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으로 본 한국정원문화

호계천 물가의 고요와 시의 향연

023. 장흥 동백정 원림

2025.12.03 | 조회 391 |
from.
茶敦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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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동백정 원림 - 호계천 물가의 고요와 시의 향연

 

<장흥 동백정 원림> 배경으로는 용두산이 이어지는 학등에 자리한 정자이다. 앞에는 호계천이 흐른다.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였고, 층계를 따라 송림이 상층림을 형성한다. 멀리서 보면 송림 우거진 형상이나, 가까이 다가가면 동백나무 숲이 중층을 차지하여 볼륨이 두툼한 원림이다. (2025.02.17.)
<장흥 동백정 원림> 배경으로는 용두산이 이어지는 학등에 자리한 정자이다. 앞에는 호계천이 흐른다. 동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였고, 층계를 따라 송림이 상층림을 형성한다. 멀리서 보면 송림 우거진 형상이나, 가까이 다가가면 동백나무 숲이 중층을 차지하여 볼륨이 두툼한 원림이다. (2025.02.17.)

빛과 시간으로 빚어낸 서정의 공간 연출

장흥 동백정 원림을 찾는 일은 하천 제방을 사이에 둔 호계마을의 낮은 입지로 인해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마을의 입지는 낮고 상대적으로 제방은 높다. 사방을 두리번대니 마을보다는 우뚝 선 소나무 숲과 동백정이 새겨진 커다란 입석 바위에 눈길이 간다. 예사롭지 않은 문화유산의 숙연함을 뿜어낸다. 제방에 오르니 비로소 동백정 원림의 전모가 펼쳐진다. 동백정 원림은 호계천(虎溪川) 건너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수변 경관을 멋지게 보여준다.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호계마을 건너편의 호계천을 사이에 두고 장동면 학등(鶴登)의 소나무 숲에 자리한다. 학등이란 학이 날개를 펴고 오르는 모습을 닮은 지형을 말한다. 배산으로 용두산의 품 안에 안겨 강력한 생기가 흐르는 명당의 조건을 갖췄다. 정면으로는 호계천이 흐르고 들판을 지나 멀리 제암산을 진산으로 삼아 원경의 배경을 이룬다.

<동백정 원림 전경> 용두산을 배산으로 호계천이 흐르는 학등의 언덕에 자리잡은 정자, 강력한 생기가 달려오다 멈춰 선 곳에 동백정 원림의 거점 중심 공간이 자리한다. (2025.02.17.)
<동백정 원림 전경> 용두산을 배산으로 호계천이 흐르는 학등의 언덕에 자리잡은 정자, 강력한 생기가 달려오다 멈춰 선 곳에 동백정 원림의 거점 중심 공간이 자리한다. (2025.02.17.)

장흥군은 동북쪽에 국사봉, 제암산 등 700미터 이하의 완만한 산악 지대를 형성하며, 남쪽으로는 다도해와 접한다. 대부분 화강암이 오랜 세월 풍화되어 형성된 토양으로 수목 생육에 최적 조건을 갖추었다. 동백정 원림을 경영한 김린(金麟, 1392~1474)1)의 후손김윤현(金潤賢, 1797~1879)은 정자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호계천을 예양강(汭陽江)이라 부르며 옷깃처럼 흐른다[衿汭陽而爲紀]”동백정기(冬栢亭記)에 시의 경지로 묘사한다.2) 탐진강은 장흥 지역의 중심부를 관통하며 주변에 충적평야를 형성하여 기름진 농토를 제공한다. 동백정 앞을 흐르는 호계천은 이중 보의 구조로 수위를 조절하여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다. 맑은 날이면 하늘과 산세가 수면에 그대로 비쳐 거울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호수가 거울처럼 해와 달을 비춘다[鏡湖日月]경호일월의 경관 연출이다. 이는 산수와 시간이 빛의 변화무쌍함을 통해 공간에 신비로운 서정의 분위기를 창출한다. 산수가 거울처럼 반사되면서 풍경의 변화와 움직임을 공간에 담아낸다.

김윤현의 동백정기에는 이곳을 용두산과 호계천이 있는 장흥 산수의 가장 빼어난 곳이라 기록한다.3) 동백정은 마을과 호계천을 굽어보는 수직선상의 위치에 있어 전망이 탁월하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사계절마다 운치가 있다. 특히 뜰 아래의 동백나무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언덕 위에서 마을과 호계천을 굽어볼 때 일상의 한가로움을 깨고 경치를 감상하는 즐거움[破閑賞景]파한상경을 느낄 수 있다. 무대는 정자로 대신하고 주변 산수를 배경이 되는 풍경으로 삼는다. 모임을 통하여 시를 읊으며 일상의 한가한 번잡함을 잠시 깨뜨리고 산수의 맑고 고운 경치를 찾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파한이 원림의 심성에 어리는 시점이다. 혼란한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나 파한으로 내공을 단단하게 다진다.

<김윤현의 동백정기 현판> 1872년(숭정기원 후 5년 임신, 고종 9년)에 작성한 「동백정기」이다. 말미에 원운(原韻)으로 덧붙인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원운시이다. 이 시는 동백정을 중건하면서 선조를 추모하고 산수 은일의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동백정 내부에 걸려 있는 총 19개의 현판 중 하나이다. (2025.02.17.)
<김윤현의 동백정기 현판> 1872년(숭정기원 후 5년 임신, 고종 9년)에 작성한 「동백정기」이다. 말미에 원운(原韻)으로 덧붙인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원운시이다. 이 시는 동백정을 중건하면서 선조를 추모하고 산수 은일의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동백정 내부에 걸려 있는 총 19개의 현판 중 하나이다. (2025.02.17.)

장흥은 조선 시대 한양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진 변방이다. 왜구의 침입 경로 또는 유배자의 거처가 되기도 한다. 그 변방의 고립성이 세속을 떠나 은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지리의 고립 속에서 오히려 정신의 자유와 풍류를 꽃피운 동백정 원림은 산, , 바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에 자리한다. 북쪽의 산세, 중앙의 하천과 평야, 남쪽의 바다로 이어지는 장흥의 지형 구조 속에서, 동백정 원림은 산과 물이 만나는 어귀[汭陽]예양에 자리하여 양자의 조화를 극대화한다. 학이 날개를 펴고 오르는 형상의 땅[鶴登]학등’, 용의 머리가 지키는 산세[龍頭]용두’, 호랑이 계곡이라 불리는 맑은 물줄기[虎溪]호계등의 상서로운 이름들이 동백정 원림의 풍수적 완결성을 증언한다.

혹독한 추위에도 꺾이지 않는 절개의 상징

좌찬성으로 조선 초기 국토 계획과 외교를 맡던 김린은 단종(端宗, 1441~1457) 양위로 이어진 계유정난을 겪으면서 모함을 받아 좌천된다. 이때 그는 다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겠다[不復宦意]는 의지를 세운다. 초연하게 용감히 물러나고[超然勇退] 덕을 길러 융성하게 이어가며[養德隆邵], 결함투성이인 인간 세상[缺陷人間]의 물거품처럼 무상한[泡沫靡常] 현실에서 벗어나 그가 꿈꾼 파라다이스가 바로 동백정 원림이다. 단종에게 일편단심으로 곧고 굳어 의심이 없었던자신의 충절 정신을, “혹독한 추위에도 꺾이지 않고 우뚝하게 솟아나는 동백나무로 빗대어 공간을 상징한다(박광전, 1583).4)

왕자의 사부를 지낸 석학인 옥봉 박광전(朴光前, 1526~1597)1583년에 작성한 동백정기를 통해, 후손에게 "이 정자에 올라 그 지조를 상상하여 알 것이다"라고 권면한다. 김린이 원림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절의의 정신은 후대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망국의 시대, 의로 맞선 면암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은 김린의 무덤터(동백정 서쪽)를 평하며, “살아서는 그 노님을 즐기고[生樂其遊], 죽어서는 그 무덤에 새긴다[死銘其丘]. 백세를 지나서도 그 울림이 흘러 퍼진다[彌百世而流響也].”라고 신도비에 기록한다. “나아가고 물러남이 밝고 분명하고[進退皎然]”, “차라리 그 몸을 굽힐지언정[寧其屈於身] 차마 시세를 따라가지는 못한다[不忍與時而往也]”는 문구로 김린의 지조를 압축한다(최익현, 1896).5) 이는 동백정 원림 공간이 단순한 풍류의 공간을 넘어 절의 정신을 높이 드러내는 공간임을 재확인한다.

<동백정 원림 입구> 호계천 보를 건너면 원림 입구에 김린의 묘비명과 커다란 표지석이 소나무와 동백나무 숲에 둘러싸인 위요된 석축과 함께 자리한다. (2025.02.17.)
<동백정 원림 입구> 호계천 보를 건너면 원림 입구에 김린의 묘비명과 커다란 표지석이 소나무와 동백나무 숲에 둘러싸인 위요된 석축과 함께 자리한다. (2025.02.17.)

을사늑약에 순절로 절개를 지킨 연재 송병선(宋秉璿, 1836~1905)하물며 바람과 비, 서리와 눈 속에서도[矧乎彼風雨霜雪之中] 절개를 굽히지 않고[不屈其節] 색을 변치 않으며[不渝其色] 우뚝 솟아 오히려 더욱 푸른 것이겠는가[而亭亭愈碧者乎].”라며 동백나무에 기대어 김린의 지조를 우러른다. 그러면서 세상이 쇠잔하고 도가 미약하여[世衰道微] 북과 남이 자리를 바꾸고[朔南易位] 하늘과 땅이 거꾸로 놓인 때[穹壤倒置之際]”라는 절망의 현실을 기문에 남긴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절개와 원칙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정자를 오르는 돌계단을 천천히 굽어 오르면서 지조에 대한 의미를 변주한다. 올바름의 내적 성찰 결과가 지조로 표출되어야 상식이다. 조직과 윗사람에 대한 의심 없는 긍정은 노예근성의 충절이다. 시대마다 절개와 원칙의 지조를 지닌 어른이 있어 그나마 세상이 살만하다. 송병선의 동생 심산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은 동백정 주변의 산수를 묘사하며 사계절 변함없는 고결함을 강조한다. 송병순의 차운시를 읽는다.

 

앙소쌍수옹계전(昂霄雙樹擁階前), 하늘로 우뚝 솟은 두 소나무가 원림 앞을 끌어안고
호득명정보영년(好得名亭保永年), 다행히 명정이 영원한 세월을 지킨다.
만엽상당교취개(萬葉相當交翠蓋), 동나무 서로 마주 대하여 푸른빛으로 덮여 교차하고
사시무개대창연(四時無改帶蒼煙), 사계절 변함없이 푸르러 푸른 이내를 둘러싼다.
병어번입지간약(丙魚翻入枝間躍), 붉은 물고기가 가지 사이로 뒤집어 들이닥쳐 뛰고
자학한종음반면(子鶴閒從蔭畔眠), 어린 학이 한가롭게 그늘 가장자리에서 잠든다.
애설주옹유식락(愛說主翁遊息樂), 김윤진의 유식(노닐고 쉼)의 즐거움을 사랑스럽게 전하자면
점진불도각의선(點塵不到却疑仙), 먼지 한 점 닿지 않아 도리어 신선인가 의심케 한다.

-송병순, 「차동백정운 – 정주장흥김윤진」, 『심석재집』 권3 /시 – 칠언율, 한국고전종합DB,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12

 

현재의 정자 주인은 장흥 김윤진이고, 동백정의 원운인 , , , 을 차운한 시이다. 김윤진(金潤珍, 1845~1925)천 리 길을 걸어[千里重趼]” 최익현에게 비문을 청하여(1896) 김린의 불굴의 지조를 기록한 15대손이다. 3년 후에는 송병선에게 동백정기를 요청하여 국권 상실 위기에서 충절을 계승하는 의미를 동백정 원림에 부여한다. 송병선이 표현한 하늘로 우러른 두 그루 나무[昂霄雙樹]’는 지금도 정자를 품고 있는 웅장한 소나무의 모습이다. ‘萬葉(만엽)’은 무성한 잎들, 특히 동백 같은 상록활엽의 잎을 연상케 한다. 이 잎들이 서로 얽혀 翠蓋(취개)’, 즉 푸른색의 캐노피를 드리운 풍광이다. ‘사시무개대창연은 상록수림의 특징이다. 사계절 변함없이[四時無改] 푸른빛 머금은 이내[蒼煙]를 두른[] 듯 신비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렇게 소나무와 동백나무로 동백정 원림의 푸르게 뒤덮인경관구조를 묘사한다.

송병선은 5, 6구에서 호계천의 물고기가 뛰어노는 모습과 원림의 언덕빼기인 학등에서 어린 학이 잠든 모습을 표현한다. 원림이 선계와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노닐고 쉬는 원림 본래의 장수유식’6)의 즐거움으로 원림을 경영하는 주인의 정신적인 경지가 고고하다고 말한다. 김윤진의 동백정 원림 경영이 한 점 티끌도 닿지 않는 경지에 이르니[(點塵不到], ‘신선이 아닐까 의심쩍기는 하지만 물리친다[却疑仙]’라는 최고의 찬사로 시를 갈무리한다. 송병선이 읊은 시의 경지는 김린의 절개를 혹독한 추위에도 창창함을 잃지 않는 동백나무에 비유한다. ‘사물에 의탁하여 뜻을 부여하는[託物寓意]’ ‘탁물우의의 장소성을 획득한다. 후학은 세속의 티끌[點塵]’이 닿지 않는 정신적 보루로 인식하고 충절을 가슴에 새긴다. 이는 혼란한 시대를 대변하는 충절 정신의 텍스트이다. 동백정 원림을 세속의 티끌이 닿지 않고 불굴의 절개를 계승하는 고백의 창구로 삼은 점이 이 시의 탁월한 보편성이다.

현판 가득 걸린 시경(詩境)의 향연

정자 내부에는 상량문 1, 기문 7, 제영 11편으로 19개의 현판이 빼곡하다. 동백정 원림의 중건과 보수 기록을 보면, ‘동백정이름을 김성장(金成章)이 바꾸고 왕자사부를 지낸 박광전에서 동백정기를 받는다. 그 후 김윤현과 김이한이 함께 동백정을 중건한다. 김윤현은 동백정기에서 복록을 이어가고 조상 추모를 위해 중건했다고 기록한다. 김이한 역시 동백정기편액을 건다. “정자를 동백으로 명명한 것은[亭以柏名] 그 절개를 뜻한 것이다[志其節也.”라고 시작한다. 김익권(金益權)은 정자를 보수하고 이듬해에 김린의 신도비 건립을 주도한다.

연도주요 인물주요 내용
1453년 이후김린(金麟)창건(3칸 구조 추정, 가정사)
1583(선조16)김성장(金成章)중건, 왕자사부 박광전과 교유, 동백정서
1872(고종9)김이한(金履漢), 김윤현(金潤鉉)중수, 두 사람의 동백정기현판
1895(고종32)김익권(金益權)1칸 증축, 중수
1985후손 및 유림계승과 보존을 위한 보수

건축은 정면 4, 측면 2칸의 형태이다. 측면에서 볼 때 팔작지붕이다. 그런데 평면 구성이 특이하고 복잡하다. 왼쪽부터 정면에 누마루 1칸과 후면에 방 1칸으로 시작한다. 이 누마루에 올라 멀리 내려다보는 풍광이 기막히다. 한참을 누마루에 앉아 옛사람과 상우(尙友)’의 만남을 이어간다.7) 옛 풍광을 상상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 생활하고 움직이는 가상현실에 머문다. 가운데 칸은 앞뒤로 툇마루를 두고 중앙에 방 1, 끝으로는 계속 마루를 이어 설치한 구조이다.

중건과 중수를 포함한 보수가 청주 김씨 후손으로 이어지며 선대의 정신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기록 또한 숭고하다. 내부에 무수히 걸린 현판이 전시회에 온 듯 곳곳을 채워 특별한 교감을 경험한다. 박광전이 쓴 동백정기를 비롯하여 구한말의 대학자 송병선 등 여러 명사의 시문은, 이곳이 산수에 대한 찬미, 은거의 가치, 벗들과의 교유, 학문에 대한 열정의 공간임을 알린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이들의 모임에 동참한 듯 정자 마루에 바람과 함께 시를 쓰던 묵향에 이끌린다. 고개를 숙여 호계천의 잔잔한 일렁임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멀리 들판을 살핀다. 시의 의경(意境)이 일어나 한 편 남긴다.

<동백정 원림의 시경> 온형근의 시 「동백 꽃망울 터지다」를 파스텔 스케치로 시의 풍광을 묘사한 상상 경관
<동백정 원림의 시경> 온형근의 시 「동백 꽃망울 터지다」를 파스텔 스케치로 시의 풍광을 묘사한 상상 경관

 

동백 꽃망울 터지다

온형근




동백정 누마루에 오르면 오래된 인걸의 기운이 서려 매무새를 고쳐 바로 앉는다.

멀리 들판에서 제암산으로 긴 호흡 펼쳐지고
굽어 내려다보는 호계천 물소리에 섞인
급하게 우는 새소리에
놀란 동백 꽃망울 터진다.

소나무 숲이 변치 않는 고결한 위엄이라면
동백은 다소곳이 오롯한 겸손
붉은 꽃망울 품은 정갈한 정장이다.

흐르는 물을 가두었다 내보내는 봇물 터지면
물소리 더욱 바람을 몰아온다.
물기 머금은 바람에 툇마루 긴장할 때
마루는 옛사람의 시문을 오가며 미끈하다.

흐트러짐 없는 진흙 돌담장 아래로 들어선
자연석 호박돌 석축으로 꾸민 화오花塢에서
문중의 깔끔하고 말쑥한 사계절을 읽는다.

-2025.02.17.

 

동백정 원림의 누마루에 오르면 저절로 내가 정돈된다. 누군가의 숨결과 사유로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바로 한다. 시선을 멀리 던진다. 들판이 펼쳐지고 제암산이 펼쳐진다. 긴 호흡으로 둘러본다. 호연지기로 충만해진다. 물소리가 들린다. 호계천이 잔잔하게 흐른다. 물소리에 새소리가 섞인다. 동백 꽃망울이 터진다. 소리 없이 생명이 터지는 순간을 만난다. 원림을 가득 채운 소나무 숲을 본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할 저 위엄은 고결하다. 그런데 동백은 다르다. 다소곳하면서도 오롯하다. 겸손하지만 그 안에 붉은 마음을 품는다. 정갈한 정장을 입었을 때처럼 심장이 뜨거워진다.

가두었던 물이 쏟아진다. 보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바람을 몰아온다. 물기 머금은 바람이 툇마루를 스친다. 마루가 긴장한다. 마루를 오가며 옛사람의 시문을 읽는다. 마루는 저절로 정결하여 미끈해진다. 현판을 읽는 발걸음이 바닥을 반짝인다. 낮은 담장은 진흙과 돌을 층으로 위아래 엇갈리며 쌓았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담장 아래로 시선이 머문다. ‘꽃나무를 심은 둑이라는 화오(花塢)’가 들어섰다. 화오의 경계석은 호박돌로 쌓아 작은 우주를 만들었다. 사계절이 이 작은 공간에 다 들어 있다. 깔끔하고 말쑥하다. 과거와 현재가, 산수와 인간이, 위엄과 겸손이 공존하는 동백정 원림이다. 동백나무 꽃망울이 터지려는 순간이다.

<동백꽃, 2월> 호계천 물소리와 새소리에 섞여 동백 꽃망을 터진다. (2025.02.17.)
<동백꽃, 2월> 호계천 물소리와 새소리에 섞여 동백 꽃망을 터진다. (2025.02.17.)

교유의 열린 공간으로서의 문화 거점

동백정 원림은 개인의 은거 공간으로 멈추지 않는다. 문화 거점 공간의 중요한 축으로 효용성을 발휘한다. 이곳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시회(詩會) 전통은 동백정 원림이 닫힌 공간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열린 마당이었음을 증명한다. 동백정 원림의 시회는 1853(철종 4) 창립된 난정회를 시작으로, 풍영계(1924), 상영계(1924~1962), 정사계(1962), 팔정회 등 여러 시회가 계절과 목적에 따라 운영된다. 이들은 동백정 원림을 포함한 8개 누정 원림의 유적을 보전하고 시를 지으며 친목을 도모한다. 봄의 난정회, 3월 그믐의 풍영계, 여름 중복의 상영계 등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롭게 펼쳐진다. 동백정 원림은 이러한 활발한 문학 활동으로 문림(文林)을 이루며 세상과 소통하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기능한다.

시회 명칭창립/ 조직 시기동백정 원림 활용 방식주요 특징과 성격
난정회(蘭亭會)1853(계축년)8개 누정 원림을 순회하며 시회 장소로 활용.왕희지의 난정시회를 본받아 창립, 주로 봄에 모여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임
풍영계(諷詠契)192453일 영모재에서 창립8개 누정 원림을 순회하는 장소 중 하나로 활용증점(曾點)의 무우지풍(舞雩之風)에서 차용, 주로 매년 3월 그믐날에 시회 활동
상영계(觴詠契)정사계 이전(1924년과 1962년 사이로 추정).8개 누정 원림을 순회하며 시회를 가졌던 조직 중 하나주로 여름 중복 무렵에 시회, 세속의 걱정을 잊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목적
정사계(亭榭契)1962(임인년) 810일 경호정에서 조직동백정 청주 김씨 문중이 칠정계에 참여, 정사계를 동백정에서 처음 시회 가짐선조의 유적 보전과 친목 도모 목적, 후대에는 친목 성격 강해져 작시(作詩) 없이 방담(芳談)과 음식을 즐기는 방식으로 변모
팔정회(八亭會)조직 시기 미상.동백정 원림부터 부춘정 원림까지 순회하며 시를 주고받음이수하(李洙夏)의 문집인 금계집에 실려 , 8개 누정을 중심으로 순회하며 활동한 시회 중 하나
기타시회향사회, 낙양회, 죽계회 등동백정은 이러한 다양한 시회 활동, 문림(文林)을 이룸8정자에서 활동했던 시회가 12그룹 이상 존재

이러한 시회는 지역 문화의 주체로서 탐진강을 따라 형성된 광역의 문화 경관을 형성한다. 창랑정, 사인정, 독취정, 부춘정, 동백정, 용호정, 경호정, 영귀정의 8개 누정은 서로 교류하며 탐진강 유역을 하나의 문화 경관의 순례지로 만든다.

풍경을 시로 빚는 동백정의 미학 코드

- 푸른 동백의 시대정신인 절개

장자의 호량지변(濠梁之辯)’은 장자와 혜시가 호량 위에서 대화하는 내용이다.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는가라는 객관 논리에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가라는 반문이다. 이는 미적 경험의 본질이 직관에 있음을 보여준다. 논리의 증명이 아니라 감정의 공감과 직관의 일체감이다. 기쁠 때 강산이 미소 짓는 듯하고, 슬플 때 꽃과 새마저 흐느끼는 듯 느껴진다.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국화를 사랑하고 임화정(林和靖, 967~1028)이 매화를 좋아한 것은 꽃이 지닌 내면의 정신과 품격을 자신의 감정으로 투영한 결과이다. 심미 경험의 본질이 공감일체감에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공감과 일체감을 심리학에서는 거울뉴런카논뉴런으로 설명한다.8)

그런 의미에서 동백정 원림의 미학 코드는 단연 절개(節介)’를 앞세울 수 있겠다. 이는 창건주 김린의 생애와 원림의 상징 식물인 동백나무를 통해 선명하게 구현된다. 절개는 이 원림의 존재 이유이자,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정신이다. 김린이 계유정난이라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권력을 버린 선택은 적극적인 저항의 한 형태이다. 그는 권력의 무상함과 시대의 불의 앞에서 꺾이거나 휘어지는 대신 스스로를 곧게 세우는 길을 택한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푸른 잎을 잃지 않고 눈 속에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나무, 그 꺾이지 않는 생명력에 김린은 자신의 절개를 투영한다. 동백의 굳건함으로부터 자신의 지조를 확인한다. 김린은 동백을 바라보며 자신이 되고, 동백은 김린의 정신을 입어 절개의 상징이 된다. 원림의 이름을 동백정이라 한 것은 원림의 정체성이 바로 이 절개에 있음을 선언하는 강력한 전언이다. 푸른 동백을 바라보며 이 시대의 정신으로 절개를 떠올린다.

- 잔잔하게 흐르는 평온의 관조

동백정 원림의 또 하나의 미학 코드는 관조(觀照)의 미이다. 이는 굳건한 절개를 내면에 품은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고요한 성찰의 경지이다. 거점 중심 공간 아래를 흐르는 호계천의 물소리와 끊임없는 흐름은 마음을 비우고 산수와 하나되게 하는 수행의 도구이다. 흐르는 물을 이중 보의 구조로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게 만든 경호일월(鏡湖日月)의 풍광이다. 맑은 날 하늘과 산세가 수면에 그대로 비치는 거울 같은 풍경은 비움을 통한 채움의 미학이다. 물은 흐르되 욕심내지 않고 고이되 썩지 않으며 비추되 왜곡하지 않는다. 호계천의 물소리는 역설의 의미를 지닌다. 끊임없이 소리를 내지만 그 단조롭고 반복적인 울림은 오히려 주변의 소음을 잠재우고 마음의 잡념을 씻어낸다. 선방(禪房)의 목탁 소리처럼 이 물소리는 듣는 이를 세속적 번뇌에서 깊은 명상의 상태로 이끄는 청각 장치로 작용한다.

정자에 오르면 누마루에서 자연스럽게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이는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공간이 지닌 숙연함이 불러일으키는 내면의 정화이다. 시선을 멀리 던져 들판과 제암산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행위는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는 관조의 입문이다. 김린이 들었던 15세기의 물소리와 21세기에 듣는 물소리는 본질적으로 같다. 흘러가는 물은 순간마다 다르지만 그 소리는 영원처럼 지속된다. 김윤현이 예양강이라 부르며 옷깃처럼 흐른다고 표현한 호계천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세속의 욕망을 씻어내는 정화의 매개이다. 무심한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흐르는 물은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 가득 차면 넘치고 비면 다시 채워진다. 이 시간의 연속성과 순환의 자연스러움이 유한한 인간 존재에게 깊은 위로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현판과 현판이 걸린 벽면의 여백에서 흐르는 침묵, 동백나무와 소나무 숲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의 틈, 누마루와 툇마루가 만드는 관조는 더 풍요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송병순의 시구 점진불도각의선(點塵不到却疑仙)”, 즉 먼지 한 점 닿지 않아 도리어 신선인가 의심케 한다는 표현은 관조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압축한다. 세속의 티끌이 닿지 않는 청정함은 정신의 무심한 고요함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초월의 아름다움이다. 동백정 원림의 잔잔하게 흐르는 관조는 집착하지 말 것을, 욕심내지 말 것을, 인위적으로 꾸미지 말 것을 요구한다. 내면을 향한 깊은 관조는 고독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외부 세계와의 관계로 확장한다.

- 소박한 교유의 공간 소통

고요한 성찰을 통해 얻은 정신적 깊이는 벗들과의 만남을 통해 교유라는 공동체 문화로 꽃피운다. 그래서 동백정 원림의 미학 코드로 교유(交遊)’를 내세운다. 이곳은 개인의 닫힌 은거 공간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함께 시와 풍류를 나누는 열린 문화 공간이다. 절개로 바로 서고 관조로 깊어진 내면은 교유를 통해 공동체의 문화로 승화한다. 공감과 소통을 실천하는 장이다. 공감이란 타자와의 감정적 교류를 통해 주관을 넘어 보편적 미감에 도달하는 미적 능력이다. 소통은 이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개별적 경험을 일반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사회적 실천이다.

<동백정의 주련> 김윤현의 『동백정기』 말미의 「원운」에서 3~6구가 주련으로 걸렸다. 왼쪽 기둥의 주련부터, 蒲祿相承知茂葉(복록을 서로 이어가니 자손이 번창할 것이고) 第自恨住香煙(추모하는 마음 간절하니 향화가 영원하다). 山管領無餘樂(강산을 즐기는 일 말고는 다른 낙이 없고) 花竹經營未假眠(원림을 경영하느라 단잠도 못 이룬다). (2025.02.17.)
<동백정의 주련> 김윤현의 『동백정기』 말미의 「원운」에서 3~6구가 주련으로 걸렸다. 왼쪽 기둥의 주련부터, 蒲祿相承知茂葉(복록을 서로 이어가니 자손이 번창할 것이고) 第自恨住香煙(추모하는 마음 간절하니 향화가 영원하다). 山管領無餘樂(강산을 즐기는 일 말고는 다른 낙이 없고) 花竹經營未假眠(원림을 경영하느라 단잠도 못 이룬다). (2025.02.17.)

원림의 거점 중심 공간은 열린 정자이고 환대의 건축이다. 누마루와 툇마루가 겹겹이 이어지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문다. 한쪽은 누마루로 멀리 들판과 호계천을 조망하고, 가운데는 앞뒤로 툇마루를 두어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루를 계속 이어 공간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다양한 활동과 만남을 수용할 수 있는 포괄성과 유연성의 평면 구성이다. 이는 타자를 환대하는 개방성의 표현이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시회로 그 이유를 안다. 수백 년간의 시회 전통은 동백정 원림이 공동체의 문화 거점으로 기능했음을 증명한다. 왕희지의 난정시회, 증점(曾點)의 무지풍(舞雩之風) 등에서 차용한 차원 높은 활동은 지역 사회의 구심 역할로 스민다.

시간을 초월한 대화인 현판은 소통의 역사를 기록한 문화 아카이브이다. 현판은 박광전, 송병선, 송병순, 최익현 등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이 남긴 시와 문장이 열린 광장이었음을 증언한다. 구한말의 대학자인 송병선과 그의 동생 송병순의 시문은 동백정 원림이 시대의 고뇌를 함께 나누던 호남의 중요한 문화 거점이었음을 입증한다. 현판을 오가며 읽는 행위는 과거의 목소리와 현재의 관람자가 시간을 초월하여 공감하고 소통하는 경험이다. 마룻바닥이 윤기를 내는 것은 수도 없이 드나들던 동백정 원림의 교유 흔적이다.

김윤진의 유식(遊息)의 즐거움을 노래한 송병순의 시는 원림이 정신 교류와 미적 공감이 일어나는 장소임을 밝힌다. “점진불도각의선의 경지는 개인의 고고한 은거가 아니라 더불어 나누는 공동체의 경험이다. 아름다움은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 때 배가 된다. 미적 경험은 타자와 공감할 때 보편성을 획득한다. 개인의 취미는 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문화로 승화된다. 열린 정자의 마루를 오가며 시를 주고받고 계절마다 모여 산수를 찬미하며 세대를 넘어 현판의 시문을 읽는 행위는 공감과 소통의 실천이다. 한국정원문화가 일상에 스며들어 폭넓게 향유할 수 있는 방식이다.

- 경계와 분별없는 신명의 풍경

굳건한 절개, 깊은 관조의 미, 그리고 열린 교유의 미학 코드는 무경무애(無境無礙)’, 즉 경계와 분별없는 신명 풍경으로 만난다. 이는 정원과 자연, 나와 세계,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져 거리낌 없이 하나의 풍경으로 통합되는 궁극의 경지다. 굳건한 자아(절개)가 고요한 관찰(관조)과 의미 있는 관계(교유)를 통해 확장될 때, 마침내 모든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동백정 원림은 세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속세와 완전히 단절되거나 한복판에 있지 않아 산수와 세속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등지지 않으면서 빠져들지 않고 절개를 지키면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중용의 공간 입지를 지녔다.

거기다가 사방이 열린 정자의 구조는 풍경을 그림처럼 가두는 액자가 아니라, 오히려 외부 세계를 내부로 거침없이 끌어들이는 통로가 된다. 열린 시각으로 파노라마 풍경을 제공한다. 누마루와 툇마루는 물리적 경계를 해체하고 시선을 호계천에서 들판으로 다시 용두산과 만년리 마을까지 자연스럽게 확장한다. 정자 마루에 앉은 나는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인 동시에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풍경 속에 녹아든 하나의 객체가 된다. 주체와 객체, 관찰자와 풍경의 이분법은 이곳에서 무너진다. 이러한 무경무애의 태도에서 산수를 바라보는 감정의 공감과 직관의 일체감으로 경관 통합이 완성한다.

시각 경계의 해체는 청각을 통해 완성된다. 정자 안팎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드는 호계천의 물소리는 안과 밖의 구분을 완전히 없앤다. 눈을 감아도 정자 마루에 앉아 있어도 흐르는 물과 함께 있다. 물소리는 벽을 투과하고 공간을 채우며 듣는 이를 풍경의 바깥이 아닌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시간의 경계마저 흐려지는 소리의 연속성은 나를 과거의 풍경으로 인도한다.

<무경무애의 경관> 동백정 마루에서 바라본 서까래 사이로 펼쳐지는 산수의 풍광
<무경무애의 경관> 동백정 마루에서 바라본 서까래 사이로 펼쳐지는 산수의 풍광

에필로그, 호계천의 물살을 떠올린다

김린이 들었던 15세기의 물소리가 내 귀에 닿는다. 물은 흐르되 변치 않고 시간은 지나되 본질은 그대로이다. 동백정 원림은 시간의 강을 건너 말을 건넨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절개로 시작된 이 공간은,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내면을 비추는 관조의 장이 되고,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어울리는 교유의 마당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 모든 가치는 산과 물, 나와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무경무애의 미학으로 승화된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푸른 잎을 잃지 않는 동백나무처럼 원림이 품은 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울림을 전한다.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에서 영혼의 위로가 필요할 때, 번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이곳은 언제나 그 문을 열어둔다. 누마루에 앉아 멀리 제암산을 바라보고, 호계천의 잔잔한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여유롭다. 일상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성찰의 순간을 허락받는다.

동백정 원림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현재다. 고요한 수면에 하늘이 비치고 누마루에 햇살이 스며들며 현판의 시구들이 세대를 넘어 대화를 이어간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치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증언한다. 동백정 원림의 본질절개, 관조, 교유, 무경무애을 온전히 떠올린다. 옛것에서 미래를 향한 문화의 토대를 쌓는 일은 든든하다.

호계천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흐른다. 물은 흐르되 집착하지 않고, 고이되 썩지 않으며, 비추되 왜곡하지 않는다. 이 평온한 내공의 목소리에 이끌려 동백정 원림을 찾는다. 아름다움이란 함께 나누는 일이며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시작한다. 동백정 원림으로 올라가는 환대의 돌계단이 떠오른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흐르는 물이 푸른 동백과 하나가 된다. 경계와 분별이 사라지는 내공이 차오른다. 비로소 푸른 절개를 뿜어내는 동백정 원림이 보인다.

 


1) 면암 최익현이 찬술한 <좌찬성김공신도비명>에는 김린이 1402년에 태어나 1474년에 사망했으며 향년 73세라고 기록된 부분이 있으나, 다른 자료에서는 1392년생에 향년 83세로 기록되어 있다.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성화 갑오년에 향년 73세로 졸하였다는 기록과 황명 영락 임오년(1392)에 태어나 1474(성종 갑오년)에 향년 83세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혼재한다.

2) 김윤현, 1872년 중건 때 <동백정기(冬栢亭記)>를 작성했다. 그는 김린의 후손으로 체격이 크고 덕성이 온화하며 효성 또한 지극하고, 선조의 뜻을 이어받아 동백정을 중건하고 이곳에서 후진을 양성한다.

3) 이상구 편저, 長興··, 장흥문화원, 1998, 39-41.

4) 박광전, 동백정기, 죽천집5 / , 1583,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9

5) 최익현, 좌찬성김공신도비명, 면암집25 / 신도비, 1896,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4

6) 장수유식(藏修游息)은 원림에서 은거하여 학문을 닦고 노닐며 쉬는 것이 모두 티 내지 않는 수양의 과정임을 체득하고, 나아가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경지에 이르는 학습과정을 말한다.

7) 상우(尙友)의 만남 : 역사를 살았던 뛰어난 옛사람과 벗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의 겉모양을 벗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함과 마음, 그리고 본질의 정신을 벗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우의 만남'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옛 성현의 고결한 정신과 학문, 그리고 그들이 자연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의 삶과 정신 수양에 연결하려는 능동의 실천이다.

8)거울뉴런(mirror neuron)과 카논뉴런 (canonical neuron)은 동아시아 산수 원림 문화에서 정신의 계승과 새로운 창조라는 상호 보완의 역할을 수행하는 미적 경험을 형성한다. 거울뉴런이 타인의 행동 및 감정 관찰/상상(observation/empathy)이라면 카논뉴런은 대상 물건 및 특정 행위의 발현(object/action)이 주요 동력이다. 그 결과 거울뉴런은 공감 능력과 정신의 전통을 계승하고, 카논뉴런은 행동의 실행과 새로운 예술 창조를 이끈다. 원림에서는 거울뉴런이 옛 성현의 사상(주자학 등)이나 태도를 모방하고 이해한다면 카논뉴런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시나 그림, 실제 조영 행위로 이를 구현하여 적용한다. 이 둘은 상호작용하여 거울뉴런이 타인의 정신적 경지를 공감하여 계승의 기반을 마련하면, 카논뉴런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조를 현실화하는 데 기여한다. 비유하자면, 거울뉴런과 카논뉴런의 관계는 마치 역사적 위인(거울뉴런)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 후,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명작(카논뉴런)을 창조하는 예술가와 같다. 거울뉴런은 옛 거장들의 위대한 영감을 나의 내면에 복사하여 심는 역할을 하고, 카논뉴런은 그 심어진 영감을 현실의 원림 공간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는 실천적 움직임을 담당한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

『월간::조경헤리티지』은 한국정원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짧은 단상과 긴 글을 포함하여 발행합니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설계 언어를 창발創發합니다. 진행하면서 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주체적, 자주적,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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