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엄마가 얼마 전에 책을 읽는데 말이야, 이런 문장이 있었어.
그게 에세이래. 멋지지?
엄마는 에세이를 읽어. 엄마가 살아보지 못한 구체적인 삶들이 수조 안에 그득 채워져 있고, 그 깊이를 가늠하며 헤엄치기를 좋아하지. 그래서 엄마의 작은 서점에는 꽤 많은 부분을 에세이가 차지하고 있어. 한 날은 서점에 왔던 손님이 다소간 비꼬는 말투로 “여기는 에세이가 쫌 많네요?” 하고 말을 건네더라. 아마도 그 손님이 좋아하는 건 고전문학이나 인문학 등 비교적 무게가 있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이었을 거야. 그는 엄마의 서가를 한없이 가볍고 무가치한 것처럼 절하하고 돌아갔어.
그날 그에게 “아, 네.”라고 두 글자로 답해버린 걸 후회해. 잊지를 못해.
어쩌면 나조차도 그 가벼움을 들킬까 두려워했다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지.
다시 그를 만나면 어떻게 행동할까? 버럭 화라도 낼까? 부드럽게 웃으며 저 책의 구절을 읽어줄까?
엄마는 에세이를 써.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머릿속을 꽉 채운 상념들과 멀어지기 위하여. 거기에서 나를 떼어내려고.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나 머리가 빵 터져버릴까봐. 쓰지. 쓰고 나면 한결 나아. 일상을 어지럽히던 생각의 가지들이 정리되고, 그게 내 삶에서 어떤 뜻인지, 왜 내가 이 시간을 겪어야 하는지 보게 되지. 봐. 보고 나면 또 한결 나아. 엄마는 에세이를 쓰면서 자꾸 나아지는 거야.
엄마는 쓰고, 많은 시간 그걸 소리 내어 읽어. 읽고 또 고쳐. 조사도 바꾸고 중복되는 말들도 사전을 찾아 하나하나 다 다듬어. 정성스럽게. 멈추는 부분 없이 끝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때까지 고쳐. 누가 읽어줄지도 모르는 글을 쓰는 이름 없는 작가가 퍽도 애를 써. 그것만이 최선이니까. 그래야만 나아지고 조금 더 괜찮은 나로서 살 수 있으니까. 엄마는 애써 에세이를 쓰는 거야.
다시 그를 만나면 무어라 말해줄까? 나의 최선을 폄하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해볼까?
엄마는 써서 살고 싶어. 그래서 너희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나는 잠들지를 못했지. 생각에 살을 붙여나가는 동안 시계는 멈추지를 않고.
엄마의 모든 시도가 흔적을 남기고, 글이 되어 책으로 엮인다면, 무언가를 이룩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의 문장들 중 하나가, 재난의 틈에 선 그의 생을 구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야, 엄마는 계속 시도할 거야. 노력하고 시험할 거야. 실패할지라도 다시 또 다시.
엄마가 그를 구할 거야. ◆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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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홀
그동안 작가님의 메일을 읽으며 떠오른 여러 감상들이 스칩니다. 글쓰기에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무척이나 부럽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언젠가 문득 선물처럼 소식을 알려주시면 반가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에세이를 좋아한답니다!(찡긋)
읽고 쓰는 마음 (117)
래빗홀 님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에세이팬 동지이네요 히히:-) 쓰고 싶은 이야기들 잘 준비해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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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선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읽고 쓰는 마음 (117)
이의선 님, 우연한 인연들이 담긴 소중한 댓글을 늦게 확인하였네요.ㅠ 정말 신기하고 반가워요. 무엇보다 제 글을 좋아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해요!!! 쓰고 싶은 이야기들 잘 준비해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책방에서도 꼭 한번 뵐 수 있기를 바라며, 분기간 이의선 구독하러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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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긴 기간 동안 좋은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글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깨닫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마음 훈훈해지기도 하며 즐거웠어요. 매번 저의 세계를 확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채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북큐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팬이에요!
읽고 쓰는 마음 (117)
늘 응원해주시는 단비님 덕분에, 다시 한번 써볼 작정입니다!♥ 시즌2는 다소 비정기적이겠지만 용기 내어 단비님의 세계로 찾아뵐게요. (세계를 확장해준다는 말 너무 감동이었어요.ㅠ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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