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가진 이에게, 혹은 아직 가지지 못한 이에게
빈지노의 젊음을 사랑한다. 고맙게도 그는 한 철 젊음 내내 가사를 써주고 있다. 어린 나이의 방황, 설익은 연애부터 부모를 향한 애정이 무르익는 과정, 가끔은 삐딱선을 타는 가사마저 내겐 귀감이 되는 사람이랄까. 결국엔 정답으로 향할 거란 확신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특유의 고백하는 듯한 때론 철부지 소년같지만 소년의 세계를 향한 넓은 품과 순수한 통찰에 흠뻑 빠지게 된다. 발라드에선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에 힙합 장르도 즐겨 듣곤 하는데, 빈지노는 그 자유로움의 꼭대기에서 우람차게 날개를 휘젓는 듯하다. 가사는 두말 할 것도 없을 뿐더러, 뛰어난 음악 실력에 “국힙원탑”이라는 별명까지 가진 이상 노래 좀 들었다 하면 아마 모르는 이가 없겠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형상과 특유의 발성, 플로우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교차할 때면 이 사람은 2차원의 도화지가 아닌 3차원의 무한공백에 음악을 섞는구나, 짜릿한 전율이 솟는다. 이같은 감상 때문인지, 몇 년째 이 노래는 단 한 구절도 내게 낡지가 않는다. 아직도 멜로디 한 음이 툭 튀어나와 팔을 긁고, 굴러다니던 한 음절이 뒷통수를 퍽 때린다. 그의 어제인지 내일인지 ,나의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를 어떤 시퍼렇고 팔딱이는 젊은 하루가 이 안에는 있다.
이 노래를 듣고있자면 , 단전 깊은 곳에서 뭔가 끓어오른다는 표현밖에 달리 떠오르는 표현이 없다. 다크서클 짙은 내 눈밑과 피로에 찌들어 탁한 눈빛도 청춘의 자부심이 된다.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느끼기에 이만한 노래가 있을까? 치유의 카타르시스로 젊음을 만끽하는 자의 열정을 보라. 꿈이라는 선물이 깃든 청년의 발돋움을 보라. 함께 뛰자는 말에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
웅크린 이에게도 꿈은 있다.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는 자에게도 아직 날갯짓을 해 보지 못해 투명하고 말랑한 날개가 있다. 낮 동안 내내 다른 이의 날갯짓만 불안한 시선으로 좇아야 했을 고단한 일과를 안다. 그리하야 찾아왔을 밤의 불안함도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다. 있었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무력감의 시기가. 재촉하고 싶지 않다. 해야만 한다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다른 이의 날갯짓을 보는 시간보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음을 알고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아주 오래 바라보았으면 한다. 오래 궁금해했으면 한다. 그런 하루들이 쌓이면 기필코 비행이 될 것이고 기어코 꿈이 될 것이니.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이 세더라도 언제고 가슴 속에 푸른 하늘이 펼쳐질테니. 나의 미숙한 비행이 언젠가 당신으로 하여금 능숙해지기를.
글 쓰는 이들에게 사랑은 여름날의 장맛비 같은 건가 보다. 누구나 알지. 사랑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나 너무 많이 알게 돼서, 한 번 짓물려버리면 어쩔 줄 모르는 마음도 신경을 써주나? 그런 마음은 어디 가서 치료를 받나? 물성과 해체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강나리의 에세이는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쫓아갔던 음악에 우리도 몸을 풀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랑에 대해 배워 보자. 또 아는가. 지루했던 여름인 줄로만 알았던 오늘에 새로운 길이 보일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