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VC와 협상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벤처 투자 협상의 정석과 꼼수 (매운맛 포함)

2022.12.13 | 조회 1.3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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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 스타트업 전용 공략집

이 뉴스레터는 상위 1% 스타트업을 위한 공략집을 지향합니다. 창업 경험이 전혀 없으시거나 기본적인 내용을 찾는 창업자보다 어느정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계신 대표님께 적합한 내용을 담습니다. 실용적인 내용을 전달하는데 집중하며, 뻔하거나 두루뭉술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VC투자 유치를 시도해보셨다면 스타트업이 투자자에 비해 극심한 '을'의 입장에 있다고 느낄 때가 있으셨을 겁니다.

과연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이 VC와 협상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까요? 네,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VC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스타트업이 적용할 수 있는 테크닉들을 다루겠습니다. 오늘도 매운맛 (법적, 도덕적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방법들) 콘텐츠들이 포함될 예정이지만, 늘 그렇듯 정보 전달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것일 뿐 실천은 지양해주세요.

시작하기에 앞서 벤처 투자의 계약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이번 아티클을 읽기 전에 꼭 텀시트 뽀개기 아티클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기본 개념

본격적으로 협상 테크닉을 알려드리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개념들을 설명드리겠습니다.

 

(1) VC 협상의 타임라인

한국에서는 VC투자와 관련된 협상을 언제 진행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밸류에이션 협상은 회사에서 투자 안건을 통과시키기 전에 미리 대략적으로 진행하고, 계약서를 받은 뒤에 밸류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을 협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미리 텀 시트를 주기도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텀 시트에서 많은 조항들을 생략합니다. 결국 밸류를 제외한 다른 조항들은 계약서를 받은 뒤에 협상하시게 됩니다.

 

(2) 딜 담당자의 역할

VC투자 협상에서 딜 담당자는 보통 회사와 창업자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딜 담당자는 일부러 본인의 시간과 공수를 들여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정도로 대표님의 회사가 마음에 들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딜 담당자는 보통 협상의 과정에서 대표의 의견을 회사에 전달하고, 회사의 반응과 제안을 다시 대표에게 전달하며 조율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됩니다.

 

(3) 리드 투자사와 클럽 딜

클럽 딜이란 여러 곳의 투자사가 하나의 투자 라운드에 동시에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이 때 모든 투자사들은 같은 기업가치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한국은 VC 시장이 크지 않아서인지 몇십 억 이상의 라운드는 대부분 클럽 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리드 또는 리드 투자사란 클럽 딜에서 확실히 가장 많은 (과반 이상의) 금액을 투자하는 VC를 뜻합니다. 보통 리드 투자자가 스타트업과의 협상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VC들은 리드 투자자와 동일한 조건으로 투자를 진행하게 됩니다. 리드 투자사는 주로 이사회 자리를 배정 받고, 스타트업과 밀접하게 협업하게 됩니다.

리드 투자자 없이 여러 곳에서 조금씩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 같은 방식도 존재합니다. 진짜 크라우드 펀딩은 아니지만 리드 없이 여러 VC가 하나의 스타트업에 조금씩 투자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별로 추천되지는 않는 방법이지만, 지금처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리스크에 민감한 분위기에는 꽤 자주 보입니다.

 

 

2. 벤처 투자 협상의 7대 원칙

위의 기본 개념들을 숙지한 상태로 7가지 벤처 투자 협상의 원칙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혹시 추후 VC와 협상할 일이 있으시다면 꼭 아래의 7가지 원칙을 실천해주세요.  

 

(1) 투자가 필요 없을 때 IR 시작하기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너무 늦은 시점에 투자유치를 준비합니다. 만약 런웨이 (추가적인 투자나 대출 없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이 6개월 이하라면 굉장히 타이트한 스케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런웨이가 8개월 - 1년 정도 남으셨을 때부터 슬슬 투자자를 만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투자 유치를 늦게 시작하면 (ex 런웨이가 3-4개월 남았을 때) 협상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집니다. 실제로 마음의 여유도 없을 뿐 아니라 협상을 오래 끌 수 없게 됩니다. 즉, 시간이 투자자 편이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성공적으로 협상해 좋은 조건들을 얻어내고 싶으시다면 투자유치가 필요없다고 느끼실 때 투자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 1번 원칙을 지키지 않으시면 나머지 원칙들을 적용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니 꼭 기억해주세요.

 

(2) 라운드 시작할 때 밸류를 높게 부르기

투자자가 처음 밸류에이션을 물어볼 때는, 대담한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런웨이와 마음의 여유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믿는 구석이 있어야 자연스레 높은 밸류를 뱉을 수 있기 때문에, 투자가 필요 없을 때 IR을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물론 터무니 없이 높은 값을 부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비이성적으로 높은 값이 아니라 대표님 마음 속에 있는 밸류의 범위 내에서, 높은 쪽에 위치한 수치를 살짝 올려서 부르시면 됩니다. '이 정도 밸류면 정말 행복하겠다' 싶은 수치보다 살짝 높게요.  

예를 들어 대표님이 200억-250억 사이의 밸류를 생각하신다면, 300억 쯤 부르는 것입니다.

너무 터무니 없게 높이 부르는 것만 아니라면 손해볼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VC가 마음에 들었다면 어차피 밸류 협상에 들어갈 것이고, 협상의 시작점은 대표님이 처음 제시한 금액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200-250억 사이의 밸류를 생각하셨다면, 250억을 부르면 250억 보다 낮은 밸류에 체결될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상대가 덥석 250억을 문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대표님이 스스로의 기업가치를 과소 평가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원래 생각하셨던 범위보다 살짝 높은 금액을 담대하게 부르고 반응을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VC가 기업을 마음에 들어할 때 밸류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다면, 그냥 드롭하기 보다는 무조건 협상을 시도해볼 겁니다. 그러니, 쫄지 말고 불러보세요.

미친 수준의 밸류를 부른게 아닌데 시작부터 밸류를 핑계로 드롭한다면, 사실 밸류는 구실일 뿐이고 애초에 기업이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니 아쉬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3) 협상 시기를 최대한 미루기

만약 위처럼 밸류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을 때 VC가 '조금 비싼데요?' 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일단 딜을 진행하시면서 이야기해보시죠' 라고 말씀해주시면서 밸류에 대한 명확한 논의를 최대한 뒤로 미뤄주세요.

밸류를 물어보지 않고 진행하려고 한다면, 일단 진행해주세요. 가장 좋은 것은 처음 밸류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넘어가는 것이지만, 그럴 확률은 아마 희박하고 대부분 초기에 밸류를 어느정도 협의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위에서 설명한 대로 살짝 높은 가치를 부르고 상대방이 곤혹스러워 할 때 협상의 여지를 열어둔 상태로 진행할 의사가 있는지 여쭤보세요. 대표님의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충분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협상 시기를 최대한 미루는 이유는 VC의 매몰 비용을 증가시키기 위함입니다.

딜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담당자 뿐 아니라 VC 내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타트업 투자자를 만난 뒤 실제 클로징까지'에서 다뤘듯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IR 과 투심 (본투 및 예투) 등 투자사 내 고위직의 시간도 투입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VC 내에서 딜이 진행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것입니다. 즉, 매몰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죠.

이미 투자사의 자원이 투입된 상태에서 사소한 밸류에이션이나 계약 조항으로 인해 딜이 엎어지거나 시간이 계속 끌린다면 VC에게도 손해이기 때문에 무리가 아니라면 스타트업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VC가 먼저 시간을 투자하게 만들고 막바지에 협상을 질질 끌거나 엎을 수도 있다는 강경한 태도로 나가려면 투자가 필요 없을 때부터 IR을 시작해야 합니다. 당장 현금이 부족하고 투자가 급하면 이런 전략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주세요.  

 

(4) 딜 담당자와 가까워지기

기본 개념에 대해 설명할 때 말씀드린 것처럼 딜 담당자는 회사와 대표님의 입장을 모두 대변하는 메신저/중재자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히 공정한 중재자는 없습니다. 협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중재자를 대표님의 '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보는 VC사용 설명서' 아티클에서 권장드린대로 VC하우스 내 고참과 연결되어 진행중이시라면 딜은 더 잘 진행되겠지만, 안타깝게도 딜 담당자가 이미 회사의 '편'에 서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파트너든 심사역이든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식은 인간적인 호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경력이 긴 사람일수록 여태 회사의 입장을 더 잘 대변했기에 이 업계에서 살아남고 승진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경력이 긴 담당자에게 쌔게 나가려면 진짜로 투자가 필요 없는 상황이어야 블러핑을 들키지 않습니다. VC 경력이 길수록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사정을 뻔히 꿰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여는 마법의 열쇠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일반적인 방법대로 교감을 잘하고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가까워집니다. 함께 술을 먹거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은 됩니다.

또, 담당자에게 대표님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시는 것도 도움 됩니다. 대표님에 대한 믿음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잘 도와주면 잊지 않겠다고 말씀해주세요.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표님의 담당자와 가까워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매운 맛의 영역으로 가자면 불법의 영역에 걸쳐있는 접대나 금전적 보상에 대한 약속 등을 통해 VC가 회사보다 스타트업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도록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저희는 절대 그런 방법을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대화는 골프나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듯 담당자가 대표님을 위해 열심히 내부를 설득하도록 만드시는 것이 골자입니다.

대표님을 돕는 담당자가 결정권자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부 발언권이 더 강력하기 때문에 (담당자가 회사보다 대표님의 편이라는 가정하에) 요구사항을 밀어붙이기 더 수월합니다. 


(5) 변호사에게 검토 받기

'텀 시트 뽀개기' 아티클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꼭 스타트업 투자 계약 자문 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통해 계약서를 검토 받으세요. 

단순히 독소조항을 거를 뿐 아니라, 여태 봐온 케이스에 빗대 받은 계약 조건이 평균에 비해 얼마나 후한지 또는 팍팍한지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 협상 안건에 제일 효과적인 논리를 세우는 일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VC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전달할 때 변호사를 구실로 이야기하면 좀 더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로펌 측에서 요 조항들이 일반적이지 않고 굉장히 타이트한 수준이라고 하던데.. 혹시 이렇게 수정은 불가능할까요?"와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타트업 투자 계약 자문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를 꼭 활용하세요.

 

(6) 다른 VC (리드) 활용하기

클럽 딜의 형태로 이번 라운드에 여러 VC들이 참여한다면, VC간의 조율을 통해 대표님에게 더 우호적인 텀을 받아내실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관대한 조건과 밸류를 책정한 VC의 텀을 기준으로 다른 VC들과 협상하시면 됩니다. 가능하면 가장 관대한 VC가 리드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가장 관대한 텀을 기반으로 리드 투자사를 설득할 수 있으면 됩니다.

애초에 VC들이 제시하는 조건이 하우스마다 다르려면, VC들이 미리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건을 맞출 수 없어야 합니다. 또 얼추 비슷한 시점에 투자자들의 합류가 정해져야합니다. 하나의 투자사가 독보적으로 빠르게 라운드에 참여하게 되면 그 투자사와의 조건이 사실상 라운드의 조건으로 정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해당 투자사가 관대한 조건을 제시했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곤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VC 미팅은 비슷한 시점에 몰아 잡아 진행하고, 어떤 VC와 이야기 중인지 미리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 (이상적 투자유치란 이런 것이다)입니다.

매운맛으로 가자면, VC간의 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VC 사이를 이간질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각 VC와 대화를 나누며 다른 VC에 대한 험담을 유도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어느 한쪽의 VC가 마음에 들지 않는 조건을 제시하고 완강히 버틸 경우, 험담 사실을 반대쪽에 밝히거나 험담에 참여하며 '관대한 조건'을 통과시키는 것을 VC의 자존심 문제로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마음에 들지 않은 조건을 제시한 VC를 라운드에서 제외시킬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지금 당장 투자가 급한 상황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간질은 들켰을 때, 강한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저희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7) 모든 과정에서 상대방이 말을 더 많이 하게 만들기

추후 화술과 호감을 사는 대화법에 대한 내용을 더 다룰 수도 있겠지만,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협상에서는 기본적으로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침묵은 창업자의 카리스마를 어필할 때도 유용하지만 협상에도 유용합니다.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서 먼저 말을 꺼내시지 마시고, 가능하면 상대방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어떻게', '무엇', '어떤' 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많이 던져주시고 상대방의 말에 공감해주세요. 이런 간단한 테크닉을 활용하면 상대방은 더 많은 대답과 말을 하게됩니다.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이 협상에서는 무조건 더 유리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중요한 정보를 흘릴지 모르니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계속 정보를 모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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