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광연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ep.11

환절기의 마음

2023.08.22 | 조회 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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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친애하는 당신에게

 

이상한 일이죠. 당신께 받은 편지를 읽으면 잠겨있던 마음의 걸쇠가 풀립니다. 굳게 닫힌 속이 활짝 열리고 어느새 고인 눈물에 얼굴이 말갛게 비치는 느낌이에요. 스스로 볼 수 없는 제 자신의 표정이 어떠한지, 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투영하는 매개체 없이 쉽게 알 수 없는 것들을 당신의 글로 깨닫습니다.

예견하신 것처럼 가을이 오겠죠. 여름이 저물어가면, 무성했던 것들이 갈변하고 여물어가는, 마음이 풍성한 계절이 올 겁니다. 담담한 낭독 위에 이미 멀어져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은 유독 슬프고 아프고 또 아니러니하게 기쁘고 행복했어요. 하나를 보내면 또 하나가 오는 태풍처럼 계속해서 다음의 것들을 기다려야 했어요. 기다림은 때때로 장독에 묻은 장아찌처럼 묵혀둔 순간들을 익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고이 간직했던 애처롭고 애틋했던 광경들. 눈과 코와 입이 달린 것 같은 기억들이 꿈틀대며 더운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애통한 사연, 생각만 하면 늘 숙연한 사랑하는 어머니의 부상, 강아지 마냥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내 아이들의 땀내음, 굳은살 박힌 자리를 접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그녀의 도전 같은. 슬프고 아리는, 동시에 벅차고 감사했던 기억이 살아 숨쉬며 여름이라는 이름을 대신했습니다.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마침내 열매 맺은 가을이 오면, 우리가 바라보는 푸른 하늘은 높아지고 달리는 말의 엉덩이 같은 굴곡진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요?

홀연히 닿은 편지의 무용한 이야기를 읽어주는 당신. 당신이라는 친절한 독자로 인해 저는 빛을 잃지 않고 질문합니다. 가는 여름을 뒤로 한 채 다시 오는 가을을 향해 외칩니다. 끝이 정해진 시간의 분절에 끝을 없애는 노력을, 저라는 세계에 갖혀있던 모든 감각을 열어 느꼈던 모순된 아름다움을 당신께 전하고 싶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바람이 가득 담긴 이 편지를 빌어서.

삶이란 그런 거겠죠. 온 것이 있기에 가는 것이 있는 거겠죠. 소중히 드리고 싶어서 고이 간직한 것들을 나열하다보니 당신으로부터 온 것들을 헤아리게 됩니다.

짓는 사람의 결연한 마음, 우리가 처음 만났던 초여름의 낯선 건물 안에서 추억. 불내음을 간직한 짬뽕의 감칠맛, 현실 이야기 가득한 카페에서 동떨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던 짙은 사색의 시간들, 시절에서 태어나 순간으로 덧입힌 문장들로 쌓여진 계절은 설명하지않아도 시간의 주체를 말합니다.

잊지마세요. 당신에게는 그런 힘이 있어요. 가만히 놔두면 쉽게 흩어지는 것들을 머금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빚어낼 수 있는 마음이, 실낱 같은 햇빛의 소망과 성긴 바람의 인고를 조율해 작품 같은 삶으로 일궈 낼 수 있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 힘이란 이 세계의 모든 당신들로 하여금 유효합니다. 와닿지 않겠지만 당신은 정말 그런 사람입니다. 아이러니하게 맞닥뜨린 우리의 운명으로 저는 일평생 가보지 못한 세계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조약돌 같은 저의 모습을 , 모나고 아팠던 것들을 매끄럽고 매끄럽게. 오늘이라는 물방울의 겹침속에서 깎여가는 마음을 마주합니다. 계절의 순환이 거듭될수록 선명해지는 우리의 부대낌이 어떤 작품을 만들어갈지 궁금해요. 당신도 그런가요. 비틀거리다 서로에게 기대어 이룬 우리의 현상이 비로소 사람을 의미할 때까지 우리가 계속 서로에게 충실한 화자와 청자로 남기를 바랍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돌아오는 우리의 계절의 마지막까지.

 

2023.08.21

순환하는 계절의 이름을 되새기며

이광연 드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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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는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장르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에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때로는 희망차고 때로는 비참할 이야기. 그러나 아마추어처럼 달려들고 프로처럼 진지할 이야기. 변화가 두렵지만 변화해야 할 때도, 견디는 게 지겹지만 견뎌야 할 때도, 우리는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영원히 쓸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달라질 것입니다. 견딜 때보다 벗어날 때 더욱 성장하는 가재처럼, 벗어남이 무한하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원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술처럼 영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물성과 해체』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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