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수루 원림 거닐다
온형근
환한 달 바다와 하늘이 하나의 색으로 닿을 때
수루 앞바다로 성을 수시로 쌓고 허물었다.
학이 날개를 펼쳤다 접는 모습은 꿈인지 생시인지
학익진은 한산의 뛰어난 풍광에 숨는다.
수루 앞두고 작은 섬 해갑도에 올라 갑옷을 벗고
큰 숨을 내쉰 것은 아직 잘 모르는 일일 테지
오목한 바다를 좌우로 내다보는 그리움은 멀다.
마루 바닥으로 낮게 떠오르는 달빛이 그렁하다.
맑은 날에는 눈부시도록 출렁이는 푸른 물결에
흐리고 편치 않은 수루에 앉아 알 수 없는 것들
물길의 깊이를 헤아리느라 모골이 오싹하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느라 퉁소를 청하고 시를 쓴다.
질투와 공명에 휩싸였던 강박은 한산 바다에 묻고
삼도수군통제사의 전투 명령의 첫마디를 세운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라
고요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라"
싸움은 망동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정중함이다.
삼군을 통틀어 지휘하라는 통제영의 공무는
어느 순간 내 스스로를 다스리는 제약이 되어
슬픔을 돌아볼 틈 없이 들어서는 고독으로
편안했거나 위태로웠던 순간마저도 억누른다.
기슴이 미어지는 슬픔마저도 오늘은 맑다며
제승당에서 한산 바다로 향한 수루에 정좌한다.
의항선착장으로 수상보트 미끄러지는 시선을 따르니
한산정 건너 활시위 날아가는 과녁이 간결하다.
환한 달 바다와 하늘이 하나의 색으로 닿을 때
시작 메모
마음 속으로 친밀하다 늘 여겼던 곳을 처음 들렸다. 통제영을 줄여서 통영이라는 부른는 사실 또한 언어가 주는 마땅함 보다는 낭만이 먼저 자리했었나 보다. 수루를 들러보면서 통제영 전체가 커다란 원림으로 읽힌다. 이름하여 진영 원림이라 부른다. 내적인 갈등과 고통까지 수루 앞바다에 가지고 와 시를 쓰고 일기를 쓰던 암담한 한 시절의 기록을 어찌할까. 얼마다 더 정중하게 자신을 다독여야 할지를 되뇌인다. 그것은 삶의 간결함이 걷어 올린 대장경이다. 정중하다는 태도와 간결하다는 실천이 쉽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한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는 '방달초예반발(放達超睿反撥)'의 정신을 지향합니다."
매임 없는 활달한 시선으로 전통의 경관을 응시하며, 보편적 슬기를 뛰어넘는 통찰로 그 속에 담긴 옛사람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나아가 고착된 현실의 언어를 거슬러, 오늘날의 현대적 언어로 우리 정원의 미학을 다시 다스리고 되살리는 평론 작업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