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리터짜리 기름통에 가득 채운 기름이 하루에 1cm씩 줄어든다. 기름값도 동파도 무섭다. 둘 다 금전적으로 위협적이다. 출근길에 동료에게 인사하다가 얼굴이 얼어붙어 발음이 잘되지 않을 만큼 추웠지만, 추위보다 돈 앞에서 더 쫄린다. 동파가 되면 대략 1,0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자책과 함께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해가 지면 쫄리는 마음을 안고 실내 온도를 18도로 맞춘다. 기름보일러를 4시간만 가동하고 바로 외출로 바꿀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견딜 만한 냉기 속에 지내는 데도 지난달에 기름 200리터를 모조리 썼다. 내 키보다 조금 작은 커다란 남색 기름통의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즉, 한 달 난방비로 25만 원이나 지출한 것이기도 하다. 으아. 날개집의 난방비는 손이 떨린다. 심신 안정을 유지하며 겨울을 나기 위해선 여름 동안 난방비 적금을 야금야금 들어뒀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 투니버스에서 보았던 <검정 고무신>의 보릿고개 에피소드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매서운 추위 앞에 움츠러들고 가난해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토록 엇비슷하다. 겨울의 추위는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우수(雨水)다. 절기상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때라는데, 겨우내 현관 앞에 소복이 쌓이다 못해 꽁꽁 얼어있던 눈덩이가 삭 녹았다. 귀신같은 절기의 마법에 놀라워하며 여전히 시린 양손을 패딩 주머니에 쏙 넣고 캠핑 의자에 앉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입김이 훅 사라진다. 날아온 글을 매주 연재하는 삼 개월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고, 이 입김처럼 훅 사라졌다. 주머니 속 온기처럼 따뜻한 일도,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헝클어뜨리는 매서운 바람 같은 일도 있었다. 연재를 하기 위해 붙잡아 글로 써내기도 했지만, 내 일기장이나 시간에 태워 흘려보내기도 했다. 삶의 디테일을 기록하려고 고군분투했다. 어쩌자고 매주 글을 발송하겠다는 약속을 했는지.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음속으로 과거의 날아를 원망했다. 마감 후에는 금세 마음을 바꾸어 대견해했다. 마감이 쌓여가며 날아를 미워하는 마음은 점차 얄팍해지고 좋아하는 마음은 두터워졌다. 과거의 날아가 장담했던 구려도 귀여울 것이라는 믿음은 일리가 있었다. 했으면 하던 것을 얼추 해 낸 것 같다.
두 달 후면 날개집에 몸을 붙이고 산 지 일 년을 꽉 채운다. 사계절을 나게 되는 것이다. 불가마 같던 싱그러운 여름도, 끝내줬던 가을도, 설경이 아름다웠던 겨울도 모두 지났으니, 곧 바람을 타고 달큰한 꽃냄새가 은은할 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봄이 되면 연두색 옷을 입고 산책을 해야지. 산책로에는 아카시아와 라일락이 있으니 걷다가 잠시 멈춰 눈을 감고 꽃들과 함께 햇볕을 쬐며 서 있어야지. 작년에 봤던 정수리가 빨간 딱따구리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내다가 다시 여름이 저물어갈 때쯤 또다시 날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두터워졌으면 좋겠다.
📮 안녕하세요, 날아입니다. 그동안 <날아온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오래 기다려주셨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글을 전송하게 되어 개운합니다! <날아온 글>은 다음 시즌으로 또 찾아올게요. 우리 또 만나요!(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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