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구하려다… 수해복구 중 숨진 20대 해병대원
지난 7월, 경북 예천에서 폭우에 의해 떠내려간 실종자를 수색하던 도중 한 젊은 해병대 병사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 경북 지역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5명의 실종자가 발생했고, 실종자들을 구하기 위해 해병대 1사단이 투입됐습니다. 해병대원들은 떠내려간 실종자를 찾기 위해 폭우로 불어난 강가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었는데요. 당시 강가의 물은 가슴 높이까지 차올랐고, 물살 역시 강해 수색을 진행하고 있는 해병대원 역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원들이 실종자를 찾던 도중 갑자기 발아래 강바닥이 꺼지면서 물살이 급해졌고, 병사 3명이 강물에 떠내려갔어요. 2명은 운이 좋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채상병은 급한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4시간 만에, 채상병은 강 하류 지점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요?
채상병의 가족들은 채상병이 목숨을 잃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해병대 간부들을 향해 “아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혔냐”며,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그렇게 비싸요 구명조끼가?”라고 따졌습니다. 채상병의 어머니는 “억울해, 너무 억울해, 구명조끼만 입었으면 살 수 있었을 것을 왜 이렇게 우리 아들을 허무하게 가게 했냐고요”라며 오열했습니다. 그는 이후 자필 편지에서 군과 정부에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구명조끼는 왜 지급되지 않았는가?
해병대 수사단은 채상병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수사했어요. 수사단은 해병대 지휘관과 간부 총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한다고 했고요. 특히 채상병이 속해 있었던 해병대 1사단의 사단장은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단 내 간부들에 의하면 사단장이 “가급적 구조를 하고 있는 대원들이 해병대임이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해병대 빨간티를 입고 작업할 것” 등의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구명조끼 없이 해병대 티셔츠만을 착용하고 수색작업을 하는 장병들의 사진에는 "훌륭한 공보활동이 이루어졌다"라고 칭찬을 덧붙이기도 했죠. 해병대 수사단은 위와 같은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무리한 지시가 사고로 이어졌다며, 사단장에게도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거예요.
항명죄? 오히려 수사단장이 해임된 이유
그러나 지난 7월 31일,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했다고 평가받았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박정훈 대령)이 갑작스럽게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됐어요. 박정훈 수사단장은 채상병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며 해병대 1사단장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판단하고 조사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결제까지 받았죠. 그리고 관련자들의 혐의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경찰에 이첩했어요. 마지막으로 채상병의 가족에게 수사 결과를 설명하고 그간의 과정을 대중에게 브리핑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에 의해 결제까지 받은 보고서를 보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는 것을 보류하고, 혐의 사실과 혐의 내용을 다 빼라는 지시였다고 합니다.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했고, 이미 결제까지 받은 보고서를 갑자기 보류하라는 명령에 의아함을 느낀 박정훈 수사단장은 이를 거부했다고 해요. 군의 여러 라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서의 내용을 바꾸고 경찰로의 이첩을 보류하라는 건 정당한 지시가 아닌 외압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결국 상부의 지시를 어긴 박정훈 수사단장은 보직에서 해임됐고, 조사 결과는 해병대 수사단이 특정한 8명의 혐의자가 2명으로 줄어드는 내용으로 바뀌었어요(1사단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에서 혐의 사실 특정 어려움으로 혐의 없이 사실관계만 경찰에 이첩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박정훈 수사단장은 군검찰에 의해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거짓말로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상태예요. 채상병의 할아버지는 편지를 통해 박정훈 수사단장이 보직에서 해임된 것에 대해 “억장이 무너진다”라는 심경을 밝혔다고 합니다.
수사 개입인가, 명령 불복종인가
박정훈 수사단장은 국방부가 ‘사건에 대한 법리를 재검토하고 사단장 등의 인원을 혐의에서 빼라’고 지시를 한 것이 수사에 대한 개입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상부의 지시가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조치였다는 것이죠. 지난 2021년 군 내부에서 성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예람 중사 사건 이후부터 군사법원법에는 군인의 사망 등 중대범죄를 인지한 경우 사건을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해야 한다는 규정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에 따라 군 수사기관이 중대범죄 사건을 인지하면 피의자의 죄명과 범죄 사실 등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고 사건을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해야 해요. 박정훈 수사단장 측은 군 내 일반적인 사건에는 장관이나 사령관 같은 지휘관에게 지휘·감독 권한이 있지만, 군의 3대 중대 범죄(성범죄∙사망사건∙입대 전 사건)에 대한 수사에 대해서는 관할권이 군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과거 이예람 중사와 윤일병 사건처럼 군대 내부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관할권이 군에 있을 경우, 수사의 투명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사건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끝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군 검찰단의 입장은 달라요. 군 검찰단은 박정훈 대령이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이라는 입장이에요. 군 검찰단은 박정훈 대령 측의 주장에 “법률 해석을 그르친 것으로, 무지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어요.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에 따라 ▲군사경찰은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된 부대장의 지휘·감독하에 범죄를 수사하도록 규정돼 있고 ▲군사경찰부대가 설치된 부대장은 소관 군사경찰 직무를 관장하고 소속 군사경찰을 지휘·감독하도록 규정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해병대 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에 대해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군부대 특유의 폐쇄성을 없애지 않는 이상…
군부대 특유의 폐쇄성을 없애지 않는 이상 또 다른 채상병, 이예람 중사, 윤일병 등의 사건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윤일병은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가혹행위로 숨졌지만, 당시 군 당국은 윤일병의 사인을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쇄에 따른 뇌 손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뒤늦게 ‘폭행 및 가혹 행위에 따른 사망’으로 사인을 변경해 군 수사에 대한 불신을 품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군 내부에서 진행되는 수사는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았고, 이는 곧 이예람 중사, 채상병 등의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군에서 위계질서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는데 사실을 감추고 왜곡해야 할 만큼 위계질서가 중요할까요? 채상병, 이예람 중사, 윤일병 등 모두 사망 이전 20대의 나이에 군에 입대해 고초를 겪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고, 사망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군 내부가 보다 투명해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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