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1. 잘나가는 대기업을 왜 나왔나?
PART 2. 왜 하필 헤드헌터인가?
PART 3. 왜 다시 직업을 바꿨는가?
PART 4. 직장 밖의 삶,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PART 5. 퇴사하고 먹고 살만큼 벌고 있는가?
PART 6. 다시 직장에 돌아간다면?
PART 1. 잘나가는 대기업을 왜 나왔나?
월급이 문제가 아닙니다. 승진이 막혀서도 아닙니다. 해외 현장에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 '50대에 겪을 고생을 30대에, 아이가 아빠만으로 좋아해줄 때 하자.' 퇴사를 결심했던 순간을 돌아봅니다.
Q1.1 직장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삼성물산 건설부문이라는 건설회사에서 7년간 발전 해외 영업 및 해외 현장 근무로 근무하였다.
Q1.2 직장 생활이 퇴사에 영향을 미쳤나?
순수 국내파로 전원 해외파인 환경과 주당 80~100시간의 업무 강도, 사수의 갈굼 등으로 처음 2년은 죽을 것 같았지만, 이내 수월해졌다. 좋은 선배들을 만났고, 공과 사가 확실해서 '나 뭐하고 있지?'란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집에 조금 여유가 있었다면, 처음 2년내에 부서를 옮기거나 퇴사를 했을거다. 그런데 그럴순 없었다.
Q1.3 그럴 수 없었던 것은?
같은 직장이지만, 출발선은 각기 다르다.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시작하는 경우도,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엔 55세 명퇴 후 한참 가세가 기울 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Q1.4 부모님을 보면서 직장생활에 영향을 받았나?
성장 환경에 따라 각자 특화된 DNA가 있는 듯 하다. 직장인 가정은 직장이, 교사는 교사가, 사업가는 사업이 편하다. 자라온 환경에서 체득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 경우는 철저하게 직장인의 DNA 였다.
아버지는 은행에 재직하셨다. 평생 본사 경영기획팀에 계시며, IMF, 금융위기를 넘어가셨다. 언론에도 몇차례 사진이 나올 정도셨고, 본사이후에는 강남 지점장만 10년 가까이 하셨다. 기업 네임밸류도, 직장생활, 성과도 아버지는 1%셨다. 그런데 퇴사 후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셨던 것, 시도하셨던 것들이 무기력하게 마무리되는 것에 현타가 많이 왔었다.
‘저 정도 직장을 나와도 어렵다고?’
Q1.5 월급이 많은데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연봉도 자산도 커지는데, 문제는 부채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정산하는 시점이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그것이 돈이던 관계이던.
각자 가정의 상황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 헌신하시면서도 가정적이셨고, 봉사에도 헌신적이셨다. 나도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직장생활을 해보니 알겠더라. 사람은 최대 3가지 이상을 잡을 수 없었다. 아버지에겐 그 것이 직장, 가정, 신앙이었고, 나역시 동일했다.
난 이것을 핵심인재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회사에 올인하는 사람은 다른 곳에 관심을 두기 쉽지 않다. 물론 잘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일반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논리라면 전국민 모두 영어를 잘 해야한다. 우리가 영어에 들인 시간이 얼마인가.
핵심인재의 역설
회사에 올인하는 사람은 회사에 매몰되기 쉽다.
문제는 언젠가 회사를 나온다는 것이다.
Q1.6 그것이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나?
아니. 처음엔 그럴 용기도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난 오히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임원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부서도 상당히 끝발 있는 부서였고,(1만명 조직에 10명 남짓한 팀, 거쳐간 10여명의 선배 중, 현직 임원만 4명이다.) 그대로만 직장생활을 했으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절실하게 직장생활을 했었다. 당시에는 힘들거나 어렵진 않았다. 재미있었다.
Q1.7 그럼 왜 계속 다니지? 퇴사를 결심했나?
처음 영업부서에서는 전혀 퇴사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절박함이 삶에도 묻어났다. 성격이 온순하고 가정적임에도, 아내에게 희생을 강요했었다. 당시 갓 태어난 딸아이가 있었는데, 지역전문가 자격이 생겼을 때 바로 지원할 정도로.(합격했다면 1년반을 떨어져 살아야 한다.) 그런데 면접에서 탈락했고, 그날 바로 팀장님께 나랑 사수가 수주했던 해외현장에 보내달라고 했다. 그 날 처음으로 대들고 해당부서 PM에게 술한잔 사주시며 바로 다음 날 바로 전배 보내주셨다.
그런데 해외에 가보니 달랐다. 이기적이지만, 내가 회복이 안됐다. 당시에는 집에 새벽에 가도 몇시간만 자고 나면 괜찮았다. 그냥 아내, 아이의 숨소리가 힐링이 됐다. 그런데 해외 현장에서는 방에서 혼자 숙소생활을 하는데, 전혀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집, 가정이 그렇게 큰 존재인지 처음 알았다. 거기에 당시 회사의 상황, 가정의 그리움, 그리고 직무의 차이로 인해 퇴사를 결심했다.
Q1.8 대기업에 해외 현장이면 월급도 많았을텐데 고민은 없었나?
여유있던 환경에서 결혼한 것이 아니다. 해외 근무를 좀더 많이 하면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었다. 사실 내가 가진 직업은 정년 후에도 감리를 하면 된다. 그런데 평생 집을 떠나 있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조금은 치기 어린 생각으로, 지금 회사 만큼 일하면, 뭐든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연봉보다 좀더 덜받았다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가치들을 지키면서, 아내를 돌보고,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다.
'50대에 겪을 고생을 30대에, 아이가 아빠만으로 좋아해줄때 하자'
이것이 당시 생각이었다.
50대에 겪을 일을
30대에, 아이가 아빠만으로 좋아해줄 때 하자
Q1.9 해외 현장경험이 가치관에 많은 변화를 줬나?
완전히. 이전에는 성과이자 책임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중독'이었음을 알게 됐다.
흔히 일을 중독이라고 하지 않나. 무슨 일을 하든 임계점을 넘어햐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 임계점을 넘을 때 내 것을 태우는 것은 몰입, 남의 것도 태우는 것은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중독이었다. 해외에 나와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알았다.
Q1.10 가족에게 퇴사 소식을 어떻게 전했는지, 그 반응은 어땠는가?
내가 원하는만큼 아내도 원했기에 가능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으셨고, 어머니는 그래 잘 선택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장인장모님은 별말씀 없으셨지만, 좀 많이 죄송했다. 눈치도 조금 보였고.
Q1.11 주변 동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말리는 동료도 있었지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부러워하는 동료도 많았다. 남의 일에 사람들은 크게 관심이 없다.
Q1.12 퇴사를 망설이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 끝까지 고민했던 것은 바로 하나였다. 양친 장례때 너무 한산하지 않을까. 작년에 양가 모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양친, 형제들 모두 내노라하는 직장에 다니셨지만, 70이 넘은 동료의 모친, 장모상을 찾는 사람은 없더라.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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