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2. 왜 하필 헤드헌터인가?
PART 3. 왜 다시 직업을 바꿨는가?
PART 4. 직장 밖의 삶,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PART 5. 퇴사하고 먹고 살만큼 벌고 있는가?
PART 6. 다시 직장에 돌아간다면?
PART 2. 왜 하필 헤드헌터인가?
퇴사 4개월 전부터 주말마다 백지 위에 제 자신과 직면했습니다.
직장은 답이 아니었고, 사업엔 자금이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떠오른 것, 헤드헌터였습니다.
프리랜서로 최저임금 3년, 극단적인 변동성을 견딘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헤드헌터가 되실 분은 없다는 걸.
그럼에도 제 과정을 자세히 다루는 것은, 퇴사라는 공통된 물음 앞에서, 저는 헤드헌터란 답안지를 가지고 부딪쳤습니다. 무엇을 택했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것을 해답으로 만드는 과정인 듯 합니다.
각자의 정답과 길은 다르겠지만, 제 과정이 모쪼록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Q2.1 그래서 생각한 것이 헤드헌터였나?
퇴사하기 4개월전부터, 주말마다 내 스스로를 돌아봤다. 노트의 백지 위에 내 자신을 뜯어보고 세워봤다. 직장을 다닌다면 지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민을 거듭할수록 가르키는 것은 직장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사업을 떠올렸지만, 아는 바가 없었고, 거기다 자금도 없었다. 그 가운데 사업적 성향을 가지면서도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헤드헌터였다.
Q2.2 헤드헌터는 어떤 면이 매력적이었나?
나만 잘하면 상방없이 행복하게 돈을 벌 것이라 생각했다. 건설업은 술자리에서 뿐 아니라, 대내 회의때도 고객을 '놈'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계약조건들이 첨예하게 맞물려 있다. 시공을 다 하더라도, 한푼도 못 벌고 손해만 입을 수도 있다. 당시 프로젝트에서 하루를 늦게 지으면 내야 하는 벌금이 40만달러였다. 그렇기에 서로 우리의 탓이 아니라는 letter를 보내고, 독소조항은 바로 백투백이 된다. 즉 발주처하고도 하도사하고도 계속 싸워야 한다.
그런데 당시 내가 이해한 헤드헌터란 일은 나만 잘하면 회사 - 후보자 - 그리고 나 까지 모두가 win-win할 수 있는 일로 봤다. 프리랜서라 수입이 들쭉날쭉 할 것 같았는데, 사실 내가 느린 것을 감안하더라도, 열심히 하면 따라잡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거기다 유명 서치펌 컨설턴트 스펙들을 보면, 왠지 돈 잘벌고 스마트해보였다.
Q2.3 그렇게 시작한 헤드헌터는 어땠는가?
업계에서 나름 유명한 메이저 써치펌에 입사했다. 놀랐던 것은 실제 배워야 할것들은 1주일에 다 배웠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봤던 퇴직자보다, 여기서 한달동안 퇴직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서치펌은 대기업 출신 분들이 헤드헌터로써 첫시작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불안감과 변동성을 견디기 힘들다. 응당 이해되는 부분이다.
Q2.4 변동성이라면?
급여를 주는 것이지만, 급여수준(88만원)이 당시 내 현업 수당보다도 훨씬 못미쳤다.
거기에 헤드헌팅은 철저히 성과 베이스에 0 아니면 1이다. 아무리 고생을 해도 입사를 하지 않으면 수입은 0이다. 과정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훨씬 추후의 이야기이지만, 한달에 대기업 연봉을 번 적도, 6개월간 0원을 번 적도 있다.
이 변동성이 내가 다른 헤드헌터와 달리 책을 쓰고, 강연, 기고, 컨설팅으로 업을 확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베이스로 300만 벌면, 헤드헌터의 변동성을 견딜 수 있을 듯 했다. 실제 그것이 수입적인 부분 외에도 본업과는 다른 만족을 채워줬던 부분도 있다.
Q2.5 헤드헌터와 직장생활을 비교한다면?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르다.
직장은 죽을 것같다가, 월급이 꽂히면 잠시 릴렉스 된다면,
프리랜서는 가끔 하늘을 보고 걷는 날이 많다.
처음엔 헤드헌팅업을 만만하게 봤다.
6억불의 계약서, 프로세스와 1천만원의 용역계약서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
하지만 진입장벽이 없는 일은 철저히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헤드헌터. 누구나 원하면 다음날 될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거리에서 가게들을 보면, 보험설계사 분들을 보면 좀더 이해하기 쉬울것이다.
상방도 없지만, 하방도 없다.
입사하고 처음 일을 배울 때, 그리고 몇개월 하며 바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끈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본인 길이 아니라면 빨리 그만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찍먹을 넘어 지속을 결심했다면, 지속해야 한다.
지금 내가 가진 시도와 지속의 기준이기도 하다.
진입장벽이 없는 일은,철저히 적자 생존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Q2.6 당시 생활비는 어떻게 했나?
희망퇴직금(1억 초반) 중 기존 대출을 갚고 남은 것이 3천이 조금 안됐다.
6개월 생활비로 생각했다. 이후로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았다.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러 갔을 때,
직원분이 그러시면 안되는데 감정이입이 되셨나 보다.
남자 대리 분이 한숨을 쉬셨다.
'아니 왜..'
'사람마다 각자의 가치관이 있잖아요'하고 웃었다.
(그 전 해외 현장에서는 750~850이 찍히던 시기이다. 해외 수당도 많고, 매일 야근에 한달에 하루 쉬었으니.)
순간 씁쓸했지만, 내가 느꼈던 고민의 시발점이 그 은행에서 어쩌면 모든 것을 이룬 아버지셨다.
그 날을 잊지 말자고 나왔다.
Q2.7 그렇게 어려우면 왜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나?
초기에는 난 대기만성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지금도 내 인생을 그렇게 본다.)
실제 내가 속한 학교, 회사, 단체 모두 가장 나중에 시작해서, 정점을 찍어본 경험이 조금은 자신감과 오만으로 자리 잡은 듯 하다.
삼성을 나올 때 다신 직장에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고.
기존 뉴스레터나 콘텐츠에서도 언급헀듯이,
그렇게 해서 최저임금을 보낸 시간이 3년이다.
1년을 넘어갈 때, 스스로 가졌던 생각은 여기서 내가 처절히 실패하지 않으면 망가진다는 생각이다.
Q2.8 처절히 실패하지 않으면 망가진다는 것은?
만약 내가 헤드헌터에 미련을 두고 현업에 간다면?
공백이 1년이기에 분명 삼성보다는 못한 곳에 갈 것이다.
운이 좋으면 대기업, 중견기업일 수도 있다.
거기서 전직장하고 비교하거나, 헤드헌팅업에 미련을 두고 일을 한다면?
좋은 성과는 커녕, 동료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처절히 실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얻던가.
아니면 이 곳은 뒤도 돌아보지 않도록 처절히 실패하거나.
Q2.9 처절히 실패하기? 또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였나?
콜드콜 100번 하기, 악성고객사에 면접 한명이라도 통과시키기.
만약 해당 수치를 채우고도 하나의 고객도 얻지 못하면, 난 확실하게 재능이 없는 것이니,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배수진을 칠 때마다 내가 정한 KPI를 아슬아슬하게 넘었다.
Q2.10 그럼 그 어려울 땐 밤새 노력한 것인가?
아니. 철저히 9 to 6를 지켰다. 주어진 시간에 몰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전의 워커홀릭으로 살다가 돌아오며, 다짐했던 것이 가정의 여러 전통과 함께 홈스쿨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전의 워커홀릭 기질을 철저히 눌렀고, 내 것으로 몰입하되, 가족이 누려야할 정서와 시간을 뺏지 않도록 지켰다. 물론 가족이 잠들면 전투적으로 공부를 했다.
Q2.11 그러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당시 아이와 평일에 4시간 이상, 주말은 12시간 이상을 붙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읽었던 책이 1년에 130권 정도고, 책도 집필했다.
잠을 좀 줄이긴 했지만, 핸드폰, OTT 안보면 생각보다 시간은 많다.
당시 예전처럼 삶을 갈아넣었다면, 이 시기를 좀더 앞당기지 않았을 꺼란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나에겐 이속도가 맞았던 것 같다. 웃자라지 않고, 단단히 자라기 위한.
지금의 지식을 바탕으로 돌아간다면, 좀더 지혜롭게 일했겠지만,
기본원칙은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겐 이속도가 맞았던 것 같다.
웃자라지 않고, 단단히 자라기 위한.
Q2.12 책을 그렇게 읽었던 이유는?
해외에 근무할때에 비해 연봉에서 0이 하나 빠졌다.
예전에 아무렇지 않게 사먹던 것들이 외식이 되었고, 그 수준도 점점 떨어졌다.
그런데 책값은 아끼지 않았다. 만약 자기계발마저 멈춰버리면 아무런 희망과 발전 없이 정말 그대로 주저 앉을 것 같았다.
Q2.13 그 정도면 돌아가는게 맞지 않나?
맞다. 그런데 나와 아내, 가족의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 아닌 '같이'에 있었다.
불안했지만 전혀 불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2년이 넘어가니, 내 눈에도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뭔가 만들어지는 것들이 보였다. 서류통과율이 확연히 올라간다거나, 내가 한번도 영업하지 않은 곳에서 먼저 연락이 오거나, 지인들이 비로소 본인 회사의 포지션을 의뢰한다거나.
Q2.14 그 3년의 시간 후에는 어땠는가?
임계점을 넘었다.
Q2.15 임계점을 넘었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top 헤드헌터의 수준을 상회했다.
직장인으로 치면, 내 현업 때 임원 연봉 이상을 세후로 벌었다.
그리고 그간의 고민과 노하우가 책 (이직의 정석)이 되어 나왔다.
Q2.16 그렇다면 그 수익은 지속되었나?
처음 3년은 최저 임금, 이후로는 기복은 있었지만, 내 사회 동기들 만큼은 벌었다. '23년까지는.
사실 위기는 22년 후반부 부터였다. 흐름이 이상했다.
실제 23년에는 극한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23'01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교육부 주관 엑스포에 서울대 교수님, 성대 입학처장님과 함께 패널로서 강연을 했다. 그해 7월에는 쿠팡에서 2주간 새벽 알바를 했다. 6달 사이, 시급이 80배차이가 났다.
Q2.17 그때는 힘들지 않았나?
아니 정말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여기서 내가 뭘 더 해야지?'였다.
조금 재수 없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당시 잘했을 때
- 헤드헌터로써 실적(매출 1.5억, 순익 1억이상)이 보수적으로 3% 이내에 들었다.
- 책도 좋은 출판사를 만난 덕에, 4천권이상 팔렸다.
- 클래스 101등이 활성화 되기 전에 이미 온라인 강의(퇴사학교)로 300만원 이상의 수익을 거뒀고,
- 일반 강사가 설 수 없는 권위있는 자리 (ex, 국토교통부 채용엑스포 기조강연, 교육부 엑스포 등)에서 알바생 월급 이상을 시급으로 받고 여러차례 강연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헤드헌터 하나만으로, 강사 하나만으로, 코칭 하나만으로도 안정적으로 사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당시 난 왜 다 5%이내에 드는데, 삶에 어려움이 다가오는지, 그럼 여기서 뭘더 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많았다.
무엇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고, 어쩌면 이루기 어려운 성과들도 달성했지만, 다시 이런 어려움을 마주한 것이 너무 힘들었다.
어려움이 힘들었던 건,무엇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기 때문이다.
Q2.18 그래서 했던 일이?
불안감에 막일을 했다. 새벽 쿠팡물류센터.
Q2.19 막일을 할 때는 어땠나?
수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불안감이 그 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거기다가 셋째도 임신을 한 상황이라. (당시 헤드헌터로 6개월간 수입이 없었다. '23년 역시 직장인 이상을 벌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거지, 그 안에서는 지옥이었다.) 난생처음 해본 우유배달 도중 (하필 비가왔다.) 미국 지인에게 임신 축하 카톡을 받았다.
신앙과 가정이 없다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전의 삶과 지금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감사했다. 좋은 부모님 덕에 알바 한번 안해본 삶이, 그리고 새벽에 일하러 오신 분들, 그리고 외국인 학생들 눈빛과 에너지가 참 좋았다. 내가 만난 좋은 태도와 연봉을 받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어, 인상, 아우라는 다르지만, 눈빛과 적극성, 진취적 태도는 같았다.)
사실 이전에도 수백명앞에서 강의를 했고, 100명 이상을 유료 컨설팅을 진행해봤다. 이전에 내가 돈을 너무 쉽게 벌었다는 생각을 했고, 난 이 정도만(당시 일용직 일당) 받아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컨설팅을 다시 시작할 때 오히려 가격을 이전보다 낮춘 이유였다.
Q2.20 그것이 삶에 변화를 줬나?
2주의 짧은 시간이지만, 뭔가 정신적으로 좀 건강해진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희망적인 메세지를 많이 줬던 것 같다.
주역에는 궁즉통이란 말이 있다. 책을 내고 강연을 하며, 또한 헤드헌팅으로도 확장에 대한 계획이 많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급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으니깐.
그런데 막일을 하는 기간을 포함해서 3개월동안, 3년동안 계획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일을 전부 했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상세페이지, 웹사이트를 만들고, 상품을 다각화 하고 등등.
Q2.21 그렇게 만든 회사는?
머스타드 씨드 컴퍼니. 마태복음 13:31절에서 가져왔다.
어떻게 인생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결론은 씨앗도, 누룩도 먼저 썩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심기우고, 썩어지면 성장하고,
새들이 깃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했다.
그것이 내가 사업에서 가진 마음가짐이자 돈을 버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 서류부터 연봉협상까지, 커리어 러닝 메이트
서류는 물론 면접, 연봉협상까지 모든 과정은 1:1, 이직할 때까지 진행합니다.
3년차 주니어부터, 대기업 팀장까지.
슈퍼얼리버드(10% 할인)이 내일 마감됩니다.
전기수 한 번도 예외없이 조기초과마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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