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풍경을 거닐다

묵향 드리운 한벽루

詩境.022

2025.11.24 | 조회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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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敦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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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조경헤리티지

한국정원문화를 당대의 삶으로 벅차고 가슴 설레이며 살아 숨쉬게 하는 일

묵향 드리운 한벽루

온형근

 

 

 

금빛 병풍은 물속에 잠겨 차고 푸른데 누각은 홀로 묵향을 품고 주인으로 섰다.

제일강산 읊던 만고청풍 현판 위로
맞바라보던 바위샘의 맑은 물이 아쟁을 연주하고
푸른 기왓장을 넘나드는 바람굴의 찬 바람
금병산의 능선과 배 띄운 청초호를 덧그린다.

술잔에 차오르는 절반의 달그림자는
겹겹이 쌓인 글자의 향기를 드리운다.
다녀간 그대의 풍류는 뱃머리에 앉아
악공의 피리에 맞춰 지긋이 일렁일 때
한벽루의 깃발이 춤추며 너붓거린다.

강 건너 빈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상실이 빚어낸 산천이 그대를 앞장서서
거문고 소리는 강물에 나날이 차오르고
잃어버린 정경이 남아있는 풍광이 되어
이토록 깊고 시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벽루에 올라 비로소 안다.
가장 완전한 풍경은 스러진 과거가 아니라
그리움을 딛고 새로운 눈썰미를 가꾸는 깨달음,
모자람 없는 애정은 절반의 기억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시작 메모 정말 오랜만에 한벽루를 찾았다. 한벽루 앞에 서면 금병산의 단풍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아직 단풍의 계절이 아니다. 옛 풍광을 상상한다. 단풍 든 병풍산이 강물에 금빛 물결을 수놓는다는 기막힌 풍경을 보려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미음완보하면서 서성댄다. 발걸음마다 누각의 묵은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이곳에 깃든 시간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필체로 쓴 한벽루와 곡운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쓴 제일강산(第一江山) 현판과 작자 미상의 만고청풍한벽루(萬古淸風寒碧樓) 현판을 우러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혈(水穴)과 풍혈(風穴)은 금병산 좌우에 있던 명소이다. 수혈에서는 졸졸 맑은 물이 바위틈에서 솟아나왔다. 그 소리가 마치 생황이나 아쟁을 연주하는 소리라고 하였다. 풍혈은 사방 두 자 정도 크기의 굴이다.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만큼 매우 사나운 바람 기운이 나왔다고 전한다. 바람이 기와를 스치며 지나간다. 차가운 바람결에 몸이 움츠러든다. 저 멀리 금병산 능선과 청초호가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술잔을 기울이면 달그림자가 잔 속에 어린다고 했다. 금병산은 물속에 가라앉아 한벽루의 풍경은 화면의 절반만 차지한다. 뱃머리에 앉아 피리를 불던 옛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한벽루 깃발이 바람에 너울거린다. 강 건너 청초호에는 매어진 배가 없다. 텅 빈 자리가 오히려 옛 나루터의 친근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거문고 소리가 강물에 번져간다. 상실이 빚어낸 이 풍경이 가슴을 저민다. 깊고 시린 울림이 영혼 깊숙이 스며든다. 한벽루에 올라 문득 깨닫는다. 모든 것을 갖춰야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상실이 만든 풍경도 아름다움을 지닌다. 모자람이 오히려 그리움을 자아내고, 그리움이 풍경을 완성한다. 절반의 기억만으로 그리움을 품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충만에 든다.

 

"가장 완전한 풍경은 스러진 과거가 아니라 그리움을 딛고 새로운 눈썰미를 가꾸는 깨달음, 모자람 없는 애정은 절반의 기억으로 충분하다는 것을The most perfect scenery is not the faded past, but the realization of cultivating a new eye for detail by overcoming longing, and that half of the memory is enough for complete affection"

묵향 드리운 한벽루
묵향 드리운 한벽루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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