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산문_엄지손가락식 사랑

사랑, 견디고 태어나는

2023.08.18 | 조회 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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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마음

계속해서 읽고 쓰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편지

사진출처 unsplash.com/@huchenme
사진출처 unsplash.com/@huchen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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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그거 알아? 두 돌이 안 된 아기들에게 “최고야!” 하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동작을 보여주며 시키면, 잘 따라 하지를 못해. 대신 검지를 세우고 최고 흉내를 내지.

아마 엄지손가락이 생각만큼 쉽게 일으켜지지 않나봐. 있지, 아가들은 엄마 배 속에서 자주 엄지를 네 손가락 아래에 밀어 넣어 주먹을 꽉 쥐고 있대.

어찌나 꽉 쥐고 있는지 태어난 뒤로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손은 계속 동그랗게 주먹을 쥔 상태로 생활해. 잠을 잘 때에도 응가를 할 때도 작은 왕만두 같은 주먹을 꼭 쥐고 있어.

무엇이든 힘껏 움켜쥐어버리는 그 손이 자기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기기도 하고, 반대로 모로반사 때문에 손가락이 펼쳐지고 팔이 벌려지는 바람에 의지와 상관없이 제 얼굴을 할퀴기도 해서, 신생아들은 손싸개를 하고 있어.

천을 잘라 꿰매기도 힘들 만큼 아주 자그마한 손싸개를 나도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 만들어본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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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그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펼쳐 손톱을 깎아주던 날은 얼마나 떨렸는지. 손톱이 너무 작고 얇아서 잘 보이지도 깎이지도 않았는데, 행여 아기가 다칠까봐 나와 짝꿍은 벌벌 떨었지.

손싸개를 한 채 늘 주먹을 쥐고 있으니 손 안에는 뜻밖에 먼지가 잘 모였는데, 그 바람에 우리 첫째 아기는 ‘먼지 수집가’라는 별명을 얻었어. 땀이 스민 그 손에서는 귀여운 꼬순내도 났지.

J, 그런데 아기들이 배 속에서 자주 엄지를 감싸 주먹을 쥐고 있는 건,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래. 엄지가 밖으로 삐죽 솟아 있을 때 엄마의 속이 눌려 고통받을까봐. 사실 이건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의미부여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나는 아가가 엄마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주먹을 쥐는 거라고 믿을래.

아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자기가 받는 사랑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랑을 고스란히 모아서 태어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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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엄마가 된 나는 매일 폭발해서 소리를 지르고, 많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고 있어.

J, 너로서는 상상이 잘 안 되지? 학창 시절 나는 보노보노, 고라파덕, 잠만보처럼 모서리 없고 나사 하나 빠진 느릿한 캐릭터들의 이름을 별명으로 달고 지냈잖아. 완전히 달라진 나의 각과 온도와 속도. 그걸 보면 깜짝 놀랄걸.

그런데 그렇게 화를 낼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늘 후회. 내가 못나게 굴어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나를 좋아해주거든. 얼마만큼이냐 하면, 지구 밖에 우주 끝에 또 우주 끝에 또 우주 너머 그 끝까지 엄마를 사랑한대.

그때 나는 살짝 웃어. 무릎을 꿇고 백기를 들어. 당신들이 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제가 더 당신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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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펼칠 수 있게 된 아기들의 엄지는 여전히 위로 살짝 꼬부라져 있어. 몇 달이 더 지나야 다른 손가락들처럼 곧게 펴지지.

아기는 얼마나 오랜 시간, 엄지를 도대체 어느 정도로 세게 쥐고 있었던 걸까? 나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하려고.

J, 목소리가 커질 때면 그 손가락을 떠올릴게. 나 역시 엄지를 네 손가락 아래로 감싸 주먹을 쥐고 견뎌볼게. 땀이 스며 꼬순내가 날 때까지 그 사랑을 향해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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