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서 일하며 여름을 맞이하는 것도 벌써 여섯 번째. 여름이 시작되면 늘 책방에 ‘여름 책’ 코너를 만들어요. 제목에 여름이 들어간, 여름에 어울리는 정서의 책들을 함께 모아 비치하는 것이죠. 여름이 되면 여름 책이 잘 팔리거든요. 책방 주인들에게 일종의 치트키 같은 거예요. 출판사 입장에서도 비슷한 공식이 인정받고 있는지, 매해 6~8월 사이에 유독 ‘여름’을 키워드로 조합된 여러 제목의 책들이 출간되어요.
그런데 여름이 이토록 사랑받는 계절이었던가요? 봄 혹은 가을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넘치게 보았지만,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고생길이 훤한 여름을 제일로 꼽는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어요. 외려 그 계절이 주는 불쾌함을 이유로 싫어하는 계절로 여름을 말하는 이들은 많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여름마다 여름 책을 찾아다니는 것은, 여름만이 불러올 수 있는 아름다운 정서가 분명 존재한다는 뜻이겠지요.
찌는 듯 무더운 여름 방학의 한가운데. 함께 놀자며 모인 친구들. 한낮. 목적 없는 발걸음이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고. 누군가가 들고 있던 생수통에 든 물을 장난스럽게 뿌리기 시작하고. 모두가 운동장 한쪽 끝 수돗가를 향해 달리는데. 물을 세게 튼 채 수도꼭지를 움켜쥐면 멀리까지 흩날리던 물방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어버렸던. 흠뻑 젖은 옷이 다 마를 때까지 태양 아래를 활보하던. 여름의 한낮. 잠시 멈추어선 나무 그늘 아래. 가만히 서 듣는 매미 울음소리.
제게도 기억 속 여름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지금이야 저의 자그마한 아이들이 더위를 먹어 온열질환에 걸릴까봐 자주 실내를 향하며 조심시키고, 에어컨을 쾌적하게 틀어둔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느라 ‘여름다운 여름’은 잊은 지 오래지만요. 우리가 반짝거리는 추억으로 삼은 여름이란 대개 그 한가운데에 머물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땀을 흠뻑 쏟고 물에 젖는 게 두렵지 않던 날들. 달리고 돌아보며 여름을 가장 여름답게 여름을 보냈던 순간. 한여름 태양 아래로 거침없이 뛰어들던 겁 없는 시절. 아마 여름이란, 자신의 가장 젊고 찬란했던 시절의 은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야말로 살고 있었던 것’. 카뮈가 알제리 티파사에 돌아와 20여 년 전 자신이 만끽한 자유를 다시 갈망하듯, 우리는 진정 살아 있던 그 계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문장을 쓰든 그 끝에 ‘여름이었다’만 붙이면 감성적이고 아련한 느낌을 준다는 트위터 트윗을 매년 복기하며 우리들의 여름 기억을 꺼내어 보죠. 태어난 것들의 울음이 가득하던 저 여름을. 그 태양 아래서 생동하던 나의 모습을요.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와 『결혼·여름』의 책꼬리가 연결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두 책의 푸른 기운이 꼭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여기, 눈앞에 펼쳐진 장면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져서요. 우리가 어떤 순간의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갈 때, 겁 없이 작열하는 것 아래에 머물 때, 삶은 작동합니다. 그 살아 있음이 얼마나 생생하고 펄떡이는지, 계절의 끝에 가 서면 알게 되겠지요. 아, 여름이었어요.
2023년 8월 25일 순천에서 민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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