 없었음을 원망했던 거겠지요. 그렇게 나이대에 맞지만 다소 난잡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시는 노트에 적힌 많은 시 중 첫째요, 내 모든 시 중 첫째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글로 기억을 비춰보면 어떤 때라도 그 순간에 빨려들어갑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와 그때를 살았던 나를 마주하고요. 그 덕에 특별함은 끝없이 기억되고, 때로는 이렇게 글감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부활을 맞이하기도 하는가 봅니다. 그렇기에 나는 새끼를 처음으로 물가에 내놓는 어미곰의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시를 올립니다. 내 첫 아이를 보며 나를 읽어주세요. 이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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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예
원재 글 처음 읽어보는데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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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킴
작가님 문장이 너무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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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왕
이원재 작가님 앞으로 글이 기대돼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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