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꿈

우리 안의 백룸, 리미널 스페이스

<어젯밤 꿈속에 나는나는>프로젝트 6월호

2026.06.20 |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 대략 6시간, 혹은 권장 8시간 동안 잠을 잡니다. 일반적으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9 to 6를 생각하면, 하루 중 결코 짧지는 않은 시간인데요. 하루 중 일을 한 만큼이나 필히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하면 시간 낭비 같아서 억울하기도 해요.

 

그래서 여기, <어젯밤 꿈 속에 나는나는>에서 우리가 그만큼이나 많이 할애하는 잠 자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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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하여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케인 파슨스 감독의 <백룸>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백룸은 등장인물들의 현실을 모방하여 재창조된 공간으로 거기에는 사람 뿐만 아니라 가구, 장소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과히 일반적이지는 않죠. 일부가 잘려있거나 뒤틀려있고 문이나 창문이 없어서 어디서 어떻게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는지도 모르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재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백룸과 같은 공간을 ‘리미널 스페이스’라고 부르는데요. 이는 친숙한 공간 같지만 원래라면 있어야 할 것이 없어 알 수 없는 괴리감, 위화감을 자아내는 공간을 이르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직역하자면 ‘경계 공간’이라는 뜻으로 낮 시간의 텅 빈 교실이라든지 새벽 시간의 인적 드문 공항, 막 문을 닫은 쇼핑몰처럼 본래 많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공간이 그 직전이나 직후처럼 일종의 과도기적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느껴지는 모호한 순간을 맞은 공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꿈 속에 나오는 이러한 경계적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가볍게 제가 최근 꾼 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학교 후문에서 친구들과 만난다. 그 중 결혼한 두 친구가 어쩐지 피곤해 보이고 특히 한 친구는 많은 일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다들 내가 독일로 떠나기 전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하지만 특히 그 친구는 우울해하며 집에 가고 싶어한다. 친구들이 떠나고 나는 대학교 강의실 같은 곳에 있다. 수업이 마치고 나는 강의실에서 샤워를 하려고 한다. 한무리의 남학생들이 나를 관심있게 보고 개중 호리호리하고 여성스러운 타입의 남학생이 나를 관찰한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니 신체공부가 되겠구나 싶다. 그들에게 관찰되는 것이 불쾌하진 않지만 쑥스러워서 머리부터 감는데 바로 옆 자리 여학생의 짐들이 물에 젖을까봐 열심히 치운다. 샤워를 마치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엘레베이터에 사람들이 적당히 타고있다.

해당 에피소드를 준비하며 우연찮게 꾼 꿈인데요. 굉장히 다양한 장소가 등장하고, 그 중에서 특히 학교 후문은 제가 꿈에 등장하는 친구들과 함께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익숙한 장소와 오랜 친구들과 함께이지만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낯설기만 합니다. 

꿈을 꾼 저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자면, 저는 얼마 전까지 한국에 있다가 독일로 넘어와 삼십대에 다시 미대 입시를 준비 중입니다. 친구들은 사회에 무사히 진입해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있는, 통상적인 어른의 삶으로 이행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버스를 타고 후문을 벗어난 친구들과 다르게 저는 학교 후문을 거슬러 올라 대학교 강의실로 다시 돌아갔지요. 이렇게 본다면 저의 상황을 반영한 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도기적 공간인 후문을 지나온 저는 강의실에 있을리 만무한 샤워기로 몸을 씻으려고 합니다. 어째서 이 일련의 위화감 넘치는 상황들이 왜 꿈 속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까요? 그것은 심리적으로 현재 내가 느끼는 상황과 일치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달리 학교로, 강의실로 돌아간 저는 그 곳에서 옷을 벗고 씻는 행위를 통해 기존의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정체성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저를 지켜보는 청년들은 저와 같은 공부를 할 미술학도인데요. 앞으로 제가 학교로 돌아가면 가져야 하는, 혹은 가지게 될 아니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와중에 차마 옷을 벗지 못하고 타인의 짐이 젖을까 걱정하는 것은 제가 완전히 거듭나기에 아직은 초자아적인 태도를 버리진 못했다는 것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씻고 엘레베이터를 탑니다. 엘레베이터 역시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고 개개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수의 사람들과 함께 어쩐지 편안한 기분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저의 그림자들과 함께 저의 내면을 향해 하강하는 행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자 이런 방식으로 저는 저만의 리미널 스페이스, 경계 공간에 대한 정의를 시도해보았습니다. 어떤 분의 꿈 속에서는 텅 빈 공터로 드러날 수도 있고, 지하실이라든가 동굴, 또 무한대로 증가하는 시공으로도 표현될 수 있습니다. 꿈 속에서 보여지는 공간은 대체적으로 과도기적 성격을 띄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늘 그 곳을 탈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 친숙하면서도  뭔가 그럴법하지 않은 장면이나 상황이 산재합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경계공간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속 터널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속 터널

영화 <백룸>에서는 이 경계공간에 대해 주인공들의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여타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경계공간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성장하거나, 머무르거나 하는 기로에 섭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공간은 어쩐지 도망쳐야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거나 거꾸로 향수에 젖은 안락함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경계공간만이 만들어내는 그 기묘한 감각과 비롯되는 혼돈으로 나의 내적인 고뇌를 받아들이고 겪어내는 것이 각자가 할 수 있는 몫인 것 같습니다.  

리미널 스페이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더불어 5월에 꾼 꿈을 그림으로 담은 리추얼을 남깁니다.

이 여름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길고 고통스럽지 않길 바라며

김혜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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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속에 나는나는>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의 k-art 청년 창작자 지원으로 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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