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책꼬리_소가 신이 나서 펄쩍 뛰는 모습을 본다면

우리에게 그들의 몸과 자유, 생에 관여할 권리가 있을까?

2023.04.28 | 조회 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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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마음

계속해서 읽고 쓰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편지

ⓒ민채씨
ⓒ민채씨


📚『아무튼, 비건』(김한민, 위고, 2018) 

📚 『날씨와 얼굴』(이슬아, 위고, 2023)

📚 『사로잡는 얼굴들』(이사 레슈코, 가망서사, 2022)

 

한 달 전쯤 나 혼자 산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 만화가 기안84가 고모의 시골집에서 소 축사 일을 돕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황소 우리 안에 있는 소똥을 치우고 그 자리에 새 톱밥을 깔아주는 과정이 방영되었죠. 깨끗한 톱밥이 깔린 우리로 들어선 소들은 펄쩍펄쩍 뛰며 한껏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날 출연진으로 참여한 한 방송인은 소도 뛸 줄 아는구나!”라며 리액션했어요. 물론 뛰는 능력 자체에 대한 말은 아니었던 듯하고, 소가 신이 나서 펄쩍 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는 의미였겠지만, 소가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안다는 점을 신기하다는 듯 박수를 치며 화면을 응시하는 출연진들의 반응은 어쩐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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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는 다른 동물들이 온전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을까요? 곱씹다보니 책꽂이에 꽂힌 책들로 눈길이 갔습니다. 그 무렵 반쯤 읽다 포기한 아무튼, 비건(김한민, 위고, 2018)이 다른 책들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지요.

지난 책 『0원으로 사는 삶』(박정미, 들녘, 2022)을 읽고 독서는 자연스럽게 참고 도서로 인용된 『아무튼, 비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이 얼마나 좋은지는 출간 이후 수도 없이 들어왔고, 그 이유로 책방에서도 많이 팔았답니다. 저도 읽으려 책을 사둔 지는 오래되었는데,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가지고만 있었어요. 이 책을 펼쳐 읽는 순간 삶에 지대한 변화가 올까봐, 그것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실천해내야 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아무튼, 비건』은 김한민 작가가 비거니즘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던 2018년 당시 그의 음식에 관한 비거니즘 기준은 ‘최소한 얼굴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였고, 여러 작가들 사이에서 이 문장이 회고되기도 했지요. 비거니즘을 정의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 실천해야만 하는지를 풀어가는 글은 결국 다른 동물들, 그러니까 다른 얼굴, 타자와 ‘연결감’의 회복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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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무튼, 비건을 읽던 무렵 출간된 날씨와 얼굴(이슬아, 위고, 2023)동물권, 소수자, 기후위기에 대한 이슬아 작가의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이 칼럼집에서 역시 나 아닌 얼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얼굴들이 가리키는 존재란 물론 인간뿐이 아니고,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어떤 동물들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생추어리(sanctuary)’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어요. ‘생추어리’는 공장식 축산 등 동물 착취 산업의 피해 동물들이 살아가는 피난처이자 안식처를 의미합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도축장과 농장 등에서 소, 돼지, 양 등을 데려와 넓은 곳에서 본래 습성대로 평생 살게 하는 게 목적이라 하지요. ‘세상에 이런 공간이 있다고? 동물들을 구조해 살게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싶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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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는 사이 책꼬리가 조금 더 길어져 사로잡는 얼굴들(이사 레슈코, 가망서사, 2022)을 이어서 읽었어요.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라는 부제처럼, 도축되지 않고 구조되어 나이 들어 죽을 자유를 얻은 동물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진집이에요.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얼굴을 하나씩 살펴보았어요. 동물권, 노화, 죽음에 관한 주제로 작업하는 사진작가 이사 레슈코가 담은 동물들에게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어. 그 이름으로 부르며 얼굴을 본다면, 누구도 함부로 그들의 자유를 앗아가지 못할 테지요. 도시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아닌 동물들은 서로 격리되었다시피 살아가고 있고, 개나 고양이를 제외한다면 인간 아닌 동물들의 표정과 몸짓 같은 건 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죠.

한번은 제주도에서 어느 곶자왈을 걷는데 풀을 뜯고 있던 소 무리와 마주친 적이 있어요. 저는 얼어붙어 멈추어 섰죠.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무서웠는데, 입구로 다시 돌아가자니 길은 너무 멀었고, 출구가 코앞이라 망설였지요. 한참 동안 꼼짝도 못하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그들 뒤로 살금살금 지나갔어요. 저는 그렇게 가까이에서 소를 마주한 게 처음이었고, 당장이라도 그들이 제게 발길질을 하리라 예상했지요. 하지만 그들은 제게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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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의 몸에, 자유에, 남아 있는 생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인간만 까맣게 잊어버린 ‘연결된 느낌’을 그들은 기억하고, 가여운 인간들을 봐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그들의 기쁨과 행복을 앗아가지요. 그들에게는 당연하게도 얼굴이 있었고, 그와 눈이 마주친다면, 누구도 쉽게 너를 먹어 내가 기쁨을 누리겠다고, 먹다 남은 너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제게도 각성은 시작되었고, 도축된 몸의 소비를 일부분 줄여 식단을 짜는 식으로 작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실천할 용기가 부족해 아무튼, 비건은 절반만 읽고 덮어두었어요. 그러곤 어떤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평화와 자유, 생의 모든 것을 빼앗긴 얼굴과, 그 얼굴들을 지키기 위해 권리를 말하며 싸우는 사람들의 얼굴을요. 다시 그 책을 펼쳐 마지막 장을 넘기고, 그 얼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날까지, 용기를 쌓아보겠습니다. 느려도 꼭 해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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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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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비

    0
    over 1 year 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 저도 저 세 권의 책들을 읽어봐야겠어요.

    ㄴ 답글 (1)
  • 날개

    0
    over 1 year 전

    책을 읽으면 '내 삶에 지대한 변화가 올까 봐' 두려운 마음 너무 공감이 되요. ㅎㅎ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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