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지 말 것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널 울게 할 테니까

2023.11.30 | 조회 1.0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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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명왕성

그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 (특히 사랑 타령하는 노래들)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널 울게 할 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 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 했을 때,

이사를 오며 인형을 버렸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베리베리 다이스키'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삶은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진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사랑에는 대가가 따른다.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하는 것이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은

내가 느꼈던 행복의 크기의 몇 배가 되어 찾아온다.

 

12살에 가장 아끼는 인형을 잃어버렸다.

지금도 그 강아지인형이 아른거리는 걸 보면

상실의 여운은 생각보다 깊고 긴 것 같다.

 

 

 

Jazmine
Jazmine

 

17살에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골든 리트리버

Jazmine과의 이별을 맞이했다.

그날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운 날 중 하루였다.

 

 

나는 어린 마음에

아무것도 사랑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사랑하게 될 것들이 없기를 바랐다.

 

 

 

시작하지 않으면

당연히 끝도 없으며

슬퍼할 추억도 없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랑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다가온다.

 

 

너는

흘러가듯

수족냉증이라고 말한 나에게

세 달치 발핫팩을 선물했다.

 

다 쓰면

겨울마다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의 세 번째 발핫팩 묶음이 다 떨어갈즈음

그와 이별을 맞이했다.

 

 

 

다행히도

비겁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게될수록

이별도 함께 준비했었다.

 

 

 

북두칠성을 보며

네가 나에게 영원을 약속할 때

눈물이 났다.

 

 

행복해서라기보다는

헤어지면

이 순간이

나를 가장 아프게할 것 같아

눈물이 났다.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그날 찍은 북두칠성 사진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그날 찍은 북두칠성 사진

 

 

같이 구름 걸터앉은 나무 바라보며 잔디밭에 누워 한 쪽 귀로만 듣던 달콤한 노래들이 쓰디쓴 아픔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잘 지내자, 우리' 짙은

 

달콤한 순간들은

늘 쓰디쓴 아픔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북두칠성이,

그 밤이

문득 문득 나를 아프게 한다.

 

 

이별과 이별의 후유증은 예상대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많이 사랑했다.

 

 

 

 

정현주 작가의 에세이 '그래도 사랑'에서는

 

사랑이란 본래 알 수 없는 것이고,

내 마음마저도 모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사랑은 무엇일까 그 답도 없는 잘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자고 말한다.

 

 

그랬다.

나는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떤지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너를 사랑하게 됐다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했다.

 

 

그와의 이별 후에

나는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게 많아질수록

나를 힘들게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너를 사랑했던 내 마음은

나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다른 것들을 사랑할 용기를 얻었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사랑할 것이고,

많이 울 작정이다!

 

 

 

 

그러니까

너도

마음껏

사랑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대놓고 너를 그리워하는 글을 마무리하며.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너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지만

약속해 어느 날 너 눈 감을 때 네 곁에 있을게

지금처럼 그래 난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궁금한 듯 나를 보는 널 꼭 안으며 난 그런 생각을 했어

'언젠가 너로 인해' 가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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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MIZU의 프로필 이미지

    HIMIZU

    0
    about 1 month 전

    좋은 글 감사합니다ㅎ

    ㄴ 답글
© 2024 가출한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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