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무기연당 원림 - 전통조경의 내면과 외양의 반전 현상
내면 조사(照射)의 명랑함이 깃든 무기연당
내면을 비춘다. ‘내면 조사(照射)’의 시간이다. 다습은 햇빛의 부드러운 기운이 마음을 덥힌다. 따듯하여 훈훈해진 온도로 내 안을 들여다본다. 곧잘 다정한 햇빛을 불러 마음 다독거리는 ‘조사’의 명상을 즐긴다. 나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일은 잦을수록 환하다. ‘내면 조사’는 내가 보이는 외양(外樣)의 성품이다. 외양은 내면에 축적된 따사로운 기운을 바깥으로 드러나는 인간미이다. 외양에서 느끼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나 품격이 있다. ‘내면 조사’의 명랑함이 만든 기장(氣場)이다. 무기연당(舞沂蓮塘) 답사를 하는데 줄곧 조영자의 기장을 느낀다. 시공을 초월하여 이어지는 기장의 형성이 놀랍다. 찾아온 지금의 나와 이곳을 향유하던 그 시대의 선배가 원림을 통한 상우(尙友)의 만남을 즐긴다. 옛사람과 벗하는 의념(意念)이 모인다. ‘의념’은 ‘지금 여기서의 뜻과 생각이 생동하는 현상’이다. 한달음에 먼 길을 달려온 의념이 팽창의 기장을 직조한다. 함안 무기연당은 온통 환한 볕으로 또록또록하다. 따스한지, 차가운지, 부드러운지, 거친지를 가늠한다. 어둑하고 희미하여 갈피를 종잡을 수 없는 내면을 직시한다. 자주 순정으로 들여다봐야 까마득한 세월이 환하게 씻긴다. 내면과 외양은 음양의 이치처럼 순환하고 상생한다.
한국정원문화 답사에서 조영자의 일상을 ‘정성스런 알아차림’으로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놀라는 것은 ‘드러난 정원’이 전부가 아니라는 발견이다. 얼른 떠올려도 보길도 부용동 원림, 담양 소쇄원 원림, 영양 서석지 원림, 강진 백운동 원림, 구례 운조루 원림, 함안 무기연당 원림 등이 그러하다. 우리에게 내보이는 정원은 한결같이 내원(內苑)에 해당한다. 부용동 세연정 일원, 소쇄원 광풍각과 제월당 일원, 서석지 경정 일원, 백운동 취미선방 일원, 운조루 사랑 마당, 무기연당 국담 일원이 그렇다. 놀랍게도 이들 정원의 조영 의지는 보이는 장소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안뜰에 해당하는 ‘내원(內苑)’이 있고 권역을 확장한 바깥에 있는 넓은 원림인 ‘외원(外苑)’이 있다. 일반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공간은 내원이다. 외원은 복원 계획을 암중모색하고 있거나 아직 아무런 기미도 없거나이다. 그나마 내원과 외원을 복원하여 공개한 곳은 보길도 부용동 원림이다. 모든 수신(修身)이나 은일(隱逸)의 행위는 내면을 밝혀 외양을 돌리는 순응의 자연스러움에 약동한다. 그런 당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면에 체류 중인 한국정원문화는 내원이 남에게 보이는 외양이 되고 만다. 바깥으로 확장한 외원을 끊임없이 밝히고 비추어 환해지게 해야 한다. 함안 무기연당의 원림 조영 의지 역시 외원을 밝혀 복원하는 당위를 세운다.
‘하환정도’가 확보한 무기연당 원림의 내원
‘하환정도(何換亭圖)’는 주재성(周宰成, 1681~1743)이 조성한 조선 후기의 무기연당 영역과 바깥 외원의 영역을 화경(畫境)으로 남긴 원림의 고도(古圖)이다. 주재성의 후손 주환채씨가 소장하다 함안박물관에 넘겼다. 사대부 주택의 옛그림으로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와 같은 종류의 그림이다. 궁궐로는 동궐도(東闕圖)가 있고, 별서를 그린 정원 옛그림은 소쇄원도(瀟灑園圖), 옥호정도(玉壺亭圖), 다산초당도(茶山草堂圖), 백운동도(白雲洞圖) 등이 있다. 주재성은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공을 세웠다. 하환정도에는 하환정 앞 연못 이름은 국담(菊潭)이라 하였다. 국담은 주재성의 호이다. 석가산을 만들어 봉래산을 상징하였다. 하환정과 풍욕루(風浴樓)가 있다. 하환정 뒤편으로는 ‘기양서원(沂陽書院)’터의 영귀문(詠歸門)이 있다. 무기연당의 ‘무기(舞沂)’와 풍욕루의 ‘풍욕(風浴)’, 영귀문의 ‘영귀(詠歸)’는 조선의 사대부에게 금과옥조처럼 각인된 『논어』「선진」편에 나오는 “욕호기풍호무우영이귀(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에서 유래하였다. 이 용어는 한국정원문화의 전부지명소(前部地名素, front place-name morpheme)로 수없이 변주되어 헌(軒)․정(亭)․재(齋)․반(盤)·대(臺)·암(巖)․석(石)·담(潭)․소(沼)·산(山)․봉(峰)․지(池)․천(泉) 등의 후부지명소(後部地名素, back place-name morpheme) 앞에 놓이는 인문학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함안 무기연당 원림은 ‘하환정도’가 있어 원형을 알 수 있다. ‘하환(何換)’은 “어찌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삼공(三公)의 벼슬이라도 자연과 함께 ‘낮게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와 ‘시를 읊으며 돌아오는’ 영귀(詠歸)의 삶을 바꾸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방법론은 ‘하루에 한 번씩 꼭 방문하는’ 일일래(日一來)와 ‘매일 빠짐없이 가고 오는 거닐기’인 일왕래(日往來)를 실천하는 것이다. 원림을 조영하고 향유하는 뚜렷한 명분이 성립한다. 『성재집』의 ‘국담주공행장’에 의하면, 연못에 석가산을 구축하여 ‘양심대(養心臺)’라 하였고 봉래산(蓬萊山)이라 부르며 신선의 풍류를 향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원 풍욕루의 ‘경’과 외원 유회정의 ‘경암’
무기연당의 풍욕루 누정 마루에 앉는다. 물고기 노니는 한가로움을 보는 ‘관어’보다는 오래된 소나무의 누운 자태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문다. 소나무 늘어진 그늘로 낮게 놓인 평편한 바위인 ‘탁영석’에 괜히 올라서 시선을 더 낮춰 유영하는 물고기를 친견한다. ‘하환정도’에서 외원을 살핀다. 작대산 아래 ‘유회정(有懷亭)’이 별업으로 운영되었다. 유회정 별업의 경영은 주봉상(周鳳祥, 1752~1813)이다. 이상정(李尙靖, 1725~1788)의 문집 『창랑정유고』의 「유회정수석기」에 기록되었다. 선산과 별업을 경영하였고, 무기연당에 풍욕루의 전신인 ‘삼신당’을 지었다. 이는 주재성의 하환정, 행단, 국담 조성과 그의 아들 주도복(周道復, 1709~1784)의 감은재, 기양서원, 하환정 중수에 버금가는 조영 행위이다. 주도복의 조카가 이룬 것이다. 후에 주도복의 증손자인 주상문(周相文, 1798~1864)이 ‘삼신당’을 ‘풍욕루’로 개축하고 탁영석을 조성하면서 오늘의 무기연당 원림으로 전모를 갖춘다.
외원인 유회정에는 ‘경암(敬嵒)’과 ‘세심(洗心)’이라는 각자 바위가 있다. 석비 망추대(望楸臺)도 보인다. 이곳 경(敬)자 바위는 내원 풍욕루에 달려 있는 경(敬)자 편액과 소수서원 경(敬)자와 바위를 모사하였다.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을 모신 함양 무릉리 무산사(武山祠)에도 경(敬)자가 있다. 주씨 정원의 상징적 정원 언어로 경(敬)자라는 문자가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환정도’에서 보이는 유회정과 석가산이 위치한 연못의 이름은 ‘태화지(泰和池)’ 또는 ‘정우당(淨友塘)’이다. 국담의 석가산이 봉래산이라면 이곳 석가산의 이름은 ‘소금강(小金剛)’ 또는 ‘소방장(小方丈)’으로 불렸다. 내원과 외원의 공간이 봉래와 방장으로 관련하여 신선의 세계를 흠모하는 순애보를 읽을 수 있다.
풍욕루 누마루로 시원한 바람을 선보이는 경(敬)자 편액
무기연당
온형근
빗금으로 층층 어긋나게 세운 연당 축대에
하환정과 풍욕루의 얼기설기 둘러 앉은
잘 익은 홍시같은 웃음소리에 놀란 잉어
풍욕루風浴樓 누마루 걸친 바람의 항로
띄엄띄엄 빈 영혼 한 몫만큼 건너 앉아
무심한 세월의 더께더께 중첩된 석가산
봉황석 틈새로 설핏 포기했던 한숨 개켜
이슬로 맺혔다 안개로 뿜어 살찐 정념
유유히 헤엄치다 휙 돌아서는 백세청풍
아서라 두둥실 표류하며 떠다닌들
그대에게 다가서려던 여태 그대로인 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마음 삼아 동그라미였다가 네모진다.
-202309.30.
무기연당 원림을 서성이며 공간의 선호도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곳 무기연당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체류하며 즐기는 공간은 풍욕루이다. 오래된 사간(斜幹)의 소나무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시간은 평화롭다. 경(敬)자 편액 아래로 쏟아내는 바람 소리가 즐겁고 시원하다. 연못의 호안은 2단으로 하여 물고기 유영을 좀 더 잘 볼 수 있게 하였다는데, 행위를 유도하는 실천력과는 딴판이다. 널찍이 한 칸 씩 건너 앉아 하환정을 마주하며 두런대는 담화는 청량하다. 국담 가운데 석가산은 암석이 아니라 세월의 무게로 중첩된 유물이다. 흔들리는 속마음, 수시로 표류하는 일상을 무기연당에서 내려놓는다. 다녀오면 놓친 뭔가를 되찾기 위해 보완 답사를 언제 갈 것인지 다시금 기회를 엿본다. 다녀오지 못한 외원 공간을 답사하기 위해 다시 함안으로 달려갈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