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책꼬리_우리들의 여름 기억을 꺼내어

알베르 카뮈 『결혼·여름』

2023.08.25 | 조회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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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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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unsplash.com/@laviperch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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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북노마드)의 꼬리를 문 책은 알베르 카뮈 『결혼·여름』(책세상)입니다.

 

책방에서 일하며 여름을 맞이하는 것도 벌써 여섯 번째. 여름이 시작되면 늘 책방에 ‘여름 책’ 코너를 만들어요. 제목에 여름이 들어간, 여름에 어울리는 정서의 책들을 함께 모아 비치하는 것이죠. 여름이 되면 여름 책이 잘 팔리거든요. 책방 주인들에게 일종의 치트키 같은 거예요. 출판사 입장에서도 비슷한 공식이 인정받고 있는지, 매해 6~8월 사이에 유독 ‘여름’을 키워드로 조합된 여러 제목의 책들이 출간되어요.

그런데 여름이 이토록 사랑받는 계절이었던가요? 봄 혹은 가을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넘치게 보았지만,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고생길이 훤한 여름을 제일로 꼽는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어요. 외려 그 계절이 주는 불쾌함을 이유로 싫어하는 계절로 여름을 말하는 이들은 많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여름마다 여름 책을 찾아다니는 것은, 여름만이 불러올 수 있는 아름다운 정서가 분명 존재한다는 뜻이겠지요.

 

찌는 듯 무더운 여름 방학의 한가운데. 함께 놀자며 모인 친구들. 한낮. 목적 없는 발걸음이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고. 누군가가 들고 있던 생수통에 든 물을 장난스럽게 뿌리기 시작하고. 모두가 운동장 한쪽 끝 수돗가를 향해 달리는데. 물을 세게 튼 채 수도꼭지를 움켜쥐면 멀리까지 흩날리던 물방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어버렸던. 흠뻑 젖은 옷이 다 마를 때까지 태양 아래를 활보하던. 여름의 한낮. 잠시 멈추어선 나무 그늘 아래. 가만히 서 듣는 매미 울음소리.

제게도 기억 속 여름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지금이야 저의 자그마한 아이들이 더위를 먹어 온열질환에 걸릴까봐 자주 실내를 향하며 조심시키고, 에어컨을 쾌적하게 틀어둔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느라 ‘여름다운 여름’은 잊은 지 오래지만요. 우리가 반짝거리는 추억으로 삼은 여름이란 대개 그 한가운데에 머물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땀을 흠뻑 쏟고 물에 젖는 게 두렵지 않던 날들. 달리고 돌아보며 여름을 가장 여름답게 여름을 보냈던 순간. 한여름 태양 아래로 거침없이 뛰어들던 겁 없는 시절. 아마 여름이란, 자신의 가장 젊고 찬란했던 시절의 은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티파사로 돌아가게 될 순간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나는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자신의 젊음의 고장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스무 살 적에 사랑했거나 강렬하게 즐겼던 것을 마흔 살에 다시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광기, 거의 언제나 벌을 받게 마련인 광기다. (...) 나는 잊히지 않는 어떤 자유를 거기서 다시 찾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20년도 더 전에 나는 그곳에서 폐허 사이를 헤매어 다니고 압생트 풀 냄새를 맡고 돌에 기대어 몸을 데우고 봄이 지나도 살아남았다가 금방 꽃잎 지는 작은 장미꽃들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아침나절들을 송두리째 다 보냈었다. 매미들도 진력이 나서 잠잠해지는 시간이 정오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빛의 탐욕스러운 불길을 피해서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가끔 밤이면 별들이 흐드러지게 돋아난 하늘 아래서 뜬눈으로 잠을 자곤 했다. 그때 나는 그야말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여름』 158~159쪽

 

그야말로 살고 있었던 것’. 카뮈가 알제리 티파사에 돌아와 20여 년 전 자신이 만끽한 자유를 다시 갈망하듯, 우리는 진정 살아 있던 그 계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문장을 쓰든 그 끝에 ‘여름이었다’만 붙이면 감성적이고 아련한 느낌을 준다는 트위터 트윗을 매년 복기하며 우리들의 여름 기억을 꺼내어 보죠. 태어난 것들의 울음이 가득하던 저 여름을. 그 태양 아래서 생동하던 나의 모습을요.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와 『결혼·여름』의 책꼬리가 연결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두 책의 푸른 기운이 꼭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여기, 눈앞에 펼쳐진 장면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져서요. 우리가 어떤 순간의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갈 때, 겁 없이 작열하는 것 아래에 머물 때, 삶은 작동합니다. 그 살아 있음이 얼마나 생생하고 펄떡이는지, 계절의 끝에 가 서면 알게 되겠지요. 아, 여름이었어요.

 

2023825일 순천에서 민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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