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부터 발끝까지 뜨끈하다. 하체가 따뜻해지니 마음도 누그러진다. 가장 날아가 코타츠를 사줬다. 코타츠에 다리를 밀어 넣고 부드러운 이불로 배와 엉덩이까지 잘 감쌌다. 차가운 상 위에는 노트북과 2024년 회색 다이어리를 올려두었다. 요즘엔 다시 볼펜으로 손 글씨를 쓰면서 산만한 정신을 가라앉힌다. 간단한 문장을 쓰거나 다가올 일정을 확인하고, 하고싶은 것들을 살펴보고 나면 글을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려고 했던 것들을 잘해 낼 수도 못 해낼 수도 있다. 자꾸 경직되는 마음이 코타츠 안에서 여러 번 누그러진다. 추워서 몸이 경직되는 겨울은 몸을 녹이는 김에 마음도 녹일 수 있는 계절이기도 했다.
11월의 말(末), 이제 막 겨울이 찾아온 넓은 날개집은 몹시 춥고 가끔 아늑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결핍 날아는 자주 ‘검은색 모드’ 가 되어 오는 연락을 보지 않거나 느리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검은색 모드가 뭐냐면, 뭉툭하게 말해 마음이 물렁하고 습해지는 우울과 무기력 모드. 더 자세히 말해 아무랑도 연결되지 않고 고립되고 싶은 돌같이 되어서 바닥이 없는 강에 던져져 계속 가라앉고 있는 것 같은…. 사실은 아직 글이나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말없이 가라앉는 돌은 조용하고 가만하지만 외롭고 무섭고 불안하다. 잠시 잘살아 보자는 다짐을 까맣게 잊는다. 위기감이 몰려온다. 가라앉으며 잔잔히 흘러가듯 살고 있다고 뭉개본다. 정적을 평화라고 우겨본다. 애석하게도 매번 들킨다.
무안한 기분으로 테라스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 위안이 찾아오고 집에 들어가는 짧은 걸음 동안은 허하다. 사실 계속 가라앉고 있잖아. 부르륵. 기포처럼 불안이 끓어오른다. 끝이 정해진 직장생활이나 아직 상환되지 않은 빚이라던가, 조용히 악화되어가는 건강. 부르르륵. 불현듯 빨리 뛰는 심장, 빠지는 머리카락, 위협적인 허리통증, 잘 돌아가지 않는 어깨, 없는 연락, 없는 애인, 사실은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 내일도 쓸쓸할 예정이라는 사실. 부르르르륵….
‘아 존나 추워.’
빠르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겉옷을 벗어 걸어두고 엉거주춤 앉아 가장 날아가 사 준 코타츠에 몸을 넣었다. 1분도 안 되어 아주 빠르게 온기가 돈다. 다시 뜨끈해진다. 하체가 데워지면 손도 금방 따뜻해진다. 힘이 풀리고 마음은 누그러진다.
우울의 지랄은 사는 일만큼이나 예고가 없다. 또 당했어. 내가 그렇지 뭐. 근데 그럴 수 있어. 아마 또 그러겠지. 볼펜을 잡고 다이어리를 펼쳐 들었다. 오늘은 꼭 지난주 내내 가라앉느라 펑크낸 마감을 해내야 한다. 마음속에 떠다니는 기분을 적어본다. ‘가라앉음’ ‘그만 가라앉고 싶음’ ‘수영하면 되잖아’ ‘나 수영 존나 잘하는데’. 조금 더 긴 문장으로 적어본다. “이렇게 별수 없이 가라앉을 땐 수영을 해야 한다. 흘러가듯 살다가도 장애물을 만나면 몸을 비틀고 팔다리를 휘저어 물살을 만들어내 비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숨을 참고 잠수를 하거나 코에 물이 들어가도 고개를 들어 산소 한 모금 해야 한다. 새 물결을 타면 될 일이다.” 그 밑엔 이렇게 적었다.
‘잘 살고 싶은 마음.’
‘이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주문. 거는 주문.’
…. 믿어보기로 한다.
📮 안녕하세요, 날아입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지난주부터 패딩을 입기 시작했어요. 파주는 이번 주에 첫눈이 온다네요. 혹시 저와 비슷하게 ‘검은색 모드’ 를 통과하고 있는…. 별안간 우울이 지랄하고 있는 독자분이 계신다면 함께 잘 견뎌보자고 손 내밀고 싶어요. 충만 날아가 볼펜으로 적어낸 문장들을 믿어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다음 주에 새로운 글로 찾아올게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보보
우울의 지랄을 막기 위해 운동을 합시다.ᐟ 잠수 너무 오래 하지 말아요 물개씨 ~
의견을 남겨주세요
혜월
산소 한 모금! 새 물결을 타기! 같이 해봐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