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헤리티지

흙의 물성, 몸의 스승

-체득(體得)의 리듬이나 무위(無爲)와 완숙(完熟) 사이

2026.09.10 | 조회 37 |
from.
茶敦온형근

흙의 물성, 몸의 스승

-체득(體得)의 리듬이나 무위(無爲)와 완숙(完熟) 사이

 

 

나는 다행히 농고 조경교사를 하면서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누군가는 많은 여러 분야 또는 영역에서 총량제를 말한다. 기호 식품, 습관을 포함하여 생각의 함량까지도 그렇게 빗댄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대꾸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슬그머니 그럴 수 있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흙을 다루는 일도 나무를 심고 캐고,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도 모든 게 처음이어서 생경하지만 신난 셈이다. 그 낯섦이야말로 몸으로 앎을 얻는 체득의 문턱이다. 손에 붙지 않는 서투름이 오히려 모든 동작을 발견으로 만든다. 하던 일의 연속이라면 아마, 오히려 쉽게 흥미를 잃고 다른 일을 도모하였을 게 뻔하다는 심증이다.

 

가령, 이미 숙달된 후배가 학교에서 하는 필드에서 일은 내가 보아도 힘 하나 들이지 않는다. 옷에 뭘 묻히거나 땀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땀과 옷에 흙투성이가 되고 일한 흔적이 한눈에 훤히 보인다. 일 못하는 게 일한 표시를 낸다. 일 잘하는 이는 절대 일한 흔적이 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땀을 내지 않고 일하는 게 프로의 세계다. 그것은 일종의 무위의 경지다. 몸과 흙이 신인묘합으로 스며든다. 힘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완숙의 표출이다. 결국 나는 그 경지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꺾였다.

 

산에서 혼자 사는 일을 꿈꾸기에 그런 TV 프로그램에 환호한다. 나도 보면 땡긴다. 그러나 이미 달려진 나를 만난다. 이제 허리를 사용하여 숙이거나 앉거나 틀거나 이동하는 모든 일에서 멀다. 겨우 섰다가 의자 앉아 글쓰기 하는 일이 전부다. 아직도 밭일을 하며 사지를 능숙하게 부리는 이를 보면서 놀라고 부럽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다 사용한 것임을, 총량제에 걸렸음을 중얼댄다. 일을 할 줄 모르니 몸을 아프게 부렸다. 능숙하고 잘 다루지 못하면서 전력투구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글을 쓰고 도를 깨우치는 대오의 대열에 나섰다고 여겼다. 아무튼 다 아니다. 망가졌다 몸은...

 

몸은 한때 내가 부리는 도구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전력으로 달라 붙고 진심으로 흙에 기어 다니고 나서야 몸이야말로 다루기 어려운 대상임을 안다. 몸을 통하여 배움이 이루어진다. 몸이 나의 스승이다. 흙은 힘보다는 리듬으로 만난다. 그것은 흙의 물성을 몸이 읽어내는 일이다. 손끝에 쌓이는 것은 힘이 아니라 손맛이다. 그 손맛이 오래 쌓이면 거목이 된다. 일의 완성은 많은 노동에 있지 않다. 몸과 흙과 시간이 리듬으로 만나 빚어내는 율동미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젊은 날의 성취를 위해 밀어붙인 몸의 허락은 한계를 가르친다.

그러나 그들의 화해는 주어진 시간에 성취를 위하여 몰아치는 과정에서 어긋난다. 또 다는 몰입의 시간을 위하여 몸의 사용을 다그친 사실을 인정한다. 이제는 몸을 사용할 수 없다. 몸을 사용하며 깨달은 여러 생각은 아직 남아 나를 휘돌지만, 다시 몸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원 일을 가르친다는 건 실천의 영역이다.

계획하는 생각의 발전에서부터, 실제로 구현하는 설계의 영역도 실천이다. 하지만 이를 직접 토지를 대상으로 구현하는 시공 영역이야말로 조경 미학의 백미인 셈이다. 도면 위에서 완성되는 조경은 없다. 몸으로 흙을 밀어붙이는 경영과 축조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토지를 다루는 세부 능력의 차이는 일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세련미와 함께 한다.

 

서툰 사람의 일과 익숙한 사람의 일은 이미 흙의 빛깔이 달라 보인다. 그 빛깔의 차이를 읽어내는 것이 안목이고 감식안이다. 서툰 손에는 보이지 않는 토취가 익숙한 손에는 환하다. "솜씨가 김치다"라는 말처럼... 흙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짜증 내고 투덜대는 연출도 볼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해보지 않았던 일이 손에 익어가면서 일의 중량도 보다 가벼워지고 수월하다.

이런 모든 과정에 이 일의 익숙함을 빠르게 습득하는 배경은 하나다. 이를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에서 찾는다. 주저할 틈 없이 시연하고 함께 손잡고 나아가게 한다. 흙을 묻히기 싫어하는 학동을 이끄는 일은 고도의 교육 행위에 해당한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즉시성과 교육 환경의 신뢰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부분에서 나는 특별한 교육적 성취에 도달하였음도 사실이다. 이는 준비 과정의 매우 정밀한 궁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실천이다. 나의 궁리는 참으로 빛났다. 그래서 일을 배우는 속도와 숙련도가 일취월장한다. 그 과정의 진심은 의심할 바 없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 때문에 관심도 멀다.

 

중요한 것은 정원 일의 전과정을 볼 줄 아는 심미안이다.

정원에 어떤 일의 종류가 투여되었고, 그 일의 과정은 어떠하였음을 아는 심미안이 열렸다는 스스로의 평가다. 한국정원문화를 읽는 데에도 이런 관심은 함께 따른다. 정원이 만들어지면 정원 일의 대부분은 관리다. 관리의 대부분은 풀과의 관계이다. 이를 알기에 적정한 관리, 지속가능한 관리의 정원을 높게 친다. 풀과 다투지 않고 함께 늙어가는 것이 생장미를 두텁게 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정원의 망국 시대이다. 생태미학을 잃은 정원은 이미 정원이 아니다. 완이자적(緩而自適)의 여유 없는 관리는 관리가 아니라 유지비일 뿐이다.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원이 너무 많이 출현된다. 한국 전통 정원에서 그 해법을 찾을 일이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대표, 조경학박사])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는 '방달초예반발(放達超睿反撥)'의 정신을 지향합니다." 
매임 없는 활달한 시선으로 전통의 경관을 응시하며, 보편적 슬기를 뛰어넘는 통찰로 그 속에 담긴 옛사람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나아가 고착된 현실의 언어를 거슬러, 오늘날의 현대적 언어로 우리 정원의 미학을 다시 다스리고 되살리는 평론 작업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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