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정, 물만대루 비치 산빛
온형근
거닐만하지 않다면 원림이 아니다.
누정 하나만으로 걸터앉아 처마 끝 귀골(貴骨)을 재다가
겹처마일지 용마루에 기름기가 번지름한지를
서까래는 머금었던 습을 날려 마른 체형 통통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 마루에 우물 정자 문양이 육감적인지
두 팔로 누워 추녀선을 그리다 난간 곁으로 돌아누울지
정자 주변에서 내 안의 확 트인 마음을 끄집어낸다.
옛사람 거닐었을 오솔길 묻혀 있어도 빛난다.
위인이고 친구였을 형과 아우의 길로 두런대는 숨소리
사람의 길에서 길마다 숨기척 수시로 들락댄다.
소멸이고 화석인 매화나무도 그 길을 걷고 나도 스친다.
한참을 거닐더니 기어코 분별의 깊이를 놓친다.
생각이 멈추었다가 한가한 듯 되돌아 거닌다.
임대정의 두 연못은 도돌이표 연주로 배를 저어 간다.
천천히 밟고 감내하던 걸음은 이윽고 행보가 더딘데
걷다 윗 못인지 아랫 못인지 분간이 둔해지기 십상
경계가 허물어지니 무한이고 무한의 기호는 무진장이다.
임대정 앞마당 네모 연못은 반무방당(半畝方塘)*이라
이 또한 자연을 통해 이치를 깨닫는 수양의 공간일 텐데
방지원도 중도에 돌 하나 세워놓고 세심이라 하였으니
새긴 글자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없음을 천명(闡明)하랴
근원을 찾는 여정은 계절풍에 흔들리며 탄식을 자아내고
마음 어깃장 놓는 날이 많아지니 얼른 들부셔내야지
숨길 수 없이 술렁이는 게 어디 물의 기억뿐이랴
*반무방당 半畝方塘 : 주희의 시 「관서유감」에 나오는 구절로 맑고 잔잔한 마음의 상태를 비유한다. 반무방당은 주희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格物)하고 깨닫는 것(致知), 즉 ‘실생활 속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수양하는 장소’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