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 지친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살아내던 날들에 가만히 그 목소리를 얹는다. 나, 지쳤었구나. 절대적인 따스함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 아이가 된다는 것을 목소리로 알려준 이 가수의 노래 중에는, 당신이 꼭 혼자 있을 때만 들어야 하는 노래가 있다.
어릴 적부터 한숨은 습관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친구와 떠들다가도 명치께에 걸터앉은 숨 때문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때면, 옆사람에게 꼭 한 마디씩 듣곤 했다. 밥먹다 무심결에 한숨을 쉬면 어머니는 꼭, 밥 먹을 때 한숨 쉬면 못써, 하셨다. 식사예절이야 그렇다 치고, 고등학교 때는 친구에게 직격타를 맞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한숨을 쉬니, 친구는 눈을 치켜뜨며 "난 한숨 쉬는 사람 정말 싫더라. 이해 안 돼." 하더라. 어쩌면 그는 친구의 한숨을 듣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조차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드러나는 적대에 충격과 더불어 조금은 야속했지만, 그 때부턴 듣는 이의 한숨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꾹 버티는 일을 숨겨야 하는 것이란 참 묘하구나. 모두가 알고 있기에 오히려 숨겨야 하는 습관이 되는 거구나. 우리 매일 버티는 습관이란 게.
누구도 나누어줄 수 없는 삶의 무게. 완력이 달려 힘에 부쳐 뭉친 가슴께에서 나오는 한 뭉치 숨. 나누어 줄 순 없지만, 함께 느껴줄 순 있어. 느끼고 있어. 온 맘 다한 노래 가사에 담겼다. 느린 호흡에 귀를 기울이면 한숨을 내쉴 때의 이완이 통증을 다독이고, 믿을 수 없도록 여린 어떤 이의 남모를 한숨을 들을 수 있다. 위로가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거라면, 겨울의 함박눈처럼 내려 온 사람의 머리를 희게 적시는 거라면 당신에게도 그래야 하는데. 염치불구하게도 고맙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퍽 후련한 한숨을 쉬곤 해요. 근데, 내 한숨 편하자고 이 노래 듣는 방법은 아직도 아직도 모르겠어요. 한 달 한 해지나며 들을수록 나는 당신을 향한 상사와 연민만 깊어져서. 그래서,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위로의 정수가 담겼지만, 난 이 노래를 그리 자주 듣진 못해요. 이 글을 쓰려 처음으로 여러 번 들었습니다. 용케도 몇 번은 울지 않았어요. 눈치 챘겠지만, 이건 꽤나 오래 전부터 써 온 편지입니다. 그동안 내가 어느 새 당신 또래가 되었어요. 이대로 가다간 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이제 막 풀리기 시작한 내 회포는 내 방 종이에 적겠습니다. 아, 내 방 종이로는 회포가 다 담기지 못할것 같아, 그냥 언제나처럼 가장 맑은 샘에다 아주 오래 띄우겠습니다. 나의 겨울,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글 쓰는 이들에게 사랑은 여름날의 장맛비 같은 건가 보다. 누구나 알지. 사랑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나 너무 많이 알게 돼서, 한 번 짓물려버리면 어쩔 줄 모르는 마음도 신경을 써주나? 그런 마음은 어디 가서 치료를 받나? 물성과 해체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강나리의 에세이는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쫓아갔던 음악에 우리도 몸을 풀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랑에 대해 배워 보자. 또 아는가. 지루했던 여름인 줄로만 알았던 오늘에 새로운 길이 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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