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기만 하면 몸이 축 처지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옷이 있습니다. 올해부터 이 마법 같은 옷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하나 걱정인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대부분의 남성들이 서랍 구석 깊숙한 곳에 박아둔 이 옷. 바로 군복입니다.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모든 예비군 훈련이 정상화되었습니다. 올해부터는 군대를 전역한 1~8년 차의 예비군들은 빠짐없이 예비군 훈련을 다녀와야 하는데요. 그런데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10년이 지나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것, 무엇이 문제인지 미션100이 알아봤습니다.
8시간 일하고 8000원? 애국이라는 이름의 열정페이
서울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겨우 첫해가 된 A씨. A씨는 올해 코로나 방역 규제 완화와 동시에 예비군 훈련 소집 통지서를 받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훈련장까지 왕복 3시간에 훈련 8시간을 포함하면 오늘 하루 가게 문 여는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훈련에 불참하면 고발되기에 A씨는 하루 매출을 포기하고 훈련장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고된 훈련을 끝내고 그에게 돌아온 것은 교통비 명목의 단돈 8000원. A씨는 “자영업자로서 생업을 포기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오는데 최소한의 훈련보상비는 지급해야 한다”고 하소연합니다.
1~6년 차 예비군들은 빠짐없이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1~4년 차에는 한 해마다 2박3일 동안 총 28시간의 훈련을 받고, 훈련비와 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총 82000원이 지급됩니다. 5~6년 차 예비군은 8시간의 당일 훈련을 받으며 식비 8000원과 교통비 8000원, 총 16000원을 지급받습니다(부대에서 지급하는 식사를 먹으면 교통비 8000원만 지급). 예비군이 받는 시급을 단순히 훈련 시간으로 계산하면 올해 최저시급의 반의반이 될까 하는 금액(2000~2600원)을 받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법으로 공가가 인정되기 때문에 임금이 보전됩니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경우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짧으면 하루, 길면 3일의 매출을 날리는 셈입니다. 더불어 교통편이 부족한 훈련장의 경우에는 택시 이용이 불가피해 사비로 택시비까지 지출해야 합니다. 직장인 B씨는 “휴전 국가이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을 받는 것 자체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멀쩡히 일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다 훈련을 받게 할 거라면 최소한 상식적인 수준의 보상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애국심을 내세운 열정페이가 예비군들을 더욱 화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13년 동안 7000원 오른 보상비? 20년전 최저시급에도 못 미쳐…
생업과 학업을 포기하고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만큼 적어도 훈련 보상비를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올려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보상비는 20년 전의 최저시급(2004년 최저시급: 2840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기 때문입니다. 국방부 의뢰로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13년 동안 오른 보상비는 겨우 7000원이라고 합니다. 같은 연도 기준 현역 병사는 월급이 90만원 가까이 올랐지만, 예비군은 겨우 7000원이 올라 “예비군과 현역을 차별하는 것이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비군 처우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열악한 상황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적은 수(약 87만명)의 예비군을 운용하지만, 국방비 중 더 많은 예산을 예비군에 할당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계급에 따라 지급되는 훈련비가 다르지만 대략 하루 16만원의 훈련비를 지급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하루 8~14만원의 훈련비를 주고, 기본급과 특별급, 세금 공제 등의 혜택도 제공합니다. 독일은 훈련 기간 동안 생업을 못 해 수입이 줄면 100%를 보상해 주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이처럼 선진국은 현역과 예비역의 구분 없이 합당한 보상 체계를 갖춰 훈련이 생업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멀고 먼 예비군 보상비 현실화, 아직도 부족한 정치권의 결심
지난 7일, 정부는 “첨단기술을 적용한 과학화된 예비군 훈련체계를 구축하고, 훈련 참여 예비군 보상비를 현실화하는 등 훈련 여건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2박3일 동안 진행되는 동원훈련의 보상비를 약 2만원, 그리고 8시간 동안 진행되는 일반 훈련의 보상비를 1천원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최저시급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예비군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국방예산에서 예비전력에 할당되는 비중은 근 10년간 0.3~0.4%에 머물러 크게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과학화된 예비군은 꿈도 꿀 수 없으며, 최저시급의 절반조차 안 되는 보상비로 예비군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회는 훈련으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다양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정부는 예산을 핑계로 해당 법안들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회에서는 예비군 훈련 보상비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재책정한 법안(김경협의원)과 예비군 훈련에 대한 보상 대상자를 ‘지역가입자’로 한정하여 시간급 최저임금액을 고려한 훈련비를 지급하자는 법안(강대식의원) 등이 발의되었지만, 해당 법안들은 몇 개월째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정치권의 결심 부족으로 예비군의 훈련 보상비 현실화는 십 년이 지나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젊은이들의 기본권, 애국페이 막아야
2022년, S대의 모 교수가 예비군 훈련에 참여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어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해당 교수는 예비군 훈련에 참여한 학생에게 “조국과 나 자신 포함 가족을 지키는 일이니 헌신하고 받아들일 것을 꼰대로서 권유 드린다”고 말하며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국가가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예비군을 대하는 처우 역시 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국가는 몇십 년 동안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최저시급의 반의반도 안 되는 금액을 주며 생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해 왔습니다. 자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청년들에게는 훈련 참여로 인한 매출 손실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애국페이는 청년 자영업자들에게 애국심보다 허탈감을 주었습니다. 청년들이 나라를 지키는 것에 허탈함을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훈련 보상비 지급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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